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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받는 것이 많은 날

오늘 동경 최고기온 30도, 최저기온 23도로 선선한 날씨다. 오후 3시 이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5시가 지난 지금도 비가 오지는 않는다. 요새는 비가 온다고 해도 폭우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같은 행정구역에서도 넓어서 비가 많이 오는 곳은 폭우가 내리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비도 적게 온다. 비가 오는 걸 통제할 수는 없지만 비가 안 와도 걱정,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다. 친한 이웃이 요새 매일 같이 수해를 입은 현장을 TV에서 보니까, 괴롭다고 한다. 어쩌다가 우리는 그런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내지만 매일 어디선가 폭우가 내리는 날씨는 현지에 사는 입장이 아니라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난 목요일 병원에 가는 길에도 집에서 나갈 때는 비가 조금 오는 것 같아 접는 작은 우산을 들고 나섰다가 돌아와서 비닐우산을 들고나갔다. 도보로 20분 걸리는 곳인데 가는 도중에 비가 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돌아오기에는 너무 많이 갔고 집에 왔다가 다시 챙겨서 나가면 시간이 늦을 것 같다. 가는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다른 날보다 한참 늦어서 8시 10분경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내린 다음이라 대기 번호도 16번이었다. 혈액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청소하는 분에게 종이 타월을 달라고 했다. 혈액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을 때는 신발을 벗고 가야 해서 거기서 젖은 양말로 운동화, 발을 종이 타월로 닦아서 물기를 제거했다. 양말에 물기가 조금 남아도 이 정도면 나중에 마를 것 같다. 

 

혈액검사 결과 다행히도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항암제를 맞았다. 병원에 가면 왠지 잠을 쏟아진다. 목요일에도 정신없이 잠을 자는데 머리에서 땀을 많이 흘려서 베개가 다 젖을 정도였다. 점심으로 먹을 빵을 가져갔는데 먹을 틈도 없이 잤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이번에 맞는 항암제가 그런 작용이 있어서 그렇단다. 그렇구나, 요새 부쩍 머리에서 땀이 많이 나서 날씨 탓인가 했더니 항암제의 작용이었던 모양이다. 병원에서 나올 때는 항상 기분이 좋다. 오전에 비가 거의 폭우 수준으로 오더니만 오후에는 화창하게 맑아서 기온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오는 길이 마치 사우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요새 꽃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여기저기에 백합이 폈다. 나는 평소처럼 백합과 다른 꽃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거울처럼 전신이 보이는 곳이 있어서 외국 친구들이 내 근황이 궁금할 것 같아 페북에 올리려고 태어나 처음으로 셀카를 찍었다. 처음 찍는 것이라, 실패를 각오해서 많이 찍었다. 집에 와서도 전신을 볼 수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찍었다. 그런데, 셀카는 도대체가 찍히지 않았다. 겨우 1장만 지우지 않고 나머지는 다 지웠다. 백합이나 다른 꽃을 찍은 사진을 봐도 평소와 달리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항암제를 맞고 휴대용 링거를 맞고 있는 상태는 자신이 기분이 좋다고 느껴도 정상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어제는 날씨가 조금 선선해졌다고 휴대용 링거를 맞으면서 아침에 산책을 나섰다. 요즘 항상 쓰는 테이블에 수국이 시들고 나서 꽃이나 식물이 없어서 전에 봤던 민트가 대량으로 있는 곳에 가서 민트를 좀 베어 올 생각이었다. 친한 이웃과 가까운 곳이라서 전화했더니 민트가 있는 곳에 없으면 집으로 오라고 한다. 내가 100엔짜리 잔돈이 없어서 무인 판매하는 야채를 사기 힘들다고 했더니 우체국에 가서 잔돈을 바꿔 온다고 한다. 우체국에 갈 필요가 없다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했다. 민트가 대량으로 있는 곳에 가서 민트를 많이 솎아내는 식으로 베었다. 나는 뭔가 채집하면 그 장소를 관리도 한다. 민트 위에 덮인 것도 걷어내고 나머지 민트가 잘 있게 신경을 쓴다. 민트를 한참 베어도 친한 이웃이 오지 않아 집으로 갔다. 마당에 가서 전화했더니 우체국에 갔다고 한다. 나도 우체국으로 향해서 길 건너에서 친한 이웃 뒤통수가 보인다. 그냥 있다가는 다시 길이 엇갈릴 것 같아 전화해서 그냥 있으라고 했다. 

