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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난민의 아들

2018/07/01 난민의 아들

 

오늘도 동경은 최고기온이 33도나 올라간 뜨거운 날씨였다. 글을 쓰는 것은 12시를 넘었으니 정확히는 어제이지만, 오늘이라고 썼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가 더워서 밥을 하기가 싫었다. 생선을 굽고 빵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지난 주도 밥을 하지 않았으니 2주나 밥을 먹지 않았다. 밥이 아닌 다른 것을 먹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오전에 야채를 사러 나갔다. 농가 마당에 갔지만 양파 밖에 없었다. 무인 야채판매에 갔더니 야채가 많이 있었다. 오이가 오늘 아침에 나온 것이라, 싱싱했다. 들이를 여섯 봉지 사고 노지 토마토도 봉지를 샀다. 1000엔어치 샀는데, 짐이 무겁고 많다. 내친 걸음이라, 마트에 갔다. 과일을 사고 싶어서다. 요즘 멜론이 많이 나온다. 지난 주에 멜론을 반쪽으로 잘라서 파는 사다가 맛있게 먹었다. 어제도 유심히 봤지만, 내키지 않아서 안샀다. 오늘 마트에는 멜론 종류가 적어서 막상 사러 갔더니 땡기지 않아서 안샀다.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종류 상자씩 사서 집에 오자마자 반쯤은 먹어 치웠다. 이러니 무서워서 아이스크림을 못 산다.지난 주에 수박을 여섯 사서 하루에 개나 그것도 하루에 먹었다. 크기가 멜론정도로 작지만, 하루 저녁에 개씩이나 먹다니 내가 먹었지만 믿을 없는 이야기다. 가끔 미친 짓을 하는 자신이 믿을 수가 없다. 혼자서 반성했다. 수박은 역시 작은 사면 안된다. 이왕 먹으려면 걸로 사서 배터지게, 아니 터지면 곤란하지만 먹어도 만족스럽게 먹어야 한다는 뼈저리게 느꼈다. 수박을 사고 싶어도 먼저 오이와 토마토로 짐이 무거워서 들고 수가 없다. 욕심내서 수박을 들고 오다가 수박과 같이 길에 쓰러져도 민폐다. 수박에 목숨을 정도는 아니다. 아무렴 인생을 수박과 오이와 토마토와 함께 길에서 끝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말이다.

 

 

오늘, 그러니까 토요일 제주도에서 난민 반대 집회가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난민 반대와 그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고 한다. 비가 와서 난민 반대에 예상보다 나온 사람이 적었다고 한다. 난민 반대 집회가 큰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난민 반대 집회를 주최하는 단체가 지향하는 것이 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로 유명한 재특회와 흡사하다. 재특회는 있지도 않은 재일동포에게 '특권'이 있다고 '특권'을 주면 안 된다는 시민들의 모임이다. 일본에서는 시민운동으로 '헤이트스피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양새로 보통 사람들을 강조하고 있다. 난민 반대를 간판으로 내걸고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하면서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제2의 태극기 집회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가장 최근에 쓴 논문이 '한국의 배외주의'였다. 최근이라고 해도 출판이 늦어져서 2년 전에 쓴 것이다. '배외주의'라는 것은 일본어다. 한국어로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대로 쓰이는 모양이니 그냥 쓰기로 하겠다. '배외주의' 뜻이  "다른 사회집단에 배척적/적대적인 태도와 심정"이라고 나왔는데 다른 사회집단이라는 것이 주로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뜻하는 것으로 바로 '차별과 혐오'로 연결된다. 그래서 '배외주의'라는 말을 쓸 때는 '배외주의'는 안된다는 걸 전제로 쓰는 것이다. 일본의 '배외주의'적 상황에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여러모로 훨씬 좋았다. 그런 한국에서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500여 명 들어왔다는 것에 대해 '혐오', '헤이트스피치'를 쏟으며 공격하는 걸 보고 믿기지가 않았다. '난민' '난민'이라는 자체로 절대적 약자인 것이다. 한국이 장기에 걸쳐 많은 자원과 노력을 동원해서 어렵게 이룬 '다문화적' 가치를 한순간에 잃을 것 같이 보였다. 한국에서 지방선거에 외국인 참정권이 있다는 것, '다문화적' 정책은 일본보다 훨씬 앞서있다. 일본 학생들도 그걸 알면 부러워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를 논문을 통해 낱낱이 일본에 알리면 '배외주의'적인 일본 사람들이 아주 기뻐할 것이다. 자신들이 '배외주의'적이라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되니까...... 일본의 '배외주의'는 너무나 뿌리 깊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정치적 세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은 도저히 경쟁상대가 안된다. 하지만, 일본의 '배외주의'는 교묘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일본인들도 모를 정도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믿고 있다. 이번에 일어난 한국의 난민에 대한 '혐오'는 아주 잘 드러나서 임팩트가 강하다. 하루아침에 일본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알려지면 그동안 쌓아온 한국의 국격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난민'은 어쨌든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난민'을 공격하는 것은 직접/간접적인 '살인'과 같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일본의 '배외주의'를 오래 관찰해 온 경험에서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싹트고 자라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혐오'가 퍼지기 전에 재빨리 시민사회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혐오'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반차별법'이라는 제도적 정비가 빨리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사람들도 멀지 않았던 과거에 수많은 '난민'들이 있었다. '난민'을 특히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민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난민'도 하나의 '이주'형태로 다른 '이주노동자'와 유사하다. 한국에는 인구 대비 일본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솔직히 한국이 아무리 취직난이라고 해도 '외국인 노동자'가 하는 일을 한국인이 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주고 있기에 한국이 돌아간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한국인이 싫어하는 일을 감당해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한국에서 '난민'을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난민'을 교육 시켜 한국에서 일하고 세금 내면서 살게 하면 된다. '탈북자'라는 '난민'을 받아 들여온 한국에서 '난민'을 받아들인 실적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미혼율이 높아지고 출산율도 저조하다는데, 언제까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 아이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한국에서 살만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포인트는 인종이나 출신국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받아들이느냐가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통령은 '난민'의 아들이다. 공교롭게도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도 '난민'의 아들이다. 두 케이스를 봐도 '난민'이라서 어쩌고 '난민'의 자식이라서 저쩌고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화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 이북에서 왔다는 점이 크게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상상한다. 이북에서 오신 부모님을 두었기에 이북사람들과 대화하고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북에 사는 사람이나 이남에 사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았나현재 남북관계를 비롯해 한반도의 귀추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하는 주인공이 둘 다 '난민'의 아들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북한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세계의 평화를 지향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지도자가 '난민'의 아들들이다. 나는 우리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인  '난민'의 아들이라는 것이 너무너무 자랑스럽다. 일본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이다. 일본을 이기고 싶으면 이렇게 이겨야 한다. 축구시합에 국가의 자존심을 걸지 말자. 내가 축구팬이 아니라서 그렇다. '난민'의 아들이, 사회적 약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에 자존심을 걸었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레이스실로 짠 작은 꽃이 모여서 '보름달'처럼 보이는 수국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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