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맑지만 기온이 낮고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어제 외출했다가 밤늦게 돌아와 오늘도 피곤해서 청소를 쉴까 싶었다. 그래도 주말에 청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베란다와 집안 청소를 했다. 아침에는 빨래를 두 번이나 해서 널었다. 평소 주말에 하는 일을 한 것이다. 오늘 특별히 정말로 오랜만에 밥을 해서 먹었다. 미얀마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밥을 했으니까, 한 달 반 만에 밥을 한 셈이다. 그동안 밥을 먹지 않아서 씹을 것이 적어서 심심했다. 오늘 밥은 현미를 불리고 찰보리와 콩을 두 종류 넣어서 했더니 아주 맛있었다. 밥을 푸고 나서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도 만들어 먹었다. 나물과 생선 등 반찬도 만들어서 먹었다. 아무래도 밥을 먹으면 든든한 느낌이 든다. 밥을 먹는 것이 특별한 일이다. 앞으로는 밥을 자주 해서 먹을 생각이다.
어제는 4.3 항쟁 71주년 기념행사가 있어서 닛포리에 다녀왔다. 며칠 전에 접수를 같이 하는 왕언니께서 전화가 왔다. 올해도 접수를 항상 하는 넷이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마다 접수를 하는 사람 넷 중에 제주도 사람은 나 한 명이고 나머지는 일본분들이다. 동경에서 4.3 항쟁 기념행사를 돕는 사람들 중에는 해마다 한 번 동창회라도 하는 듯 보는 사람도 있다. 어제도 집합시간 2시가 좀 지난 시간에 도착해서 서로 안부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면서 준비를 했다. 접수는 당일권을 팔거나, 예매표를 확인하는 등이 주된 일이다. 입구에 있어서 각종 일을 다 접수하는 곳이기도 하다.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를 받으면서 그동안 쓰는 사람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해마다 기념행사에 오는 사람들 분위기를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표를 파는 일은 짧은 시간 사람들이 몰릴 때 좀 바쁠 뿐으로 입장이 끝나면 돈을 계산하면 된다. 어제는 행사를 끝내고 뒤풀이에도 잠깐 들렀다가 왔다. 나는 집이 멀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 뒤풀이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어제는 왕언니와 다른 기회에 만날 일도 없어 행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섭섭해서 좀 남았던 것이다. 밤늦은 시간이라, 뒤풀이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뒤풀이는 술을 마시는 사람 위주로 음식이 나오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채 김치와 창난젓을 물을 마시며 많이 먹었다. 평소에 먹을 기회가 없는 음식이다.
어제는 밖은 비가 약간 오며 기온이 낮은 추운 날이었다. 행사장에 갔더니 실내는 더웠다. 행사시간에는 냉방이 들어와 기온 조절이 되었지만, 안과 밖 기온차가 있는 날이었다. 기념행사는 주로 일부에 4.3 항쟁에 관한 강연이나, 토론을 하고 2부는 콘서트로 구성된다. 어제는 처음에 판소리가 있었다는데, 전혀 듣지 못하고 1부 강연도 전혀 못 들었다. 어제는 처음부터 2부 콘서트를 들을 수 있게 일을 진행해서 1부를 하는 사이에 접수하는 일을 마감하고 2부 콘서트는 들었다.
어제 온 사람들은 예년과 좀 다른 분위기였다. 2부 콘서트가 아라이 에이치라는 재일동포 가수여서 팬들이 아닌가 싶었다. 여성들이 많았고 젊은 사람도 섞여 있었다. 4.3항쟁 기념행사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제 내가 접수한 사람 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기념행사에 오는 재일동포나 일본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어제는 한눈에 봐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준 것 같았지만, 지팡이를 짚고 있거나, 걷고 있지만 불안해 보이는 분도 있었다. 의수를 한 분도 있었고 방명록을 쓸 때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알 수 있는 분도 있었다. 재일동포를 보면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 만은 아닐 것이다.
어제는 입장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이든 분이 헐레벌떡 왔다. 제주도에서 기념행사에 온 손님 중에 한림에서 온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협재 사람인데 일본에 와서 60년 살았단다. 한림중학교 몇 회, 한림공고 몇 회 졸업생이라고 하면서 한림에서 온 사람이 있으면 밥이라도 사려고 왔다고 한다. 나는 지금 행사가 진행 중이라, 사람이 많아서 들어가기가 힘드니까, 쉬는 시간에 가서 물어본다고 들어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기념행사가 끝나면 뒤풀이를 가니까, 그때 같이 가서 식사를 해도 된다고 알렸다. 그런데, 쉬는 시간이 되어 제주도에서 온 손님에게 물었더니 한림에서 온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와서 인사라도 해달라고, 로비로 나와서 찾았더니 그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고향사람을 만나고 싶었으면 그렇게 찾아왔을까 싶었다. 참, 고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이 든 할아버지도 헐떡거리며 찾아오게 만든다.
2부 콘서트는 아라이 에이치라는 재일동포 가수였다. 재일동포라는 걸 모르고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너무나 '한국의 토속적인 목소리'여서, 그야말로 '조선인의 목소리'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재일동포라고 해서 민족적인 목소리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다른 곡도 조금 불렀지만, '청하로 가는 길 48번'을 완창 했다. 완창을 하는데 50분이 걸린다고 했다. 노래 한 곡이 50분이 걸리다니, 대단한 노래다. 처음에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걱정했다고 한다. 열기를 띈 회장 분위기에 힘입어서 그런지 아주 좋았던 것 같다. 나도 라이브로 '청하로 가는 길'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래전에 들었던 것보다 목소리도 나이를 먹고 관록과 맛이 더해져서, 더욱더 시골 할아버지 목소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하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노래라고 했다. 노래는 아버지 고향 '청하'를 찾아갔다가 오늘 것과 자신이 살아온 것이 가사 내용이다. 아주 전형적인 재일동포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제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왜 재일동포들은 '고물상'을 해야 했으며 가난하게 살며 핍박을 당하고 이지메를 당했고 병들어 치료도 못하고 죽어야 했나. 어머니는 장물을 샀다고 형무소에 들어갔다. 이런 내용은 '아라이 에이치'만이 아니라,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지금 일본의 현실이 재일동포가 힘들었던 이야기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슬프다. 재일동포 1세는 한국에서 왔지만, 2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한국은 부모의 고향이고 2세의 고향은 일본이다. 그런데, 재일동포를 일본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신의 고향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참 괴로운 일이다. 지금도 재일동포를 비롯한 외국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가 들끓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행사가 끝나고 회장을 정리할 때, 어제 있었던 DMZ 평화 인간띠를 한다고 20여명이 손을 잡았다. 기념행사를 할 때 했더라면, 거진 600명 정도가 손을 잡았을 텐데 하고 아쉬웠지만 참가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기념행사를 마치고 뒷풀이에도 들렀다가 집에 왔더니 밤 12시가 넘었다. 밤이 늦었지만, 남북 정상회담 1주년 기념행사 뉴스 등을 확인하고 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4.3 항쟁도 있었지만,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평화로 나가는 길은 끈질기게 추구해서 이루어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이 다 평화로 향한 것이며,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사진은 기념행사 안내, 행사장 준비에 아라이 에이치 씨가 찍혔다. 강요배 화가의 그림, 마지막 두 장은 인쇄한 것으로 나도 두 장 얻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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