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3 살인적인 폭염 2
오늘도 동경은 무섭게 더웠다. 어젯밤 얼음베개를 썼는데도 잠을 설쳤다. 모기향을 붙인 줄 알았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모기에 물려서 잠이 깨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늦잠을 잤다. 아침에 깼더니 10시 30분이 넘었다. 맙소사, 집안 창문을 환기시키느라고 다 열었다가 아침에 닫는데 바깥이 벌써 뜨겁다. 얼른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렸다. 햇살이 무서울 정도로 내리 쪼인다. 오늘 햇살이 강도가 유난히 독한 것 같았지만, 기분탓이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기분탓이 아니라, 최고기온이 39도를 찍었다는 걸 저녁에 알았다, 최저기온은 27도라고 한다. 어젯밤 그렇게 덥더니 최고기온이 39도를 찍으려고 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은 최고기온이 36도라니까, 기분상 널널하다. 동경에서 내가 경험하기로 39도는 최고기온인 것 같다. 39도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와중이라, 더 덥다.
뉴스에 의하면 오우메에서 41도를 찍어서 기록적인 더위였다는데, 오우메는 동경 서쪽의 끝자락이다. 나도 서쪽 내륙에 살지만, 가을에 산에 가는 옥타마를 가기 전에 경유하는 곳이다. 동경에서 가장 내륙에 속한다. 오우메는 자연이 풍부하고 공기가 깨끗해서 생각보다 쾌적할 것이다.
월요일은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가야 점심을 건너고 저녁에 집에 올 때까지 버틴다. 머핀을 굽고 어묵도 구웠다. 토마토를 얹어서 샌드위치처럼 만들어서 먹고 아이스커피를 타서 마셨다. 천천히 준비하다 보니 금방 11시가 넘는다. 컴퓨터를 켜고 뉴스를 봤더니 노회찬 의원이 자살했다는 속보가 떴다.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정치가들이 많은 가운데 믿음이 가고 호감이 가는 분이었다. 많은 걸 잃은 느낌이다. 요새 흐름을 보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폭염이지만, 정신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갈 길을 걸어야겠지.
아침에 베란다에 물을 끼얹었더니 순식간에 물이 증발한다. 다시 물을 끼얹어도 흐르기 전에 증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분이 증발하는 스피드가 무섭다. 밖에 나가면 내 몸의 수분도 저렇게 증발할까? 그래도 먹을 것은 챙겨 먹고 가장 뜨거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옷이 문제다. 원피스를 입고 다니다가 오늘은 최고기온이 높다고 해서 짧은 반바지에 넉넉한 셔츠를 입고 팔에도 토시를 했다. 양산을 쓰고 나갔다. 나가서 금방 후회했다. 짧은 바지를 입는 것이 아니다. 다리가 익을 것 같이 햇볕이 따갑다. 양산을 쓰면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11시 반이 넘어서 나갔는데 집안보다 바깥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늘진 곳을 따라 걸어서 도서관에 갔다.
지금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 학생들이 많다. 거기에 도서관 투어를 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붐비고 있었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농가 마당을 봤지만 별다른 야채가 없었다. 다른 집 야채가 있었지만, 잔돈이 없어서 사질 못하고 그냥 갔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잔돈을 거슬러 달라고 집주인을 부르기가 귀찮은 것이다. 양산을 쓰고 도서관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에 다른 양산을 꺼내서 봤다. 옛날 것으로 아주 튼튼하고 좋은 것이다. 단단하고 좋아서 그만큼 무겁다. 요즘 것으로 좀 비싼 것이 있는데 옷차림과 너무 동떨어져서 중간 것으로 했다. 이 것도 싼 것은 아닌데, 꼭지가 없어서 좀 처량해 보인다. 그래도 양산을 안 쓰는 것은 살인적인 햇살 아래 맨 몸을 내놓는 것은 너무 무섭다. 아침에 나갈 때는 습도가 낮아서 더워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도착했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갔는데, 땀이 줄줄 내려서 분명히 수건이 젖을 텐데 수건이 마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상상도 못 하는 사건이 조용히 일어난다. 목에 수건을 두른 것은 잘한 일이다.
도서관에 가는 도중에 500ml 물을 다 마셨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얼굴과 팔 등을 씻었다. 팔에도 토시를 하길 잘했다. 몸에 직접 햇살을 받지 않아서 훨씬 편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연신 물을 마셨다. 도서관에 있으면서 물을 1L 이상 마셨다. 내 생애에 이렇게 연신 물을 계속 마시는 일도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계속 물을 마시고 있었다. 원래는 도서관에서 뭘 마시거나, 먹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비상시에는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도서관에 늦게 6시까지 있다가 나왔다. 밖에 나와서 느낀 것은 따뜻하다는 것이다. 냉방 속에서 몇 시간이나 몸을 식혀서 나왔는데도 바깥이 따뜻했다. 돌아오는 길에 야채 무인판매에 들렀지만, 야채가 별로 없었다. 오늘 너무 더워서 밭에 나가질 않은 모양이다. 헌책방에 놓인 야채도 보러 갔지만, 냉장고에 있는 토마토와 다른 게 조금 있을 뿐이라, 사지 않고 그냥 왔다. 집에 와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베란다에 물을 끼얹는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을 빨아서 널었다. 냉장고에 있던 닭고기를 프라이팬에 바짝 구워서 토마토와 오이를 곁들여서 먹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도 제 때에 먹지 않으면 상한다. 빨래를 넌 것이 저녁 7시 넘어서다. 조금 있으니 빨래가 말랐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인 것이다.
저녁에는 바람이 불어서 선선했는데 밤이 되면서 바람이 멎었다. 푹푹 찌면서 매미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아침에는 이렇게 시끄럽지 않더니 밤이 되니까, 매미가 세상을 다 점령한 것 같다. 매미도 너무 더울 때는 울지 않더라.
너무 더워서 오늘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도 읽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뭘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다. 이번 주가 종강이다. 학생들 리포트도 받고 평가도 하고 긴장하는 주다. 아무리 폭염이라도 학기말은 학기말답게 맞아야 한다. 너무 더워서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