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6도까지 올라갔다. 햇볕이 따가울 것 같아 낮에는 집에서 지내고 오후 늦게 산책을 나갔는데 그 시간에도 여전히 햇볕이 따가웠다.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산책을 하다 보니 좀 선선해졌다. 오늘도 오후 늦게 산책을 나가 밖에서 신선한 공기와 상쾌한 신록의 향기, 주변에 핀 예쁜 꽃들과 교감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요새 일교차가 심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서 하는 일 없이 쉽게 피로를 느낀다.
오늘 소개하는 내용은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에 관한 내용이다. 도일 제주도인 '제3세대'가 '밀항자'였다면, '제4세대'는 '불법체류자'이다. 박사논문을 쓸 당시가 '제4세대'에 대해 조사를 계속하고 논문을 쓴 게 딱 중간 정도 시점이다. '제4세대'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논문을 계속 발표한 것이 짧아도 20년 이상이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어차피 다른 챕터에서 다루기 때문에 짧게 요약해서 썼다. 내가 제주도 사람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실은 '제4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부터다. 학부 졸업논문에서 당시 제주도에서 일본, 요코하마로 돈 벌러 오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 너무 재미있게 보여서 조사를 시작했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 같은 마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유학생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살면서 일하는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날 구실로 연구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마을 사람들이 왔다고 해도 볼 일이 없을 정도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를 조사하기 이전에 다른 인연으로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 간 적이 있었다. UN에서 일본에서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조사가 나왔는데 어쩌다가 내가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되어 고토부키초에 처음으로 갔다. 요코하마는 언니가 살고 있어서 그래도 좀 아는 편이다. 고토부키초와 인접한 차이나타운인 주카가이에도 갔었고 고토부키초에 가까운 역인 이시카와초의 반대편 출구는 쇼핑을 하기 좋은 모토마치로 연결된다. 나는 동경에 살면서도 모토마치에 쇼핑을 하러 갈 정도로 잘 갔던 곳이다. 그렇지만 고토부키초 같은 일용노동자만 모여 사는 동네가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당시는 일본에 세계에서 가장 경기가 좋다고 버블경기로 떵떵거리던 시절이라서 화려했다. 그런데 고토부키초에 가서 이런 동네가 있고 외국인 노동자가 모여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참고로 요코하마 고토부키초는 일본 3대 요세바라고 불리는 일용노동자만 모여 사는 동네 중 하나이다. 일본 3대 요세바는 동경의 산야,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요코하마의 고토부키초다.
왜냐하면 일본이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해 엔 환율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1985년 1불 235엔에서 1년 후에는 150엔이 될 정도로 엔고가 된다. 당시 유학생으로 유학생 회장이었던 나는 엔고로 인해 유학생들이 집에서 받는 송금이 갑자기 30% 이상 줄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걸 이유로 대학에 학비 감면을 요청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주변에서 보면 사립대학에 다니는 사비 유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다가 엔고가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걸로 안다. 유학생에 대한 지원으로 학비 감면 요청에 대해 내가 다니던 대학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알려야 해서 매스컴에도 나갔다. 이전부터 유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상담하는 자원봉사자 그룹인 '유학생 상담실'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 문제를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다. 거기에는 다른 나라 출신 유학생도 몇 명 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는 일본에 유학생 문제에 관한 상담을 하는 곳도 거의 없었고 대학에서도 유학생을 받기는 하지만 유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학생 상담실'은 일본에서 유학생 문제를 상담하는 곳으로 '원조'격이었다.
거기에 나는 1988년부터 동경도 노동문제 연구소에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를 할 때 조사원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인터뷰를 하는 입장으로 학부생이면서 가장 많은 인터뷰를 따냈다. 참고로 동경도 노동문제 연구소는 일본에서 노동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곳이다. 학부 때 지도교수가 당시 그 프로젝트를 담당해서 그 인연으로 가게 되었다. 동시에 당시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표면에 떠오르지 않은 상태로 극히 일부 활동가들이 모여서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주렌'이라는 조직으로 발전한다. 나는 활동가도 아니었지만 매달 그 모임에 참가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한국 교회 교단에서 운영하는 재일 한국인 문제 연구소 소장이었던 인연으로 나갔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유학생 문제에 대해 초기부터 다양한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아마,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경도 노동문제 연구소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와 인터뷰를 해서 재미있는 인터뷰를 따온다고 호평을 받았지만 나는 상대방의 나라에 대해 잘 몰라서 수박 겉핥기 식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는 당시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관해 논할 때 주로 유럽의 외국인 노동자를 예로 들며, 특히 독일의 외국인 노동자, 터키에서 온 사람들을 사례로 들었다. 일시적으로 쓰려고 했던 사람들이 정주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 3개월 배낭여행을 하면서 그런 걸 조금 보려고 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 간호사로 갔던 사람을 만났고 일했던 이야기도 들었다. 터키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와는 전혀 질적으로 다르게 유럽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걸 알았다. 일본 외국인 노동자는 그야말로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이었기에 유럽의 외국인 노동자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걸 알았다.
