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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도

제주도의 난민, 조선 말기

2018/07/03 제주도의 난민, 조선 말기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간 뜨거운 날씨였다. 저녁에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내려가서 다행이다. 같은 기온이라도 바람이 없으면 덥다. 어젯밤에 잠을 자다가 모기에 물려서 잠을 깨고 말았다. 모기가 싫어한다는 방향제 포장을 뜯어서 설치했다. 모기향도 피우고 다시 잠을 잤는데 쉽게 잠들지 못해 수면부족 상태로 일주일을 시작했다. 몸이 찌뿌둥한데 날씨는 너무 더워서 정신이 없었다.

 

 

제주도 문화에 대한 소개를 하겠다. 내가 박사논문에서 처음 도입한 것이 제주도 고유의 문화로 '해인 문화'라는 측면이다. "해인은 어로, 교역, 해적 등을 주된 생업으로 하기 때문에 이동은 그들의 활동을 실행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해인이 활동하는 공간은 넓고 이문화와 접하는 기회도 많다". 해인은 그 활동에 따라 이동했던 현지 문화를 흡수하고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해인이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을 해역 세계라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 중에는 해역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동 범위는 한반도의 연안을 비롯해서 중국 요동반도까지 진출했다. 제주도 사람들이 했던 일은 교역과 어로였으며 경우에 따라서 나라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이런 생활형태는 20세기에도 고스란히 볼 수가 있었다. 해상 무역로에 위치한 제주도에 살면서 넓은 해역 세계를 이동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태풍이나 선박의 고장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표류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제주도 사람들이 표류했던 지역은 일본 고도열도, 도카라열도, 류큐열도, 중국 연안 각지를 비롯해 상당히 넓은 범위였다. 표류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송환된 사례이기에 송환이 되지 않은 것까지 상상하면 실제로는 표류가 상당히 많고 범위도 넓었다고 볼 수 있다. 표류했던 제주도 사람들은 재해를 피한 '난민'으로 볼 수가 있다. 선박이 풍랑을 만나거나 고장이 나서 '난민'이 되었던 제주도 사람들이 송환된 것이다.

 

한편 제주도에 표착했던 외국 선박에 대해 제주도에서 대처한 것을 살펴보자. 조선 말기인 1848-82년 사이 제주도에 표착했던 외국 배에 관한 논문을 보면 16건이었다. 일본 선박이 10, 청나라 선박이 6건이었다. 일본 선박의 출발지가 사가현 히라토 1, 가고시마 4, 사쓰마 성내(가고시마) 2, 야마구치현 쓰시마 2, 같은 야마구치현 아부군 1건이었다. 청나라 선박 출발지는 광동성 1, 강남성 3, 산동성 1, 절강성 1건이었다. 선박들은 어선을 비롯해서 교역을 하던 상선, 해적활동을 하던 해적선, 실종자 수색이나 조세를 운반하던 관선이 있었는데, 교역을 위한 상선이 가장 많았다. 선박에 타고 있는 사람은 일본 선박에는 일본인과 류큐(현 오키나와)인이고 청나라 선박에는 중국인과 프랑스인, 러시아인이 타고 있었다. 넓은 해역 세계에서 해인들이 다양하게 교류했던 걸 엿볼 수 있다. '난민'이 되어 제주도에 표착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면 제주도에 표착한 '난민'에 대해서 제주도에서 어떤 대처를 했나 보자. 각 선박을 상세하게 조사하여 보고 했다. 표착한 선박 사람들에 대하여 식량, 의료, 연료 등을 지급했다. 외국 선박이 표착한 경우 보고를 받아 지방관료가 그 경위를 조사하러 나갈 때, 통역관과 기록하는 사람을 대동해서 외국배에 탄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주의할 것은 외국인과 만날 때 '동정심(배려심)으로 대하고 식량 등 필요한 것을 새롭고 깨끗한 것을 주도록 정해져 있었다'. 특히 외국인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외국인이 자국으로 귀국한 후에 제주도에 대한 나쁜 인상을 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에 제주도 사람들이 그 지역에 표류하였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선 말기에 제주도에 표착한 '난민'을 대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제주도는 외부사람(디아스포라)들에게 열린 곳이었으며 이문화 교류가 많고 외부사람들에게 관대했던 곳이다.

 

조선 말기, 결코 물자가 풍부했던 것도 아닌 시대에도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해 표류한 '난민'을 따뜻하게 맞아 상대방이 상처입지 않도록 배려하는 인도적인 대처를 했다. 그들이 안전하게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일종의 외교적인 대처이기도 했다. 이런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요즘 '예멘 난민'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혐오'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멘 난민'을 공격하는 것은 그야말로 산사람을 잡아먹겠다는 것과 같이 보여서 너무 무섭다. '난민'들이 오죽했으면 땅설고 물선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을까? '난민'들은 곤경에 빠진 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조선 말기처럼, '난민'을 대할 때, 상대방이 상처입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될까? 그들이 생존에 필요한 것을 제공할 여력은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제주도에서는 '난민'을 박대하지 말았으면 한다제주도에는 옛날부터 '거지'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하고 없는 중에도 같이 공유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온 사람들은 '난민'이기에 더 안전하고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던 제주도에 예멘이라는 조금 먼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부디 조화롭게 같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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