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경생활

싱숭생숭하다

2014/06/26 싱숭생숭하다


오늘 동경은 선선하고 지내기가 좋은 날씨였다. 비가 올 것처럼 좀 흐렸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스쿨버스를 타는 곳 근처 미장원에 입구에 있는 제비집을 봤다. 제비집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마침 제비가 거기로 날아가서 집이 있는 줄 알았다. 금방 스쿨버스를 타야 해서 자세히 볼 경황이 없어 곁눈으로 보면서 지나갔다. 엄마제비인지, 아빠 제비인지 몰라도 큰 제비가 먹이를 가져갔나 보다. 아기 제비들이 입을 쩍 벌리고 서로 먼저 먹으려고 난리가 났다. 아기제비가 세 마린가, 네 마리로 추정된다. 벌린 입이 아주 커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쟤네들은 머리에 차지하는 입의 크기는 어떤 비율일까. 벌린 입이 얼굴보다 커 보였다. 재빨리 지나치면서 봤지만, 아기 제비들이 먹이를 먹겠다고 앞을 다투는 걸 보고서 기분이 좋아졌다. 박씨를 물어다 준 흥부네 제비는 아니건만, 작은 생명력이 풍기는 매력에 나도 모르게 끌려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좋은 일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이 나쁜 사람이 흥미가 있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잘 보이는지, 그 조그만 순간을 놓치지 않는 나도 좀 특이한 종류인 것 같다

학교에서 2교시에 여성학 수업에서, 오늘 좋은 일이 있었다고 제비네 가족을 본 걸 말했다. 흥부네 건은 빼고, 일본학생들이라, 흥부네를 모르니까. 지난주에 변태를 만난 얘기를 수업 중에 했더니, 학생들이 나를 위로하느라고 종이로 학을 접어주고 감상문에도 용기를 내서 말을 하라, 그런 것에 지지 말라등 위로가 담겨있었다. 학생수가 적은 수업이라, 학생들이 위로해준 것에 보답하려고 초콜릿을 사 가지고 갔다. 그전에 지각하는 학생들이 사탕을 사 온 적이 있었다

3
교시에는 노동사회학이었다. 학생수가 많아서 부산한 수업이었는 데, 지난 주부터 갑자기 학생들 태도가 좋아졌다. 오늘도 뒤에 앉은 학생들 태도가 불량해서 주의했다. 강의에 나와서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으려면 오지 말라고, 밖에서 집중해서 휴대폰을 보라고 했다. 적어도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수업을 시작했더니 조용해졌다. 오늘 내가 한 수업내용 중에 학생들에게 흥미진진한 내용이 있었나? 어쨌든 좋은 분위기로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리를 하고 스쿨버스에 올라탔다. 역에 도착했더니 전철가 서있어서 탔다. 전철에서 내릴 때, 껌을 깔고 앉았던 걸 알았다. 지난 주 한 남학생이 디젤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해서 오늘은 디젤 검정 면바지를 입고 갔는 데 누군가 씹던 껌을 일부러 의자에 뱉어놓고 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도 그런 경우가 없기에 앉기 전에 잘 보질 않았다. 아침에 제비를 봐서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껌을 깔고 앉았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중간에 전철을 갈아탈 때, 마트에 들러서 레터스와 요구르트를 사서 모노레일을 탔다. 집 가까이에 왔더니 위층 아줌마와 남자가 외출을 한다. 나는 피했는 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근데 같이 가는 남자가 남편인가? 요전날 봤던 얼굴이 없는 눈이 안 보이는 피해망상인 사람이 아니었다. 건강하게 생긴 몸도 얼굴도 멀쩡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데… 요전에 봤던 사람은 거동도 둔하던 데 전혀 다른 사람이다. 

손빨래를 해서 널고 저녁을 먹었다. 시간은 7시가 넘었지만 밝아서 쓰레기를 버리고 짧은 산책을 나갔다. 실은 이사를 앞두고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창밖 조망이 좋아서 여기로 정했었다. 창밖의 벚꽃나무는 무참히 잘려나가 내가 좋아했던 경치는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정이 들었다. 이사하는 곳은 바로 옆집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다르다. 여름이 되면 개장하는 야외풀장 가까이에 수국이 피기에 수국을 한송이 꺾으러 갔다. 거기에는 수국이 막 피기 시작하는 참이였다. 피어있는 수국은 두 송이밖에 없었다. 그 대신에 갑자기 치자꽃이 피었다. 습기가 많아서 치자꽃 향기가 진동한다. 치자꽃을 꺾고 싶은 데, 작은 벌레가 무궁무진하게 나온다. 가만히 봤더니 꽃이 피기 전에 꽃봉오리 상태에 작은 벌레들이 들어있었다. 오늘은 수국 한송이로 만족하기로 했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멜론의 계절  (0) 2019.06.26
옆집 사람  (0) 2019.06.26
논문 격투기  (0) 2019.06.25
지나간 장미의 계절 2  (0) 2019.06.23
지나간 장미의 계절 1  (0) 2019.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