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1 생성아, 반갑다!
오늘도 동경은 폭염으로 최고기온이 35도에 최저기온이 26도였다. 주말이지만 보강이 있어서 학교에 다녀왔다. 보강이라, 마지막 시간에 보여줄 예정이었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려면 설비를 사전에 세팅을 해야 한다. 지난 주에 세팅을 부탁했다. 어제 확인했더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수업시간에 늦을 정도로 시간을 뺏기고 말았다. 세팅을 하기로 한 것은 지난 주에 끝난 것을 나중에 알았다. 오늘은 주말이라, 학과 사무실은 문을 닫아서 더 큰 곳에 직원이 몇 명 있을 뿐이다.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실도 평소와 다른 곳이라, 익숙하지 않다. DVD를 넣고 재생을 눌러도 재생이 안된다. 뙤약볕이 내리 쪼는 교정을 달려서 사무실 직원을 불러왔다. 예감이 들어 맞아서 싫다.
오늘 학생들에게 보인 것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였다. 이전에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추천해서 산 것이다. 나는 서울에 갔을 때 극장에서 봤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말이 참 곱다는 것이다. 일본어 자막으로 고운 말 뉘앙스가 전달이 안될 텐데, 자막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설마 자막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자막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내가 곱다고 느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대화를 비롯해서 대부분 내용에 자막이 없는 것이다. 일본어로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화도 안 날 정도로 엉망이다. 이런 상태로 상품으로 팔면 안 된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것이라면 일본 사람들이 보고 이해할 정도의 자막을 넣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기가 막힌 상품을 팔고 있다는 게 믿기가 힘들다. 이전에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한국어 공부를 해서 한국어가 좀 가능하다. 수업에서 한 번 썼지만 다시 쓸 수 있을지 가늠이 안된다. 만약에 쓴다면 내용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한다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학교에서 일처리를 하고 한참 더운 시간대에 집을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습관처럼 마트에 들렀다. 살 것이 별로 없었는데 생선 코너에 옥돔이 있는 게 아닌가? 옥돔이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이 서민적인 마트에 고급 생선인 옥돔이 있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옥돔을 한참 바라보면서 뭘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마음을 접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요리할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나,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것인가. 언제 다시 만나려나. 아무래도 옥돔을 사야 할 것 같아 다시 생선 코너에 돌아갔다. 안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옥돔을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요? 어떻게 먹다니요? 내가 어릴 때 자주 먹던 생선이라, 마트에 잘 나오지 않는 거라, 사도 요리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회를 쳐서 먹고, 보통은 굽죠. 비늘까지 맛있어서 비늘을 붙인 채로 굽는 것도 있단다. 그 사람은 단순한 알바가 아니라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단순한 알바는 생선에 대한 지식이 없다. 생선가게나 과일가게 사람은 생선이나 과일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요즘 마트에서는 보기가 힘든 사람들인 것이다.
옥돔은 일본에서 고급 생선이다. 교토의 고급 요정에 등장하는 생선이다. 주로 관서지방에서 귀하게 모시는 생선에 생산지도 관서 쪽이라, 서민들이 사는 관동지방 동경의 서민적인 마트에 올 일이 없는 귀하신 몸이다. 내가 산 것도 시마네현에서 온 것이다. 오늘 생선 코너에는 명절도 아닌데 가격이 센 고급 생선이 좀 있었다. 분명 무슨 절기인 것이다. 평소에는 먹지 못하지만 고급 생선을 살 만한 절기다. 오봉인가? 생선을 가공하는 분도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니 기분이 상당히 좋아져서 나는 갑자기 대단한 손님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내가 산 가격은 비싼 편이 아니지만, 생선 중에서는 전복 다음으로 비싼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먹던 옥돔을 봐서 반가워서 비쌌지만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샀다. 마트에 있는 것을 다 샀다. 작은 것은 신선하지 않고 작은데 가격도 비싸다고 여겼지만 남기지 못해서 그냥 샀다. 같은 생선이라도 산지나 계절에 따라 맛이 다르다.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무엇 보다도 제주도에서 먹던 것과는 선도가 확실히 다르다. 생선에 선도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제주도, 서쪽에서는 '생성, 생선'이라고 불렀다. 옥돔이라는 것은 나중에 서울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알았다. 서울 사람들이 옥돔을 인지한 것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제주도에서 '생성'은 특별한 생선이었다. 가격이 아니라, 생선으로서 특별한 품위를 지닌 것이었다. 제주도에서는 국을 끓이거나 구워서 먹는다. 소금 해서 약간 말린 것을 굽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말린 생성으로 국을 끓이기도 하고 죽을 끓이기도 했다. 뭐를 해서 먹어도 생성에서는 특유의 향기가 났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 제사와 명절에도 아플 때도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생선이었다. 지금은 가격이 비싼 고급 생선이 되고 말아서 어릴 때 먹었던 생성이 그립다.
