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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파친코'와 재일 제주도 사람들

'파친코' 돌풍을 보면서

오늘도 동경은 비가 오면서 기온이 낮은 매우 추운 날씨다. 최고기온이 어제와 같은 9도로 비가 계속 오고 있다. 어제는 너무 추워서 밤에 일찍 잤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12시간 정도 잤다. 도중에 화장실에 몇 번 갔지만 12시간이나 자다니 나도 모르게 어딘가 피곤했는지 추운 날씨 탓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추워서 견디기 힘들어서 난방을 가져다 켰다. 4월에 난방을 켜다니 믿기지 않지만 현실은 종종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애플 TV에서 지난 3월 25일 3화까지 무료 공개한 화제작 '파친코'가 돌풍을 일으키는 것 같다. 애플 TV는 넷플릭스와 한국 시청자, 시장을 의식한 전략일 것이다. 처음에는 넷플릭스처럼 한꺼번에 공개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편 공개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현재 4화까지 방영된 걸 본 사람들 평에 의하면 적어도 한국 시청자에게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나는 애플 TV로 무료 공개한 걸 보지 못했다. 원작도 읽을 기회가 없어서 읽지 못했다. 공개한 드라마 요약이나 평을 유튜브를 통해서 봤다. 나에게 '파친코'가 너무 특별해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런 걸 봤다. 사실, 나는 '파친코' 같은 재일동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애플 TV에서 세계시장을 겨냥해 제작한 대작 드라마로 세계적으로 프로모션을 하는 현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드디어, 이런 시대가 왔구나!

 

우선, 제목이 영어로 'PACHINKO'여서 그런지 한국어로도 '파친코'라고 하지만, 아마, 일본어 'パチンコ’를 로마자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어 'ン’의 발음은 일반적으로 'n'이라고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발음의 영향을 받아 'n'이나 'ng', 'm'으로 발음이 된다. 한국어 발음으로는 'n'이 아니라 'ng'로 '파칭코'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파친코'를 쓰기로 한다.

 

 

'파친코'가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은 내가 재일동포의 역사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재일 제주도 사람들'에 관한 연구만 했다. 그중에서도 '재일 제주도 1세의 생활사'가 중심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재일동포의 역사를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역사의 무대에 오르는 건 남성이다. 재일동포의 역사에서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여성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배제되어 왔다. 남성 중심의 역사관으로 강조된 '저항의 역사'라고 할까, 그렇다. 하지만, '생활사'를 기록하게 되면 거기는 여성 중심의 세계가 펼쳐진다. '생활사'의 연구에서는 개인의 역사를 통해 전체적인 역사를 다시 쓰는 부분이 있다. 남성들은 교육을 받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그들의 역사인식도 '기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글을 배우지 못했던 1세 여성들은 자신들의 '기억'에 의존한 역사를 '생활사'로 풀어낸다. 그렇기에 같은 시대를 살아도 예를 들어 부부가 같은 시대와 같은 일을 경험해도 '생활사'를 보면 인식의 차이가 있다. 역사의 무대에 오르는 남성을 위해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희생과 뒷받침이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단지,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기록한 '재일 제주도 사람 1세' 남성과 여성의 '생활사'를 보면 남성들은 사회적인 사건이나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만 여성들은 가족이 중심이 된다. 여성들의 '기억'은 남성들의 '기록'에 실리지 않는 개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사건을 세밀한 묘사와 당시 감정도 동반된 이야기가 된다. 남성들이 전하는 역사와 여성들이 전하는 역사는 서로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성의 시점을 통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파친코'에서 '선자'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까,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에 기록한 '생활사' 자료를 오랜만에 잠깐 봤다. 내가 기록한 '생활사'에 실린 1세가 언제 일본에 왔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오사카에서 기록한 1세 여성으로 1904년생, 1924년에 오사카로 왔다고 한다. 석사논문 자료를 보면 다음이 1925년에 동경으로 온 남성이 있었다. 이들은 재일 제주도 사람 1세로서는 이른 시기에 일본에 온 세대이지만, 그 이전에 주위에서 보면 동네 어른이나 집안 가족이 벌써 일본에 온 적이 있거나 일본에 있었다. 내가 기록한 '재일 제주도 사람 1세'만 봐도 일본에 온 것이 거진 100년이 된다. 제주도 사람들은 일본으로 이동할 때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바로 배를 타고 왔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마을 별로 공동체를 형성해서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일본에서 생활을 개척해왔다. 그런 마을 친목회는 남북한 대립이라는 재일동포를 둘러싼 정세에 휘둘리면서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거기에는 같은 마을이라는 제주도에서 보면 거의 친척과 같은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은 제주도와 일본을 연결하고 제주도 마을 발전을 지원했다.

 

 

'파친코'를 보면서 주인공 선자가 어린 시절 물질을 하는 것 같은 장면에서 나는 저게 어느 지역일까? 궁금했다. 경상도 사투리로 나오지만 여자아이가 어릴 때부터 물질하는 문화가 제주도 이외에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해녀'는 제주도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해녀'의 기원을 제주도에서 빌려올 정도다. 부산 영도는 제주도 사람들, '해녀'가 먼저 이주한 곳이기도 해서 궁금했다. '파친코'를 보면 '재일 제주도 사람'들이 존재할 텐데 드라마에서는 감춰진 걸로 보인다.

 

한편, 일본에서는 '파친코'에 관해서 조용하다. 그것도 너무 조용할 정도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다. 애플 TV에서 나온 일본 평론가 평론도 봤지만, '파친코'를 전혀 서술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일본에서 반발이 두려워서 평론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화제가 되는 걸 애써 피하는 상황이 보인다. 

 

지난주 내 연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친구를 만났을 때 '파친코'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다. 재일동포의 아름답고 슬픈 역사가 애플 TV에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프로모션 하는 세상이 올 줄 몰랐다고 말이다. 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세계의 움직임, 세상의 동향에 대해 민감한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 교수인 친구조차 애플 TV나 '파친코'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걸 알았다. 사실, 일본 넷플렉스에서 순위에 한국 드라마가 주로 올라와도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온도 차이가 상당하다. 일본에서 애플에 대한 호감도와 충성도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미국 애플 TV에서 제작한 '파친코'에 대해서 그저 '반일'이라고 치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일본에서는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해서 미화하고 싶으니까.

 

'파친코'를 요약한 걸 보면서 다행으로 여긴 건 일본인의 만행을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자극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고 인상이 너무 강하면 다른 중요한 요소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매우 지적으로 영리하고 아름답게 풀어나가는 걸 볼 수가 있었다. '파친코'는 재일동포 여성을 주인공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결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만 있을 수 있는 '특수한'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했던 나라나 침략과 지배를 당했던 나라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파친코'가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킬 것 같다. 재일동포의 슬프고 아름다운 역사가 부디 좋은 드라마를 통해서 널리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일본에서는 없는 일처럼 무시해도 상관이 없다. 일본 사회가 재일동포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런 역사가 지금도 '혐한'이 계속되는 현실을 일본만 모르고 세계가 아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현실이 상상력을 뛰어넘을 때가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친일'이라고 할까, 마치 일본을 위한 충성이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보이는 정권이 탄생한 것 같다. 그런 적절한 시기에 맞춘 듯이 '파친코'가 발표되어 한국과 일본의 역사, 역사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힘들다. '파친코'가 세계적으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보다 현재 한국의 처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매우 큰 '운명적인 만남' 같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걸 기대한다. 

 

사진은 작년에 찍은 벚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