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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재난 속에서 산다는 것

2018/07/26 재난 속에서 산다는 것

 

오늘 동경은 서늘해서 최고기온이 30도였다. 최저기온은 25도라고한다. 어제는 최고기온이 34도였다. 살인적인 폭염으로 최고기온 39도를 이틀 연속 찍고 35 아래로 내려가니 견딜만 하다고 느꼈다. 거기에 오늘은 최고기온이 30도라니 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살인적인 폭염을 견디다 보니 어딘가에 무리가 모양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상하다. 자신의 몸이 아닌 느낌이 든다. 

 

폭염이라는 재해, 재난은 모두에게 덮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경에서 산다는 것은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서울에 비하면 공기도 깨끗하고 전철도 덜 붐빈다. 사람도 적고 조용하다. 내가 사는 주변 환경도 좋고 가까운 곳에 농가가 있어 제철 야채를 착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런 소소하게 좋은 일을 다 뒤집고 마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일상적으로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아무리 일상적으로 일어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어제도 전철을 오며 가며 두 번씩 갈아타는데 세 번이나 자살사고가 났다는 안내를 보고 말았다. 만약에 우울이라는 늪이 있다면 어제 같은 날은 우울이라는 늪에 빠지기에 안성맞춤이다. 애써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그렇지 그냥 있다가는 한순간에 정신줄을 놓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자살사고는 '사회적 재난'이 아닌가 한다. , 호우나 폭염이 아니라도 자살사고라는 '사회적 재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동경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요새 주로 넉넉한 원피스를 입는다. 편하고 시원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화사한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갔다. 전철에서 아저씨들이 쳐다본다. 대학에서도 이상한 사람(대학교수)이 나를 보고 적극적으로 기뻐한다. 그리고 내 주위를 맴돈다. 이런 걸 보면 믿을 수가 없다. 무늬가 화사한 것뿐이지, 노출이 심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기 위해 입은 것도 아니다. 마치 내가 알몸 이기라도 한 것처럼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불쾌하기 그지없다. 어제 다른 선생을 봤더니 레이스로 뜬 것으로 노출도가 높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레이스가 예뻐서 쳐다봤다. 날씨도 덥고 자살사고도 있어서 기분이 나쁜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매너가 나쁜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화가 난다. 일본에서는 이런 매너가 보통이다.

 

오늘은 목요일, 목요일에도 정해놓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대학교수)이 있다. 지난주에는 맞은편에 앉아서 컴퓨터를 쓰면서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 연구실에서 컴퓨터를 쓸 수 있을 텐데, 하필이면 바쁜 시간에 와서 설친다. 나를 의식해서 시간에 맞춰 와서 내 주위를 맴돈다. 사람을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게 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싫어하는 눈치를 주면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오늘도 내가 있을 시간에 와서 주위를 맴돌다가 나갔다. 나는 인사도 안 했다..

 

어제 화사한 원피스를 입어서 아저씨들 시선을 받고 이상한 사람이 주위를 맴돌아서 오늘은 지극히 평범한 옷을 입었다. 오늘 종강이라서 학생들에게 기분 좋게 끝내고 싶어서 다른 옷을 입고 싶었지만, 어제 일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기분이 나지 않는다. 이런 남성들의 시선은 폭력적이라,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재난이다. 여자라서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라서 불쾌한 시선을 받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시달린다는 일상은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이상한 사람들에게 당해 온 입장이라, 노골적으로 싫은 얼굴을 한다. 전에는 이상한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했다가 거꾸로 내가 자기를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것처럼 행동해서 사건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변태'라고 생각한다.

 

목요일에는 나를 쫓아다니는 남학생이 있다. 전에 내 과목을 들었던 학생이다내가 타는 버스 시간에 맞춰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전철을 탄다. 버스에서는 친한 폴란드 선생과 수다를 떤다.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에 잠깐 말을 한다. 취직활동이 끝났냐는 등 근황을 듣는다하지만 전철을 타면 각자 다른 자리에 앉는다. 나를 따라다니지만 적정한 선을 지키고 매너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적정한 선과 예의를 지키는 케이스는 모른척한다.

 

좀 싫은 일이 있어도 기분 좋게 인사를 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기본적인 매너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한 사람들은 그런 기본적인 매너를 왜곡해서 내가 자기를 좋아해서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인사한 것을 마치 고백이라도 한 것처럼...... 미쳤냐고? 인사도 사람을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 아니면, 이상한 사람에게도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행동해야 한다. 나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싫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사건이 될지 모르니, 사건은 가능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도 점점 이상한 아줌마가 되어 간다.

 

이런저런 '재난'의 연속인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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