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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나를 불태운 학생들

나를 불태운 학생들

일본대학생 2012/07/26 01:32 huiya



어제는 아주 끈적끈적한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였다. 

이번 주가 학기말로 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강의들이 있다
. 

화요일에는 강의가 좀 많은 날이다. 화요일에 끝난 강의가 있었다. 올해부터 새로 담당한 과목으로 지역연구/동아시아였는데 키워드가 행복이였다. 화요일 마지막 시간대에 배정을 해서 학생이 별로 없을 걸로 예상을 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알바를 가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산속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안 듣는다. 나도 학생수가 적은 게 아주 좋다.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100명 가까이 왔다. 예상외로 아주 많은 숫자이다. 학생들도 거의 다른 학부에서 왔다. 그리고 내가 하는 다른 강의를 들은 아이들이 또 왔다. 이 건 조건면에서 볼 때, 좋은 성과를 얻기는 어렵다. 첫 시간은 수업에 대한 설명만 하고 끝난다. 아직, 맛보기도 안 했는데, 학생중에서 올해 제일 괜찮은/재미있는 강의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속으로 아직 시작도 안했어, 그리고, 생각을 깊게 해야하는 철학적인 부분도 많은데 내 수업을 따라올까 불안했지만, 어차피 선택은 학생들이 하는 거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학생들 수업태도도 좀 산만하다. 그래도 수업이 끝날 무렵에 쓰는 감상문을 보면 열심히 한다. 쓸 말들이 넘쳐서 뒷장까지 빽빽히 채운다. 주로 내 수업은 이 학부에서 성적이 상위층 학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사실 다른 학부 학생들에게는 좀 어렵다. 강의를 하면서도 내 말을 얼마나 이해를 하고 따라올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뭔가를 기대하고 열심히 물고 늘어지고 따라온다. 강의를 하다보면 토픽에 따라서 늘어지기도 하는 데, 이 건 그 게 없었다. 계속해 갈 수록 학생들이 점점 더 자신들 스스로가 은근히 불타오른다. 수업태도를 보면 다른데, 감상문을 보면 아주 흥미진진하다. 수업에서 다루는 토픽을 단순히 수업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들 가족이나 주위사람들, 자신의 인생에 결부시켜가며 감상문을 써 간다. 수업에서 얻고 느낀 것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으로 피와 살로 만들어간다. 이 정도는 레벨이 높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인데,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풀어나간다. 감상문 레벨이 점점 올라가고 재미있어진다. 학생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자신들 능력개발을 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가 성장을 해간다. 성장하는 게 여름날 오이 자라듯 눈에 보인다. 어느새 학생들이 자신을 갖는지 태도들이 의젓해 온다. 감상문을 보면 완전히 달라진 학생들이 있다. 한꺼풀을 벗은 거다. 인간적으로도 성장했다.

마지막 시간에, 이 강의는 내 예상이 빗나갔어, 학생들이 관심이 있을까, 생각했던 토픽도 아주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응하고, 보니까, 왠지 불타고 있더라. 왜 그렇지? 학생들이 웃는다. 나를 신뢰한다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수업이 끝나고 수업앙케이트도 했다. 수업이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은 분위기, 뭔가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을 남긴 여운이 있었다. 학생들이 자신들 마음을 교실에 남겨놓고 갔나? 묘한 느낌이였다. 남았던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봤다. 수업이 재미있었느냐고, 감상문을 보면 학생들이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불타는 것 같던데 여학생이 흥분한 어조로 , 아주 좋았어요, 드라마틱하고요, 이런 강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자신들이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강의였어요.’ 그런데, 강의는 종강을 했는데 학생들이 돌아갔는데 강의가 계속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교실에 남아있는 이 묘한 기운은 뭐야? 이상하지? 


나는 학생운이 좋은 사람으로 어쩌다가 전설적인 강의 라든지, ‘대학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강의’,’ 인생관을 바꿔놓은 강의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바라는 대학강의는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인생관을 조금이라고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그 걸 바란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경험했던 좋은 강의라는, 학생들이 그렇게 평가해주는 강의는 내가 특별히 좋은 강의를 한 것은 솔직히 없다. 어쩌다가 학생들이 그렇게 느끼고 평가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 강의는 학생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 같다. 학생이 강의를 하는 사람을 신뢰해서 마음을 열고 교감하기 시작하면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가진걸 열심히 펼치다 보면 그들의 능력은 저절로 개발되어 가는 것 같다. 이번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그다지 우수하다는 학생들이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왠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학생들이 그런 자신들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 달라진다. 자신이 없어서 드러내 보이지 못했던 자신을 내보이면서 달라지면, 단체로 우수하다는 학생들을 간단히 뛰어 넘는다.


그 걸 알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알았다. 학생들이 불타오르던 불씨가 나에게 번져 내가 타버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무책임하게 학생에게 불씨를 던지기만 했는데, 그 불씨에 내가 타다니….. 이럴수가…. 잿더미가 되어 돌아왔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나까지 태워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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