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7 사드 반대, 사드 참외 싫어!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잔뜩 흐려서 우중충하다가 반짝 해가 나기를 거듭하다 전체적으로 우중충 모드가 되었다. 장마철 날씨로 높은 습도에 기온도 30도가 넘는 불쾌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날씨다. 습도가 높아서 빨래를 해서 널어도 잘 마르지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청소였다. 청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걸레질인데, 걸레 물기를 꼭꼭 짜서 썼다.
오늘 아침에는 습기가 높은 날씨가 계속되니 몸도 습기를 흡수해서 마음까지 처진다. 아침에 어제처럼 농가에 야채를 사러 갈 예정이었다. 우선, 아침을 먹고 농가에 가려고 했더니, 시간이 늦었다. 농가는 아침 10시에 끝난다. 아침을 먹고 나니 9시 반이라, 서둘러 나가야 할 판이다. 농가에 가는 걸 쉬기로 했다.
어제 새로운 농가에 가서 토마토와 콩, 오이를 사 왔다. 아침에 딴 것을 집에서 파는 것이다. 야채를 사서 다른 곳에 들렀지만, 거기는 문이 닫혀 있었다. 강을 건너기 전에 떨어진 토마토도 하나 줏었다. 어제 산 야채는 특별히 가격이 싼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콩을 삶아 먹었더니 감동적이었다. 콩이 신선해서 달짝지근하며 부드러웠다. 오랜만에 소박하기 그지없는 맛에 감동했다. 나무에서 완숙한 토마토도 아주 맛있고, 신선한 오이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농사를 아주 잘하시는 농가에, 파시는 분이 겸손했다. 이런 분들의 태도도 오랜만에 접하는 것 같아서 신선했다.
오늘 아침에 청소를 하면서 내내 화가 났다.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 탓이 아니다. 근래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 많다. 그러나, 나는 외국에 사는 처지라,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겠지 싶어서 방관한다. 그런데, ‘사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한국의 보도를 보면서 궁금한 것은 ‘참외’ 편에선 보도가 없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참외’의 목소리가 궁금하다.
요전에 죄 없는 ‘고등어’를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황당하게 공격했다. 소금에 간절여진, 냉동된, 말려져 말 못 하는 ‘고등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고등어’를 편들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동안 ‘고등어’를 먹으며 얼마나 ‘고등어’에게 신세를 졌나,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나중에 ‘고등어’가 주범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해괴한 쇼를 벌였다. 너무나 황당해서 웃기지도 않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고등어’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등어’는 반갑지 않게 매스컴에 등장해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번에는 ‘참외’다. 나는 ‘참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옛날과 달리 세계 각국의 과일이 넘쳐나겠지. 그렇다고 한국의 고전적인 과일인 ‘참외’의 위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한국을 떠나 산지 오래서 잘 모르겠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보면 ‘참외’가 인심을 못 얻은 것 같다. 그래도 ‘참외’ 편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성주에 사시는 분들이다. 성주에 사시는 분들이 삭발에 혈서, 단식투쟁을 불사하는 ‘투사’가 되는 걸 보고 가슴이 먹먹하다. ‘참외’ 편인 사람들은 성주에 사는 분 들뿐인가?? 농식품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소비자이지만, 그동안 '참외'덕을 봤던 공무원도 있을 텐데..
이번 일의 경과를 보면서 정말로 궁금한 것이 많다. 서민적인 과일의 대표격인 ‘참외’ 대신에 먹지도 못하는 ‘사드’를, 그것도 국민의 혈세를 왕창 써서 들여오는 이유를 이해가 안 된다. 미안하지만, ‘사드’와 ‘참외’는 비교가 안된다. 오랫동안 한국사람들과 함께 해온 ‘참외’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사드’를 어떻게 같이 논하겠나? ‘사드’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의 서민적인 과일의 대표인 ‘참외’를 몰살시키려는 거대한 음모로 보인다. ‘참외’가 그렇게 밉보일 이유가 있었나? 아니, ‘참외’ 성격이 까칠했었나? 서민적이라서 그런가?
그동안 ‘참외’가 얼마나 많이 한국사람들에게 먹히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나? 과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참외’는 오랜 친구 같은 과일이다. 비록 ‘참외’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곳에 살지만, 한국에 가면 ‘참외’를 먹고 온다. 그런 나의 지조는 갈대 같아, 멕시코에서 온 ‘망고’에 미쳐서 담을 쌓거나, 필리핀에서 온 망고로 성을 쌓기도 한다. 노지 토마토가 맛있는 계절에는 피를 토마토로 바꿔 토마 토족으로 거듭나고 싶기도 한다.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수박 궁전에 살고 싶다는 헛된 꿈도 꾼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친구 같은 ‘참외’를 잊은 것은 아니다. 어쩌다 ‘참외’ 같은 걸 만나면 싹쓸이해 사서 ‘참외’와의 우정을 되새긴다.
나는 ‘사드’를 잘 모른다. 그러나, ‘참외’와 바꿀 대상은 아니다. 오랜 친구 같은 ‘참외’와 먹지도 못하는 ‘사드’는 비교가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참외’가 ‘사드 참외’가 되는 것이 싫다. ‘참외’와 의리를 지키려고 내 의견을 밝힌다. 나는 '참외'편이다. ‘참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사진은 어제 사서 먹은 야채, 큰 토마토가 주운 것이다.
'한국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어먹을 올림픽 (0) | 2020.08.11 |
---|---|
이유미 씨 진실을 밝히세요 (0) | 2020.07.20 |
난민의 아들 (0) | 2020.07.11 |
눈물이 났다 (0) | 2020.06.21 |
경축! 북미 정상회담 (0) | 2020.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