어릴 때 먹던 생성은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것이다. 선도가 좋은 생선을 바로 국을 끓여 먹는다. 대부분은 소금 해서 잘 말려서 말린 것을 살짝 구워 먹는다. 지금처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것이 아니라, 석쇠에 불에 직접 굽는다. 그러면 향기로운 기름이 올라오고 조직감이 살아서 씹으면 씹을수록 맛있다. 말린 생성은 뼈가 딱딱해도 빨아먹는다. 반건조로 냉동해서 파는 걸 먹은 적이 있다. 솔직히 생성이라고 해서 그런가 할 뿐 어릴 때 먹었던 것과 비교가 안된다. 아무래도 근해산이 아니라서 산지가 다른 것과 먼 곳에서 잡은 것을 가공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선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니면 생성이 사는 곳이 틀려서 맛이 다르다는 것인가? 아니면 생성이 아니라, 그 사촌들인가? 할 정도로 다르다.
생성을 많이 먹었지만 내가 요리를 한 적은 없다. 오늘 인터넷으로 뒤졌더니 옥돔 매운탕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매운탕 같이 양념 맛이 강하면 생성의 섬세한 맛과 향기가 죽고 말 텐데.......... 우선 소금을 쳐서 물기를 빼기로 해서 소금을 치고 냉장고에 넣고 야채를 사러 갔다. 오늘도 운이 좋아서 참외가 있었고 착한 가격의 오이와 블루베리가 있어서 왕창 샀다. 참외가 어제는 하나에 100엔이었는데 오늘은 150엔이었다. 마트에서 옥돔을 싹쓸이한 것처럼 참외도 싹쓸이했다. 헌책방에도 들렀지만 사고 싶은 야채가 없었다. 내가 오늘 옥돔에 눈이 뒤집혀서 과소비했다. 일주일치 식비를 하루에 쓰고 말았다. 어제는 스트레스였는데 오늘은 더위를 먹은 것인지, 아니면 옥돔을 보고 눈이 뒤집히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가끔 미친 짓을 한다.
작은 생성은 프라이팬에서 구었더니 물러서 살이 다 해체되고 말았다. 예상대로 신선하지 않았다. 큰 것은 하나는 냉동하고 남은 하나로 국을 끓였다. 한살림 돌미역을 물에 담갔다가 같이 끓였다. 생선을 손질해서 피를 칫솔로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로 밑 처리를 했다.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미역을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생성을 넣고 살짝 끓였다. 살짝 끓이지 않으면 살이 부서진다. 작은 고추를 두 개 잘라서 넣었다. 간은 소금으로 했다. 맛을 봐도 실패한 것 같았다. 재료값이 아까워도 어쩔 수가 없다. 국을 끓여서 베란다에 놓고 식혔다. 나중에 먹어 보니 생성에서 향기로운 기름이 나와서 훨씬 맛이 좋아졌다. 역시, 생성이었다. 반갑다 얼마 만에 먹는 것인가.
오늘은 저녁을 많이 먹어서 국을 먹지 못한다. 아까, 국을 조금 덜어서 맛을 봤을 때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전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음식을 먹고 전율을 느낀 적이 없다. 자신의 느낌이지만 아주 생소하다. 책에 음식을 먹고 전율을 느꼈다는 표현이 나왔다면, 설마? 하고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몸이 반응을 했다. 이 전율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인가? 아니면 생성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풍경인가? 나도 가늠이 안된다. 어릴 때 먹었던 기억의 세포를 국물이 깨웠나? 참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애써 전율을, 일렁이는 감정을 잠재운다. 생성이 제주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웠다고? 설마...... 더위를 먹은 것이겠지.
생성아, 반갑다, 오랜만이네. 나에게 생성국이 몸과 마음의 보양식이 될 것 같다. 역시 생성은 특별하다.
오늘 산 과일과 생성 사진이다. 생선은 비늘을 제거하고 창자를 뺀 상태라서 덜 예쁘다. 그래도 잘 생겼다. 완전 플레이보이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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