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2 자해공갈
오늘 동경은 흐리고 기온도 그다지 높지 않은 날씨였다.
오전에는 집에서 빈둥 빈둥 거리다가, 오후에 히도츠바시대학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왔다. 아는 교수님이 퇴직을 하셔서 가방을 가지고 책을 얻으러 갔었다. 오랜만에 교수님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왔다. 돌아오는 길은 교수님이 도중까지 나를 바래다주셨다.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도서관을 향했다. 집주위 환경미화 작업을 하는 소음을 피해서 도망을 친 거다. 가는 길에 집에서 키운 오이를 팔고 있어서 샀다. 오이를 책과 같이 가방에 넣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갔더니 시험기간이 끝나지 않아서 학생들이 가득 찼다. 새책들을 훑어보고 읽을 만한 책을 골라서 앉을자리를 찾았지만, 빈자리가 없다. 요전에 와서 읽고 싶었던 책을 다시 찾아서, 의자만 하나 당겨다가 창가에 앉았다. 책들은 창틀에 쌓아 놓고 읽기 시작한다. 우선 먼저 읽고 싶었던 책부터 읽는다. 그러나, 몇시간 동안 집중을 해서 한자리에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두 권 정도다. 두 권은 찬찬히 다 읽고 일어섰다. 나머지 책은 훑어보고 다음에 찬찬히 읽기로 했다. 아직 시험기간이라, 책을 빌릴 수가 없다. 그런데 문고판 책은 빌릴 수가 있다. 그래서 문고판 책을 세 권 빌리고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8시 가까이 됐다. 오전에 나가서 점심도 안 먹고 책을 집중해서 읽었더니 배가 고팠다. 아침에 먹다 남은 문제의 된장찌개를 데워서 먹었다.
휴대폰을 봤더니 옛날 학생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었다. 보통 때는 휴대폰을 휴대하지 않는다. 나에게 휴대폰은 전화기로써가 아니라 시계로 유용하게 쓰인다. 내가 학생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냐고? 용건이 두 가지란다.
첫번째, 10개월 전에 쓰러졌던 할머니가 많이 회복을 해서 재활치료를 시작한단다. 용건이 아니라, 보고구만. 어쨌든 다행이다. 10개월 전에 그 아이가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갔어요. 저는 뭘 어떻게 하면 좋지요?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니 병간호를 한다는 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는 영어 선생님으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그냥 직장을 계속 다니고 병간호해 줄 사람을 따로 구해. 엄마는 병간호가 전문이 아니잖아. 그리고 할머니 병간호를 하는 것도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니까, 공적인 기관에서 어떤 보조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일본병원은 24시간 간호를 해준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가족은 병문안을 가면 된다. 한국처럼 가족이나 간호할 사람이 병원에 같이 있으면서 간호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용건은 자기를 만날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직장을 옮겼는 데, 자기가 연수를 담당하게 생겼단다. 그래서 나에게 어떻게 하면 연수교육을 잘할 수 있을지 가르쳐 달란다. 알았어, 근데 전화로는 안되지. 시간을 낼 테니까, 관련 자료를 다 가지고 집으로 와. 내가 아는 건 가르쳐 줄게. 선생님, 이거 제가 잘못하면 저 직장에서 잘려요. 아셨죠, 선생님에 제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임지란다. 기가 막히다. 나를 협박하고 전화를 끝낸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 아이는 내 학생이 아니었다. 내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고 학생 때부터 나를 좋아한다고 쫓아다녔다.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디즈니 인형을 사다가 나에게 안겨주고… 나에게 이런 사람은 ‘팬’에 속한다. 근데, 내 학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서 나에게 자신에 관한 일을 결정하라고 한다. 15년 이상 내가 결정해왔다. 처음은 해외유학부터 취직에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옮기는 것도 다 내가 관여를 했다. 그리고 가끔 뜬금없이 나타나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다. 특히 휴대폰을 살 때, 바쁘다는 아이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전화기를 택해서 나보고 이걸 쓰라고 추천한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디즈니 폰이다. 나는 휴대폰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 그냥 쓸 수 있으면 된다. 근데 한번 사면 오래 쓴다. 불편해도 그냥 쓴다. 주위 사람들은 디즈니 폰이 내 취향인 줄 알고 있다.
이 아이는 내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가끔 주지시킨다. 어제 생각을 해보니 자기가 내 팬이었지, 내가 자기를 좋아한 건 아닌 것 같은 데, 어떻게 내가 끌려간다. 갑과 을의 관계가 언제 바뀌었지? 이건, 팬서비스 차원을 넘었다. 자기가 연수교육 담당이 되었는 데, 내가 그 걸 잘 안 가르치면 자기가 잘린다니,, 황당하다. 이건 아무래도 자해공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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