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6 허깨비를 보다
오늘 동경은 맑게 개인 좀 더운 날씨다. 아직 장마철이 끝나지 않았을 텐데, 요 며칠은 비가 안 와서 날씨가 쾌적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방에서 나올 때, 미닫이 문소리가 들렸는지 위층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윗층에서 미닫이 문을 계속 열고 닫으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일어나자 마자 비몽사몽간에 머리 위에서 난리 치는 걸 들으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폭력이다. 오늘은 지난 월요일에 친구와 같이 갔던 UR 사무실에 가서 담당자를 만나 결판을 지으러 갈 예정이었다. 친구에게도 미안해서 같이 가 달라는 말을 못 하겠다. 아침을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어차피 가려고 했던 거지만, 아침부터 한바탕 공격을 받고 나가려니, 나도 후들거린다. 길을 나서니 집은 서늘한 데, 햇볓이 따갑다.
어제도 집에 있기가 힘들어서 학교에 가서 후배를 만나 4시간 동안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후배가 말하길, 선배 술 마시러 다니는 게 어떠냐고… 내가 술 마시러 갔다가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주위 아저씨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올 것 같다. 그건 안된다. 어제 수다를 떨어서 기운을 회복했더니, 한순간에 무너진다.
일을 보러 간 곳은 사무실이 아직 안열렸다. 아래서 기다리면서 기모노천을 샀다. 스카프로 쓸 수 있는 무늬였다. 가게 사람과 말을 하는 데, 내가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후덜덜 떨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하는 것도 정말 이상하다.
사무소에 가서 지난주에 만났던 담당자에게 옆집으로 이사하고 싶으니까, 이사를 할 수 있게 조치를 해달라고 했다. 내가 이사하고 싶은 날도 전했다. 이사를 도와 줄 후배가 쉬는 날로 이삿날을 정했다. 그러나, 옆집을 계약해서 이사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다. 요새 동경에서는 일이 이렇게 꼬이는 게 보통이다. 그런 걸 이해하려고 했다가는 머리가 돈다.
지난주에 아래층에서 소음으로 괴로워한다는 사항을 전한 이후 위층의 이지메가 점점 에스컬레이트한다. 나는 달력에 그날 그날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못견딜것 같아서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에게 어쩌면 내가 자러 갈지도 모른다고 부탁해놨다. 집에 있는 게 괴로워서 밖에서 지내고 있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다. 내가 왜 정상적인 집세를 내고 살면서 이래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래도 그사람들을 상대로 싸우고 싶지 않다. 내 시간이 중요하기에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시간이 아깝다. 요새 작품도 못하고 자기 집에서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피해가 막심하다.
사무소에서 용건은 금방 끝났다. 옆집으로 계약해서 이사할 수 있도록 조치를 부탁하고 나왔다. 같은 건물 3층에는 도서관과 지역에서 생산하는 야채를 파는 곳, 리사이클숍이 있다. 지난주에 리사이클숍을 보고 싶었지만,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시내에 가는 바람에 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기분전환이 필요하기에 리사이클숍이라도 뒤져야 한다. 리사이클숍에서 뒤진 보람이 있어서 원피스를 두 장, 터키블루의 면 저지셔츠를 샀다. 몰입해서 리사이클숍을 뒤지는 사이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전철을 타고 한정거장, 역에 내려서 마트에 들러 과자와 두부, 토마토와 오이, 양배추 등을 샀다. 옷에다 야채들이라, 짐이 무겁다. 양산을 가지고 있어도 양산을 쓸 손이 없다.
언덕을 올라오는 길에 위층 남자를 봤다. 나는 길을 걸을 때 남자얼굴을 잘 보지 않는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쳐서 황당하게 오해한 사람 때문에 봉변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에 남자 얼굴을 보는 것이 무섭다. 내가 사는 주위에서는 일체 남자얼굴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위층남자의 얼굴을 봤다. 위층남자라고 확신한 것은 뒤에 맨 배낭으로 알았다. 위층남자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은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얼굴이 전혀 햇빛을 안 본 사람처럼 희멀겄다. 표정도 무표정에, 눈이 안보인다. 눈에 초점이 없어서 눈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눈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이 틀림없다.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였다. 나는 그걸 보고서도 그가 이지메 공격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연결이 안 된다. 내가 무섭고 두려워했던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는 피해망상이라고, 내가 그의 표적이 되어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체는 상상이 안 갔다. 그는 재작년에 관리사무소에 뛰어들어서 옆집에서 감금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던 사람과 흡사했다. 나는 그자리에서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사는 단지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면서도 뭔가가 이상했다. 그사람도 몇 년이나, 햇빛을 쪼이지 않은 것 같은 희멀건 얼굴에 푸석푸석한 피부, 소설같은 내용의 말이었다. 그 사람이 돌아간 후에 관리 주임이 말하기를 저 사람도 피해망상이라고 했다. 그래도 위층남자가 비슷한 용모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비슷했다. 그냥 몸뚱어리는 있는 데, 영혼이 없는 허깨비가 걸어가고 있었다. 거리에서 유령처럼 걷는 사람들과는 다른 유형이었다. 대낮에 살아있는 허깨비를 봤다. 공포스러운 현실이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산 것들을 손빨래해서 널고 점심으로 양배추를 데쳐서 먹으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저 정도라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 치료는 받고 있는지, 마누라는 알고 있겠지, 자기 남편이 심각히 병적이라는 것을… 거의 집 가까이에 왔을 때 위층 여자가 나가는 걸 봤다. 오늘도 여배우처럼 색이 짙은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화려하게 외출한다. 서로 인사를 했다. 날씨가 더워졌네요.
결국, 나는 허깨비에 떨고 있는 것이다. 환자가 병원이 아니라, 내 주변에 살고 있다. 나는 그 환자의 표적이 되어있다는…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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