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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유혹

2013/12/12 유혹

 

오늘도 동경은 아주 맑고 건조한 날씨였다. 저녁이 되니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서 추워온다. 옷을 얇게 입고 나가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추워서 기온 변화에 머리가 아팠다

어제는 연내에 끝난 강의가 있어서 쉬는 날이었다. 그러나 무인판매에 야채가 나오는 날이라, 신선한 야채를 사러 가고 싶었다. 요즘 당근이 나오는 철이다. 그리고 근처 농가에 무우가 나오는 데,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게 있을지 아주 궁금하다. 그런데 사실은 목요일 수업준비를 못해서 시간이 별로 없다. 오후에는 외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무인판매 야채를 사러 간다면 도서관에도 살짝 들리고 싶다. , 어떡하지, 갈등한다. 야채는 꼭 오늘 사지 않아도 되고, 도서관에도 안가도 된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일을 하려고 했다. 마음 편하게 수업준비를 해놓고 외출을 하자.

그런데, 싱싱한 당근이 눈 앞에 아롱거린다. 싱싱한 당근은 아주 달고 부드럽다. 웬만한 사과보다 훨씬 맛있다. 당근이 아롱거리면서 나를 유혹한다. 거기에다, 도서관 새로 온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책들이 춤을 춘다. 책들이 춤 만 추는 게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풍악이 울리고 완전 쇼무대가 펼쳐진다. 세상에, 도서관 금단증상인지, 헛것이 보이는 건지, 아니면 ‘노망’이 들었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어떤 책이 들어왔길래, 책들이 춤까지 추면서 나를 유혹하느냐고… 미쳤다.. 어느새 나는 책과도 교신을 하는 사이가 된 건지… 황당하다

, 안되겠다. 사실을 확인하러 가야지.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도서관을 향해서 나갔다. 그리고 정말로 궁금하다. 싱싱한 당근이 나왔는지, 농가의 무는 어떤 게 나왔는지, 도서관은 정말로 책들이 춤추는지… 나는 어느새 거의 반쯤 달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렇게 바삐 간 적이 있었냐고, 없었다. 그런데, 당근과 무우와 책의 유혹에 빠져서 이렇게 정신없이 달리는 아줌마가 되었다

우선, 가까운 농가 마당에서 파는 무, 보라색 무가 하나 있었다. 사서 안보이는 쪽에 감춰뒀다. 집에 올 때 가져오려고… 그리고 두 번째, 싱싱한 당근 두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고 도서관에 갔다. 내가 본 것이 뭔지, 정체를 밝혀야지… 그런데, 정말로 새로 온 책들이 쇼 비즈니스, 대중음악 등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내가 완전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이럴 수가 내가 어쩌다가 인간도 아니고 책들과 교신을 하게 되었는지… 이러다가 돗자리를 깔아야 하는 건가? 인생은 정말로 웃기는 전개가 있는 거구나. 서둘러 책을 빌려서 집에 돌아왔다

수업준비를 열심히 해서 마치고 외출 준비를 한다. 외출하기 전에 무우와 당근을 잘라서 소금에 절였다. 역시 무우가 너무 예쁘다. 당근도 부드럽다. 색감이 예쁜 피클이 되겠다. 색감이 예뻐서 피클을 만들고, 익고 먹는 동안 행복하겠다. 내가 홀려서 미친 듯이 달려 나간 보람이 있었다

발견이 있었다. 내가 중독이 된 게 싱싱한 당근이나, 예쁜 무, 책이라서 다행이다. 도박이나, 술이나 다른 거라면 몸도 돈도 더 힘들 텐데…

색감이 비슷한 걸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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