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경생활

매실잼의 계절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31도라고 해서 31도인 줄 알았다. 저녁에 봤더니 최고기온이 29라고 한다. 요새도 춥고 비가 왔는데 오늘은 맑고 기온이 급상승했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이틀 연속 날씨가 맑다는 일기예보에 담요를 빨아서 집어넣기로 했다. 아침부터 담요를 넉 장이나 빨았다. 세탁기에 넣을 수 있는 것은 한 번에 한 장이라서 세탁기를 네 번 돌렸다. 다른 빨래를 먼저 했으니 아침에 세탁기만 다섯 번 돌린 셈이다. 담요라고 하지만 소재가 다르기에 늦게 마르는 면 퀼트를 가장 먼저 빨고 빨리 마르는 걸 나중에 빤다. 빨래를 말릴 수 있는 장소가 좁기에 담요를 부지런히 뒤적거리면서 빨리 마르게 손질을 한다. 산책 나가기 직전까지 담요를 말려서 정리하고 침대 세팅을 바꾸고 여름 이불도 바람을 쏘여서 내놨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 쳤던 짧은 커튼도 떼서 빨아서 바람이 잘 통한다. 선풍기도 내놨다.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어도 여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다행히 항암제를 65%로 줄여서 항암치료를 할 수가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8시인데 저녁에 집에 도착한 시간이 5시 가까웠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걸린 셈이다. 이번 병원에서 쇼크였던 것은 지금까지 했던 항암제가 전혀 듣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가 정기적인 항암제 투여를 못해서 그런 건지, 항암제를 줄였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한다. 의사가 모른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항암제를 변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항암치료받느라고 신경 쓰면서 지내고 그동안 들었던 시간과 비용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다음 항암치료 예약은 4주 후로 예약했고 CT도 찍자고 한다. 병원에서 집에 올 때는 여전히 휴대용 링거를 맞고 있는 상태지만 병원을 나서면 기분이 좋다. 

 

 

지난번 항암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에 와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기 전날 지우려고 발랐다. 지우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손에 바르면 하루도 가지 않는데 발에는 아주 오래 깨끗한 상태가 유지된다. 그렇다고 샌들을 신어서 발톱을 보일 일도 없는데 매니큐어를 발랐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손톱이 갈라지고 손이나 얼굴도 햇볕에 잘 탄다. 나는 그동안 매니큐어를 바르면 손이 너무 화려해져서 부끄러워 매니큐어를 거의 바르지 않았다. 손톱이 아주 얇기 때문에 실은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이 좋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눈에 띄는 외모에 손까지 화려하면 정말로 재수 없어할 외견이 될 것 같아서다. 그런데 막상 항암치료를 받게 되어 그 영향이 손톱이나 피부에 나타나 이제는 매니큐어를 하려고 해도 못할 것 같으니 왠지 손과 발에 그동안 홀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손이 예쁘다는 말을 잘 들었다. 미장원에 가면 원장님이 손을 쓰다듬고 다른 사람들도 내 손을 부러워했다. 손을 찍는 사진 모델을 해도 되겠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손이 부끄러웠다. 정말로 내 손을 보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잘난 척하는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를 먹고 손도 적당히 망가졌지만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손톱이 다 갈라지는 건 예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래도 아직 문장을 입력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금요일에는 친한 이웃과 함께 산책을 하고 매실을 주우러 갔다. 친한 이웃은 주변을 아주 많이 걷기 때문에 인근 사정에 매우 밝다. 그 매실밭에서 이전에 매실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 떨어진 매실을 주어도 된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도 매실이 나무에서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매실이 실하고 좋아서 상태가 좋은 것만 골라서 넣었다. 배낭을 메고 작은 가방에 다 넣었는데 친한 이웃이 몸이 힘드니까 적당히 하라고 한다. 나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할 생각이었는데 배낭을 메고 작은 가방에 넣은 것까지 들고 오는데 괜히 숨이 가쁘다. 도중에 공원에서 쉬느라고 배낭을 벗었더니 짐이 꽤 무겁다는 걸 알았다. 마트에서 파는 매실과 양을 비교했더니 적게 잡아도 20킬로 가까울 것 같다. 링거를 맞으면서 15킬로를 지고 5킬로를 손에 들었으니 무거웠을 것이다. 

 

매실을 하나하나 칫솔로 씻는다. 매실을 다 씻은 건 금요일 밤이다. 매실을 씻고 매실잼을 만들기 시작해서 요새 3일에 걸쳐 매일 밤 한 냄비씩 만들었다. 매실잼을 넣을 빈 병을 모으고 모았지만 워낙 매실이 많아서 병이 부족하다. 어제까지 만든 것은 어떻게 병에 넣었는데 오늘 만든 것은 넣을 병이 없어서 지퍼백에 넣고 냉동했다가 빨리 주변에 돌릴 생각이다. 지금 마지막 냄비를 베란다에 내놓고 잼을 식히고 있다. 

 

매실잼을 만들 때는 대충 눈대중으로 하기 때문에 냄비에 따라 맛이 다르게 나온다. 설탕을 아주 적게 넣는 편이라서 이번 매실잼은 전체적으로 설탕량이 10-15%로 달달한 잼이 아니라, 신 맛이 강한 잼이 되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설탕을 적게 넣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설탕 종류에 따라 잼 맛도 달라지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어제까지는 그라뉴당으로 만들어서 좋았는데 오늘은 백설탕에 파란 매실이라서 맛이 좀 다르다.  어제 설탕을 1킬로 사서 반 이상 남았으니 매실잼을 다시 한 냄비 만들 수가 있다. 매실밭에는 아직도 좋은 매실이 많다. 매실잼을 만드는 건 재미있지만 처분할 수가 없으니 더 이상 만들면 안 될 것 같다. 매실잼도 완전히 노란 매실은 색감이 노랗게 나오지만 파란 매실은 색감이 그렇게 예쁘게 나오지 않고 신맛이 더 강한 것 같다. 나는 노란색이 강한 매실잼이 더 좋다. 사진은 어제까지 만든 매실잼이다. 

 

 

지금 방에서는 치자꽃 향기가 나고 있다. 내 주변에서 치자꽃을 보면 같은 종류여도 장소에 따라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지금 방에 꽂은 것은 지금까지 잘 보지 않았던 종류로 일찍 폈다. 내가 항상 보고 있는 뒤쪽 공원과  단지 주위에 있는 치자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존을 위협하는 더위- 2일  (4) 2022.06.26
생존을 위협하는 더위- 1일  (4) 2022.06.25
친구와 외식을 했다  (2) 2022.06.13
덕분에, 잘 먹고 있어요 -2  (2) 2022.06.12
덕분에, 잘 먹고 있어요 -1  (4) 2022.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