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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아베정권

극적으로 사망한 아베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31도였지만 날씨가 맑아서 햇볕이 따가웠다. 나는 전날 밤늦게까지 집중해서 일을 했다고 어제까지 피곤해서 일을 못할 것 같아 어제는 일찍 자기로 했다. 어제 좋은 소식은 영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던 존슨 총리의 사임 소식이다. 처음부터 도저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던 인물이었는데 그래도 오래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런 인물이 중요한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사태를 더 나쁘게 하는 것이기에 결코, 조금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각료가 사임을 하고 들이받아서 자신이 사퇴한다고 나온 건만으로도 다행이다. 적어도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오전에 언덕 위에 야채가게에 야채를 사러 나갔다. 오늘 사지 않으면 주말에 쉴 것이고 월요일에는 야채도 별로 없어서 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야채가 별로 없어서 당근만 샀다. 건너편 길에 복숭아가 익어서 먹을 수 있는 건지 떨어진 복숭아를 몇 개 주었다. 집에 와서 휴대폰을 봤더니 아베 전 총리가 총격을 맞았다는 속보가 떴다. 나는 처음에 모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쇼인가? 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민당이 이길 것은 뻔하고 이번에는 선거도 하기 전에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해서 개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런 전망을 선거도 하기 전에 내는 것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요새 선거운동이 하도 조용해서 나는 선거가 끝난 줄 알았다. 선거가 끝났으면 결과를 보도해서 그래도 한동안 시끌벅적할 텐데 이상하다 할 정도였다. 선거는 이번 일요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베가 총격을 맞았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이런 쇼를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다. 

 

복숭아는 작지만 먹을 만했다. 서둘러 컴퓨터를 켜서 야후 재팬 뉴스를 봤더니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내가 처음 본 뉴스가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심폐 정지했다는 거다(https://news.yahoo.co.jp/articles/8478f07039f207068c8a73c510cbe7b44fecf74f). 현장에서 심폐정지라면 거의 즉사가 아닌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범인은 살인미수 혐의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857f8d20beadfd8f9c3a246615c96ee777d10b6b). 범인은 41세 해상자위대 출신이라고 한다. 개조한 총으로 2발을 쏘고 나서 무기를 바로 놨다고, 현장에 있던 사람이 목격한 바로는 총격을 하고 나서도 냉정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총격을 하고 나서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닌 확신범으로 계획적인 걸로 보인다. 아베는 모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원하느라고 나라시 긴테츠 야마토 사이다이지 역 앞 로터리에서 가두연설을 막 시작했을 때 총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반쯤 멍하니 뉴스를 스크랩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걸로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에 동정표가 모여서 압승하겠구나. 아베가 그렇게 원하던 개헌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개헌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 일본에 좋은 일이 될 걸로 보이지 않지만 자민당에서는 그걸 밀고 왔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일본에서도 코로나가 다시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vIHOQAjyx6A). 동경을 보면 지난주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일본은 코로나가 수습된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코로나 이후 경제 활성화와도 거리가 멀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엔저에 물가와 공공요금만 엄청나게 상승해서 생활이 더 힘들어진 것뿐이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일본 정부는 군사비를 2배나 올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든 현실보다 그들에게는 군사비 2배로 올려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런 결정을 보고 드디어 완전히 미쳤구나 했다. 일본은 막가파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쟁에 올인할 수 있다. 

 

일본은 투표율이 낮은 편이다. 낮은 투표율에 관한 기사에서 오키나와현을 예로 들었다. 지난 2019년 투표율이 49%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20대는 투표율이 33%로 3명 중 1명만 투표를 한 셈이라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5bab7ae7590b5b33ed90d06bc5c4b6748bc360cf). 투표하지 않는 이유가 '정치 효능감'을 맛볼 수 없어서 인 모양이다. 생활이 힘들어서, 생활에 쫓기다 보니 투표를 하러 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를 생각할 정도의 소득과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이건 일본 대학에서 학생들을 봐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투표를 한다고 뭔가 바뀌겠냐고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다. 무력감으로 자신들이 가진 표로 정치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실감하기 어렵다.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지만 정작 투표하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 혐오감이 강하다. 

 

아베가 현장에서 심폐정지라면 거의 즉사인데 나중에 뉴스에는 집중치료실에서 구명 치료를 하고 있다고 나왔다. 자민당에서 선거를 위해 아베의 사망을 활용할 것이라서 어떻게 될까? 했다. 친한 이웃과 산책을 하고 복숭아를 땄다. 둘이 아베 총격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친한 이웃은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 모른다. 나도 중도적인 발언을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정치가를 싫어할 수는 있어도 총격을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주 충격적인 일이다. 이전이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본 사회를 조금 알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일이 태평양 전쟁 이전에는 몇 번이나 있었다. 전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857f8d20beadfd8f9c3a246615c96ee777d10b6b). 기사를 링크한 아사히신문을 보면 정치가들이 습격을 당하는 건 주로 우익에 의해서다. 이전에 보면 폭력단이 정치가의 뒤처리를 하는 식으로 분업하기도 했다. 습격하는 방식으로는 총으로 저격하는 것보다 칼을 쓰는 편이 많은 인상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치안이 잘되어 있어 안전하다고 선전하지만 매우 과격한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조용히 무섭다. 뒤통수를 치기에 언제 어떤 식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다. 

 

예상과는 달리 오후 5시 넘어서 아베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68dfd7e75756911e93c6137481d3d946f9d34fa2). 자민당에서 선거전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고도 한다. 기시다 정권에 의해 아베의 사망은 어떻게 처리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베를 신격화할 것 같아서 두려웠는데 아베 친구에서 적이 된 기시다 정권에서 어떨지 모르겠다. 아베는 일본에서 최장기 집권 총리였지만 여러모로 최악의 정치가이기도 했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이전 아베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 '사요나라, 아베 총리!'라는 글을 올렸다(https://huiya-kohui.tistory.com/2411). 아베 정권에 대해 글을 126편이나 쓴 걸로 나온다. 이전 글을 곁들여서 읽으시길 바란다. 

 

아베가 세계적인 이목의 집중을 받으면서 극적인 사망을 한 것이 어쩌면 그의 정치인생에 걸맞은 게 아닐까? 그는 매스컴을 장악하고 혐오 선동에 매우 능한 정치가였다. 누구보다 주목받기를 원하는 정치가였다. 그가 장기 집권한 시대에 성장한 학생들을 보면 그가 지향했던 가치를 확실히 심어줬기에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일본 정치는 그 이후에도 같은 경향을 지속하고 있다. 아베가 사망해도 그가 장기에 걸쳐 구석구석까지 뿌린 혐오의 씨앗은 이미 깊이 뿌리를 내려 앞으로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본 정치사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정치가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아베가 사망한 걸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영국의 트럼프가 존슨 총리였다면 일본의 트럼프는 아베였다. 

 

나는 뒤숭숭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맛있는 걸 만들어서 먹었다. 아끼던 한치를 데쳐서 회로 먹었다. 복숭아도 디저트로 많이 먹었다. 오늘도 예정했던 일을 못해서 아쉽지만 그동안 아베를 관찰하고 썼던 사람으로서 극적인 사망도 써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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