 

친한 이웃과 만나서 아직 날씨가 덥지 않으니까, 주변에 야채 무인판매라도 돌자고 했다. 내 500엔짜리 동전을 100엔짜리로 바꿔준다. 좀 먼 곳까지 갔더니 야채가 조금 있어서 샀다. 꽈리고추와 오쿠라를 샀다. 오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다음 야채 무인판매에 갔다. 거기에 오이가 있어서 한 봉지 사고 고링키라는 호박도 있어서 샀다. 친한 이웃은 항상 내가 먼저 사게 하고 다음에 자기가 고른다. 고링키 하나를 샀는데 500엔짜리 동전을 넣고 말았다. 내가 왜 500엔을 넣느냐고 했더니 100엔인 줄 알았나 보다. 가까이에 주인이 있어서 불러 돈을 꺼내 달라고 해서 100엔을 다시 넣었다. 그 집 마당을 거쳐서 다른 길을 걸었다. 농가 대문과 대문에서 본 정원이다. 이 근처는 몇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 

 

 

 

야채 무인 판매에 가기 전에 항상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안면이 넓은 아저씨가 하는 밭을 지나게 된다. 오랜만에 봐서 인사한다고 밭에 갔다. 항상 지나는 길이었지만 안에 들어가서 밭을 봤더니 아주 크다. 나에게 붉은 시소를 준다고 한다. 뭘 하면 좋으냐고 하니까, 시소 주스를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들고 다니면 무거울 테니까,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가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시소를 가져오려니까, 너무 무거워서 밭에서 굵은 줄기는 빼고 가는 줄기와 잎만 가져왔다. 그 밭에는 대추나무도 있는데 대추를 딸 때가 되면 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또 돌아오는 강가에서 부추를 좀 베었다. 여기가 공원보다 부추 베기에 더 좋은 것 같다.

 

친한 이웃과 헤어져서 올라오는 길에 백합이 예쁘게 핀 걸 봤다. 마침 그 집주인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꽃을 좋아하냐고 물어서 네, 좋아해요. 그러면 자기네 꽃을 좀 가져가라고 한다. 실은 그 집에 옛날 큰 집을 허물고 작게 새로 지었다. 뒤쪽 담에는 수국이 쭉 늘어서서 수국 철이 되면 예쁘다. 그런 인사를 했더니 아주 좋아라고 한다. 그래서 꽃을 한 다발받았다. 아침에 벤 민트는 벌써 축 늘어졌다. 집에 가서 빨리 물에 담거야지.

 

오전에 택배도 왔다. 국수와 소바를 빼면 다 한국에서 온 걸로 채워졌다. 요새는 일본에서도 한국 물건을 사기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지만 나처럼 동경 교외에 사는 사람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마트에도 이전보다 한국 물건들이 있지만 내가 사고 싶거나 필요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한국에 가는 것도 발이 묶인 상태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것은 아주 소중하다. 더군다나 내가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들이니 말이다. 어제는 받는 것이 아주 많은 특별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2시간 이상을 보냈다. 오전에 한 일로 몸은 벌써 피곤하다. 하지만, 붉은 시소도 주스를 만들어야지, 부추도 다듬어야지, 민트도 물을 올려서 생생하게 살려 내야지, 할 일이 많다. 어제 할 일을 다했다. 시소 주스도 처음 만들었다. 설탕이 너무 적어서 단맛도 부족하고 사과 식초를 넣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맛이 되었다. 그런데, 시소 주스 색감이 너무 예뻐서 다시 시소 주스를 만들고 싶을 정도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붉은 시소를 준 아저씨에게 답례로 매실잼을 가져가려고 했더니 시간이 늦어서 밭에 없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친한 이웃을 만나서 시소 주스와 주스에 띄울 민트, 아침에 만든 오이 미역 냉채를 나눴다. 빈 병이 없다고 했더니 그동안 나에게 받은 빈 병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피망도 5개 들어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지만 어제는 압도적으로 내가 받은 게 많은 날이었다. 

 

 

사진 설명을 하면 맨 위 사진은 두 번째 사진에 찍힌 중화 만두, 찐빵을 만들었다고 라인을 보낸 이웃에게 가져간 김치 샐러드와 매실잼이다. 중화 만두에 들어가는 속을 내가 냉동해서 준 것이 이렇게 새끼를 더 많이 쳐서 돌아왔다. 세 번째 사진은 그 이웃 마당에 열린 걸 따서 줬다. 다음 사진은 어제 무인야채에서 산 것과 풋대추다. 어제 강가에서 벤 부추와 받은 붉은 시소다. 시소가 아주 많다. 민트와 꽃도 사진보다 훨씬 많아서 부엌이 가득 차고 말았다. 다음은 한국에서 왔다는 쥐포와 미역, 율무, 검은 쌀, 검은콩 등이다. 어제 만든 시소 주스 원액으로 4리터를 만들었다. 병에서 좀 던 것은 친한 이웃에게 주는 병에 담겼다. 친한 이웃에게 나눈 시소 주스 원액과 오이 미역 냉채에 민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