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맑고 최고기온 24도였다. 오후 늦게 4시 가까이 되어 산책을 나갔을 때도 아직 덥다고 느낄 정도여서 낮에는 꽤 더웠다. 오늘도 밖에서 1시간 반 이상을 산책하고 놀다가 와서 저녁이 되어야 정신이 좀 든 느낌이다. 저녁을 먹고 주말에 방영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를 몰입해서 봤다. 나도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찐한' 인간관계는 없는 것 같다. 같은 동네 사람들과는 거의 가족처럼 여기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찐한' 것은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것은 도일 제주도인 '제2세대'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본에 와서 교육을 받고 성장해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정책의 영향으로 '황국 소년'으로 성장했다. 자신들이 '일본인'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철저한 세뇌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갑자기 '조선인'이라는 걸 각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 민족성의 확립을 지향하는 중심적인 사람들이 된다는 '찐한' 이야기다.
제3절 도일 제주도인의 세대 구분
1. 제2세대(1931-1950년)
‘제1세대’를 뒤따라 도일하는 세대가 ‘제2세대’이다. 연령대로 보면 ‘제1세대’의 자녀나 아주 어린 동생 벌이 된다. ‘제2세대’가 도일하는 시기가 되면 제주도에서 일본을 왕래하는 것은 이미 일상적이었다. 제주도에서 서당을 마치고 소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서, 근대화된 도시를 동경해서, 결혼해서 상대와 같이 살기 위해 등 다양한 목적으로 도일과 귀향이 반복되었다. 제주도인의 이동형태도 ‘제1세대’가 초기에 계절적인 단신 이동에서 부부나 가족단위로 도일하게 되었다. 제주도인의 일본 왕래가 일상화되면서 제주도와 일본 도시가 하나의 생활권이 되었고 점차 일본에 정착하는 제주도인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도일하는 세대가 젊은 세대가 중심이었다. ‘제2세대’도 ‘제1세대’와 같이 젊은 세대가 많이 차지하고 있었던 걸로 본다(159).
제주도인 젊은 세대가 자립하는 과정에서 도시 공장 노동자가 되어 가족을 형성하고 도시에 계속 거주하게 된다. 결국, 도시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아 도시에서 일하며 사는 그들이 제주도에 돌아가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일본에서 생활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부모를 따라왔던 어린이들은 제주도 말도 잊고 제주도에서 살면 성장과정에서 학습하게 되는 해녀나 어부, 농업에 대한 직업훈련의 기회도 없이 대도시에서 성장하게 된다. 결국, 도시에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성장하게 된다. 게다가 2세들도 제주도 공동체에서 컸다고 해도 일본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제2세대’는 마을에서 서당을 가는 게 당연하던 ‘제1세대’와 달리 마을에 있는 소학교나 인근 마을 소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제주도에서 생활세계가 조금 확대되었다. 제주도에도 교통수단이 발달되고, ‘제1세대’보다 제주도내에서 이동 경험도 많은 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대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강요에 의해 가장 ‘일본인화’ 되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제2세대’가 제주도나 일본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는 시기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에서 조선어를 말살하고 창씨개명을 강요, 신사참배 강요 등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이미 일본어로 교육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면 ‘황국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 세뇌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란 ‘황국 소년’이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제주도나 일본 제주도인 커뮤니티에서 성장하면서도 자신이 제주도인이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가 없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면 식민지 출신이기 때문에 보다 완벽한 ‘일본인’이 되기를 강요당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청년기에 들어설 무렵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갑자기 자신들이 ‘조선인’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철저한 ‘황국 소년’으로 성장해서 조선어도 모르고 일본명을 쓰며 부모가 조선인인 걸 부끄럽게 여기던 그들이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조선이 독립하면서 갑자기 ‘조선인 청년’이라는 걸 각성하게 된다. 이번에는 ‘조선인’이면서 조선어를 못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고 조선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조선인 단체를 결성하거나 조선인 교육기관 설치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완벽한 ‘일본인’이 되어야 했던 그들이 이번에는 완벽한 ‘조선인’이 되는 걸 추구해야 했다. 완벽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세뇌교육이 강력했던 만큼 그에 대한 반동으로 ‘조선인’으로서 각성 또한 매우 강력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제2세대’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 ‘민족성’을 확립하는 주체가 되어 ‘재일적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념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인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일본에 살면서 결혼, 명절, 가족의 관혼상제에 참가하거나 병들면 휴양을 위해서 고향을 찾는 일이 빈번했다. 마치 도시 거주자가 가끔 고향의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감각에 가까웠다고 본다. 정기항로로 인한 이동수단의 편리성은 제주도와 일본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제주도인의 일본에 빈번한 왕래는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서 많은 제주도인이 일본에서 제주도로 귀향했다. 그와 동시에 일본 각지에서 흩어져 살던 제주도인이 제주도인 커뮤니티에 모이게 된다. 전쟁 중에 피난해서 일본 각지에서 소개해서 살았던 제주도인이 제주도인 커뮤니티에 집중하는 현상을 보인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소개는 일본뿐만 아니라 제주도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패전 직후 혼란한 시기에는 자주적으로 배를 구입해서 제주도로 귀향한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인은 일본의 패전으로 귀향했지만 제주도에서도 전쟁이 끝난 충격을 받아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걸친 것이었다. 거기에 제주도는 1945년부터 1948년 4.3항쟁을 맞아 각지에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4.3 항쟁을 향해 그에 관련한 사람들의 활동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귀향했지만 막상 제주도에는 일자리도 없고 장래가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그렇다면 오래 살아서 익숙한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과 4.34.3 항쟁에 관련해서 특히 젊은 세대에게 다양한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되어 갔다. 그래서 4.34.3 항쟁에서 도피하기 위해 젊은 세대가 다시 도일한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특히 1948-1950년은 4.3 항쟁과 한국 전쟁을 피해서 도일한 경우도 아주 많이 있었다고 한다.
‘제2세대’를 1950년까지 구분하고 있는 것은 1950년까지 1945년 이전에 일본에 거주했던 제주도인이 다시 도일하는 이동이 빈번했다고 본다. 물론, 그 외에는 어릴 때 전쟁이 끝나서 귀향했다가 성장해서 1950년 이후에 다시 도일한 경우도 적지 않다. 1950년 이후 도일한 세대는 도일 연도에 차이가 있는 ‘제2세대’와는 결정적으로 의식이 다르다고 보기에 1950년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고 1950년 도일과 1951년 도일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한국과 일본의 국가 간의 관계에서 보면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한반도가 독립하는 걸 하나의 구분하는 기준으로 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제주도인의 실질적인 이동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제2세대’ 구분을 1950년까지 하고 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 제주도인의 도일 수단은 자주적인 것으로 밀항이 대부분이었다.
각주
159) 예를 들면 나중에 제주도인의 지연 결합에서 검증하지만, 「関西地方愛月会」 회원의 중심 연령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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