2012/05/20 사랑이 담긴 택배
일요일인 오늘도 동경 날씨는 좋다.
그러나, 쾌청하게 맑은 날씨는 아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지만, 공기에 습기가 많다. 흐려있다. 나중에 비가 올려나…
어제 도서관에서 집에 와보니 현관문에 택배가 왔는데, 사람이 없어서 그냥 간다는 통지서가 꼽혀있었다. 시간을 보니 조금 전에 왔다 간 거다. 그 자리에서 전화를 했더니 안 받는다. 내일 오전,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배달해 달라는 등록을 했다.
주소를 보니 규슈에 사는 옛날 학생이 보낸 거라, 분명히 야채와 과일 등이 들어있을 텐데 하루가 지나면 야채나 과일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에 없었던 내가 잘못이고 택배 전화를 안 받은 내가 나쁜 거다. 휴대폰을 휴대를 안 하니…
아침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베란다에 겨울 신발들을 내놓았다. 바람을 쐬고 먼지를 털어서 상자에다 집어넣을 거다. 근데, 웬 신발이 이렇게 많은지….
오늘 아침으로 토마토와 햇양파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풋마늘을 갈아서 발사믹 비네거에 절이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후추를 갈아 넣었다. 큰 대접에 밑에다 얇게 썬 양파를 깔고 토마토를 다섯 개나 두껍게 썰어서 덥고 그 위에 소금을 치고 드레싱을 끼얹었다. 토마토는 사다가 냉장고에 넣지 않았어 단맛이 그냥 살아있다. 삶은 닭다리와 같이 먹었는데 샐러드가 아주 맛이 있었다. 그런데, 발사믹 비네거가 아닌 와인 비네거(핑크)가 더 좋았을 것 같다. 발사믹 비네거가 맛이 농후하고 색이 짙어서 햇양파의 달콤함, 풋마늘의 향기와 같은 섬세한 맛과 연한 색상의 조화를 방해한 것 같다. 지금 집에 와인 비네거가 없다.
택배가 왔다. 열어보니 제철 야채와 자기가 정성으로 농사를 지은 쌀(유기농에, 비료도 안치고 제초도 손으로 했다)등이 들어있다. 이 주전에 이사를 했다더니, 새 주소가 쓰여 있다. 이 친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2-3년이다. 올해 들어서 주고받는 문자를 보면, 농사를 하면서 이 친구가 성장한 걸 알 수 있다. 그것도 한꺼번에 뭔가를 뛰어 넘어섰다.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문자 내용이 철학자 같다. 그것도 아주 힘이 있다. 대단하다. 정말로…
소라마메, 우리 할머니는 ‘하늘콩’이라고 했는데… 얼른 껍질을 까서 삶았다. 이 콩은 따자마자 깍지째 삶아서 먹는 건데, 깍지 색을 보니 콩껍질이 딱딱 해졌겠다.
아직 어리고 신선할 때는 콩껍질이 연하고 눈처럼 보이는 검은 게 파랗다. 삶아보니, 좀 너무 삶았나 보다. 콩껍질이 딱딱하다, 선도가 떨어졌다는 거다. 삶은 콩껍질을 벗겨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웠다.
이 친구는 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나를 만나서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그 친구에게 뭘 가르쳤느냐? 많이 싸운 거 외에는 없다. 자기대로 뭔가를 배웠다고 한다. 이 친구는 내 주위 누구보다도 빨리, 확실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되었다.
부잣집 아들에 머리도 좋아서 주위와 부모, 학교, 사회라는 ‘체제’를 우습게 알고 반항을 아주 은밀히 교묘하고 악랄하게 했다. 대학 다닐 때도 자기돈으로 외제차를 몇 대나 굴리면서, 야쿠자를 상대로 장사를 했고, ‘여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끊긴 적이 없었다는, 잡히지 않은 수많은 범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내 강의를 들을 때 눈초리가 조폭보다 더 무섭고 섬찟했다.
뭔가가 이 친구를 자극했는지, 나에게 죽어라고 달려든다. 나는 학생에게 필요한 대응을 해야 했다. 공부하겠다고, 혈기왕성한 젊은 학생이 죽어라고 목숨 걸고 덤비는데, 나도 죽어라고 싸웠다. “네가 여기서 공부를 해서 학자가 되겠다는 건, 조기축구 선수가 월드컵에 나간다는 것과 같으니까, 각오를 해라. 그래도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돕겠다. 학생이 선생을 고르는 거지, 선생은 학생을 고르지 못하니까”
내가 아주 힘든 상황을 보내는 걸 옆에서 지켜보더니, 이 친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정반대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나와 이 친구는 선생과 제자라기보다, 친구에 가깝고, ‘동지’에 가깝다. 앞으로도 사회와 체제에 은밀히 교묘하게 ‘저항’을 할 것이다. 물론, 이 친구가 어릴 때, 젊었을 때 했던 ‘범죄적’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긴 시간을 들여가면서, 확실히 해 나갈 것이다.
동지여, 고맙다, 가끔 정성과 사랑이 담긴 택배를 보내주어서,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