위에 쓴 것과 같은 활동을 하는데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 제주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같은 마을 사람들도 많이 와서 나에게는 그야말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아닌 아는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일본에서 일하는 걸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유학생 문제라고 해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듯, 아무리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도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례를 접하게 된다. 다른 나라 출신 외국인 노동자와 인터뷰를 해도 지식이 부족해서 수박 겉핥기 식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난 셈이다. 나는 어쩌다가 그 후에도 계속 공부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공부하거나 연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은 사회에 나가는 시간을 벌려고 다녔지만 말이다. 나에게 연구를 계속하고 공부하게 만든 연구대상은 제주도인 '제4세대'라는 걸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나는 왜 제주도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냐면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가 일본에 와서 일본어 한마디도 모르면서 다음날부터 일하러 나가는 생활을 봤기 때문이다. 유학생이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 능력시험에서 1급을 따고 다른 시험도 보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유학생은 공부한다고 대학에 돈을 내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일해서 돈을 받는다. 유학생은 돈을 쓰지만 그들은 돈을 번다. 내가 보기에는 유학생보다 그들이 몇 배나 똑똑하다. 일본에서 유학생과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라도)는 일본에 온 목적이 다를 뿐 같은 사람이다. 제주도에서 알던 사람들이 일본에서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걸 보니 내가 알던 같은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로 보였다. 유학생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맨땅에 헤딩하면서 나가는 제주도 사람들에게서 완전 '빛나게' 보였다.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내가 홀린 모양이다.
나도 분류를 한다면 '제4세대'에 속할 것이다. 나는 같은 시대에 일본 동경에서 학생으로, 나중에 연구자가 되어 그들을 기록하는 입장으로 살았다. 내가 학생에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라는 아주 매력적인 연구대상을 만난 덕분이라는 걸 지금 알았다. 그래도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기록하는 입장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내가 쓰는 글이 일본에서 불법체류자였던 그들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재판을 한다면, 재판 자료로 쓸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성실히 기록했다는 점이다.
제3절 도일 제주도인의 세대 구분
1. 제4세대(1986-1999년)
‘제4세대’는 일본의 버블경기로 인한 호황기에 엔고 임금과 노동력 수요라는 풀 요인과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푸시 요인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제4세대’는 한국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학력도 이전세 대보다 높아지고 그래서 평균 연령층도 이전세 대보다 다소 높아졌다. 평균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남성은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경험을 갖고 도일하고 있다. ‘제4세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80년대 도일 제주도인 커뮤니티 형성에 관하여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제4세대’가 도일해서 제주도 지연을 매개체로 짧은 기간에 커뮤니티를 형성해가는 모습을 보면 ‘제1세대’ 제주도인 커뮤니티 형성과정을 보는 느낌이 든다. ‘제4세대’는 제주도인이면서 한국인인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대이다. 한국에서 사회이동도 빈번하고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취업해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어 한반도 사람들과 접촉도 풍부한 세대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일해서 한반도 사람들, 일본인,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경험을 하고 다시 제주도인끼리 뭉쳐서 일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1세대’가 한반도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 적었고, 언어가 다르고 생활습관의 차이에 따라 제주도인끼리 모여서 커뮤니티를 형성했던 경위와는 다르다. ‘제4세대’도 날마다 함께 일해 보고 결국, 제주도인끼리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제주도인과 한반도 사람들과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온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 세대는 도일해서 한반도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지내고 일해본 결과 제주도인 정체성(제주도인의 국가관!)이 재인식되고 강화되었다. 그 이전에는 자신들이 제주도인이라기보다 한반도에서 온 사람과 같은 한국인이라고 인식했다.
2. 결론
지금까지 제주도의 문화적 배경과 일본과의 접촉, 일본인과 제주도인의 교류를 살펴봤다. 그것을 배경으로 제주도인의 일본으로 이동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 같다. 제주도인의 일본으로 이동한 ‘제1세대’부터 ‘제4세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간 각 시대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제주도의 상황, 한반도와 일본의 정세가 있지만 그에 국한되지 않는 점도 있다. 도일 제주도인 전 세대에 걸쳐 볼 수 있는 공통점은 젊은 세대가 자립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도일이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도인에게는 일본이 그만큼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동은 일본과 정기항로가 없었던 시절에 ‘제1세대’가 자주적으로 바다를 건넜듯이 ‘제3세대’가 한국과 일본의 규제를 뛰어넘어 도일했듯이 그들의 이동은 국가 간의 규제나 국경에 가로막힌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인의 일본 이동은 15-6세기부터 한반도, 요동반도까지 이동해서 생활을 영위해 왔던 사람들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동안 국가(조선시대, 일제강점기)가 소멸하고 다시 새로운 국가(한국)가 성립되었다고 해도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전통적으로 계승된 생활양식은 국가체제에 의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161).
각주
161) 거주지의 선택과 이동이 개인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지역, 예를 들어 북한 등에서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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