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1 귀가 공포증
오늘 동경은 어제보다 기온이 더 내려가서 최고기온이 25도였다. 이틀 전에 최고기온이 38도에 최저기온이 26도였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변화다. 날씨가 급변하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지만, 몸이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도 아침을 든든히 먹고 느지막히 도서관에 갔다. 친한 직원에게 흰색 수건을 주기로 한 것도 있다. 이 수건은 일본에서 근래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이마바리'라는 브랜드다. 부드럽고 흡수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인기가 있다. 내가 쓰는 수건도 거진 '이마바리'로 바꿨다. 그냥 하얀 핸드타올이라 자수를 해서 주려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 어젯밤에 자수를 하니, 하면 할수록 행주처럼 보여서 작은 꽃을 두 송이 자수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직원은 기쁘게 받아 줬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저녁이 되어 돌아왔다.
책을 읽다 보면, 아무리 도서관에서 서평을 참고로 산다고 해도 이상한 책도 있기 마련이다. 나도 골라서 읽는다고 해도, 읽는 중이나, 읽고 나서 이상하게 느끼는 책도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책 중에 “귀가 공포증”이라는 책이 좀 이상했다. 귀가 공포증은 일본에서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이전부터 듣던 것이었다. 귀가 공포증에서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을 한 사람도 알고 있다. 귀가 공포증은 별거에서 이혼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저자가 같은 세대의 여성 카운슬러로, 카운세링 한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라, 관심이 갔다. 여성의 입장에 서서 쓴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여러가지로 분류를 많이 해서 문제점을 잘 정리, 해결을 조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여성이면서 ‘남성편’에 서서 썼다는 것이다. 귀가 공포증에 걸리는 것은 남성이고,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카운셀링을 하니까, ‘남성편’에 서는 것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상하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남성편’만 든다는 것이다. 귀가 공포증은 간단히 정리하면 섹스리스를 기본으로 얌전한 남편과 강한(드센?) 아내의 조합이 많다는 것이다. 부부가 성실하며 융통성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강한 커플이 귀가 공포증으로 서로가 피곤해진다고 한다. 가장 나쁜 조합은 여성이 남편의 직장상사일 경우로, 결혼해서도 남편을 부하직원처럼 대해서 남편으로 하여금 귀가 공포증이 걸리게 한다고.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여성들은 드세다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여성들이 드세질 환경이라는 걸 알수 있다. 예를 들면,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아이가 둘이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서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졌다고 마누라가 무섭다면서 귀가 공포증이 되어 간다. 여성이 정규직 일을 하면서 독박육아를 한다면 드세지지 않고 어떻게 배기라는 것인가? 그런 조건에서도 남편에게 관심을 가지고 아내가 잠든 후에 귀가하는 남편이 좋은 점을 칭찬해주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다. 남편에게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라는 부분은 별로 없고 아내에게 남편을 이해하고 상냥하게 돌보라는 것이 주된 조언이다.
결정적인 것은 “아내가 바쁘면 부부관계는 무너진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시간에 쫓긴 나머지 남편과 아이에게 상냥하게 못하고 작은 것에도 짜증을 내게 된다고” 그러니까, 일하는 걸 바꾸든지, 가사도우미를 쓰라고 한다. 아니, 결혼해서 일하고 육아에 가사를 하는 여성이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나? 같은 조건이라면, 전업주부도 바쁘고 피곤하다. “남편과 다름없이 일하는 데, 남편이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 이럴 바에는 혼자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혼을 생각한다는 여성에게 일 때문에 이혼하는 것은 안되니까, 일을 바꾸라고 해서 정규직에서 알바로 바꾸고 남편의 ‘부양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수입은 줄어도 자유시간이 늘어 여유가 생겨서 남편과 대화도 늘었고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까, 남편도 말을 많이 한다." 여기서 요지는 여성이 남편을 위해서 정규직에서 알바가 되어 남편의 '부양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이 정규직을 그만두면 다시 정규직이 되기는 아주 어렵다. 결국,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이 희생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남편은 더 많이 일을 해야 하니까, 귀가 시간이 더 늦어지고 피곤해서 아내와 마주 볼 시간과 체력이 없을 텐데… 남편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스트레스로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지금 결혼한 여성들이 육아를 위해 정규직을 그만 두고 싶어도, 예전과 달리 남편직장 정년이 보장되지 않아 불안해서 그만둘 수가 없다. 그리고, 자녀가 있으면 교육비 등으로 남편 혼자의 수입으로는 가계가 어렵다. 정말로 고수입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가사도우미를 쓸 수가 없다.
남편을 칭하는 데도 여성이 旦那様(서방님?)와 主人이라는 걸 쓴다. 지금 이 시대에 남편을 칭하는 데 旦那様라는 것은 이상하다. 여성이 가사도우미라면,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에게 그렇게 부를 수 있다. 主人이라는 것도 아주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나, ‘특별히 보수적인’ 여성들이 쓸 것이다. 저자가 50대 후반이니, 나이가 많다면 60대 이상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 세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인데, 남편과 동등하게 일하는 ‘특별히 보수적인’ 여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상상이 가질 않는다.
미안하지만, 귀가 공포증은 여성이 드세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들이 아내와 가족에게 관심이 적어서 생긴다고 본다. 여성이 희생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다. 남편은 회사가 끝나도 집에 오지 않는데, 정규직으로 일하며 독박육아에 집안 일을 혼자 하면서도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항상 상냥할 수 있는 아내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여성들도 ‘꿈’에 그리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아내가 병으로 쓰러지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다.
여성이 ‘남성편’에 서서 일방적으로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는 옛날부터 많이 봐왔던 것이다. 지금 아베 정권은 시대를 역행해서 여성들에게 부담이 많은 3세대 동거를 권장하는 걸로 봐서 이 책도 아베 정권에 의한 정책의 일환인가? 그렇다면, 아주 이해가 된다.
'일본사회 > 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혐오, 헤이트 스피치의 위력 2 (0) | 2019.08.08 |
---|---|
혐오, 헤이트 스피치의 위력 1 (0) | 2019.08.08 |
일본, ‘애국’이라는 것 (0) | 2019.08.07 |
재난 속에서 산다는 것 (0) | 2019.07.27 |
혐오범죄를 키워온 사회와 정치 (0) | 2019.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