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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여혐'의 생성

2017/08/23 '여혐'의 생성

 

오늘 동경은 아주 더운 날씨로 최고기온이 36도나 되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36도까지 올라갈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보통은 아침에 선선한데,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해도 물기를 닦기도 전에 땀이 난다. 더위는 집에서 버티면 아무것도 한다. 학교로 피난을 가야지. 아침을 먹는 데도 불을 쓰기가 싫어서 찬밥을 꺼내서 양배추로 쌈을 싸서 먹고 나갔다.

 

학교에 가면서 농가 마당을 들여다봤지만, 살 것이 없었다. 다음은 좀 길을 돌아서 야채 무인 판매하는 곳에 들렀다. 작은 호박 두 개와 맵지 않은 고추를 한 봉지 샀다. 가방에 넣었더니 짐이 무거워졌다. 학교에 가서 저녁 5시가 넘을 때까지 책을 읽고 원고를 교정하다 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코스를 들렀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문제는 학교에서 돌아온 다음이었다. 저녁도 집이 더워질까 봐 불을 쓸 수가 없어서 찬 걸 먹었다. 낮의 열기가 남아 있어 창문을 연 것은 밤 10시다. 내일도 최고기온이 34도에, 모레는 최고기온이 36도나 된단다. 학교로 도망가서 지낼 예정이다.

 

네팔 아이가 다녀간 다음, 마음이 뒤숭숭하다. 지금까지 잠재적이었던 '여혐'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볼 수 있는 경향이기에 트렌드다. 네팔 아이는 결코 여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여자에게 무척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데도 불구하고 한 명도 사귈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은 네팔 아이 만이 아니라, '여혐'경향을 보이는 남학생들에게도 공통된 점일지도 모른다. 남학생들은 교실에서 만나지만, 네팔 아이는 긴 기간에 걸쳐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혐'은 남자가 여자를 싫어한다거나, 좋아하는 경향이 아니다. 여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대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지금 일본의 남학생 중에는 자신이 평생 연애나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연애나 결혼이 싫은 것이 아니라, 속으로는 관심이 많다. 막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현실적으로는 자신이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가 있다. 근거 없이 자뻑하다가 정체모를 열등감으로 자신이 없는 것이다. 본인들은 열등감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젊어서 경험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실패하면서 자신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벌써부터 자신이 없다고 도망갈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남학생의 공통점은 여자에게 관심이 많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원활히 커뮤니케이션을 못한다.

 

취직이 된다고 하지만, 장래가 밝은 것도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밝지 않은 장래나 행복할 것 같지 않은 미래가 여자들 탓인 것처럼 느낀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 자신들 기득 권익이 빼앗긴 것 같은 피해의식이 있다. 점점 약해져 가는 자신들 위상에 비해 지금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사회 진출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우대를 받는 것 같아 화가 난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노동의 여성화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이 처한 입장처럼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며 여성들처럼 승진의 기회조차 없는 불안정한 고용이 늘어나고 있다. 남성인 자신들이 약자가 된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그에 비해 여성들 사회진출이 활발하고 매력적인 여성성을 이용해 더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비치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여성에 대해 굴절된 우월감과 컴플랙스가 동시에 존재하며, 기본적으로 어리광이 바탕이 되어있다.

 

일부 학생들은 여자를 만나거나 결혼을 하면 자신이 버는 돈을 여자가 쓴다고 돈이 아깝다고 한다. 여자를 위해서 돈을 버는 존재가 되기 싫다고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남학생들 의식으로는 전업주부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학생들 어머니 대부분이 일을 한다. 전업주부는 극소수다. 학생들에게 어머니는 왜 일을 할까? 자신의 취미를 위해서? 아니면 명품을 사려고? 아니다. 학생들은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자신들을 키우고 학비를 벌고 가계를 보태기 위해 일하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사귈 여자는 자신을 돈을 벌어오는 기계, ATM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냐고 지레짐작한다.. 미안하지만,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보면 알겠지만, 여자에게 돈을 줄 정도로 벌 수가 없거든. 여자와 둘이 힘을, 수입도 합쳐서 살아가야 해.. 남자 혼자 벌이로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 정도 수입을 얻기가 힘들어. 여자가 전업주부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어.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여성들이 말없는 희생 덕택에 지금 이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

 

네팔 아이에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어떤 사람보다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그런 의식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다고 하면 아주 깜짝 놀라서 당황한다. 본인은 사람을 차별한다고 생각한 적조차 없다. 거꾸로 사람을 차별하는 걸 싫어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달리 아주 마초적이다. 이건 개인적인 성향도 있지만, 주위에 사귀는 친구들이 그런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기에 마초적인 것이 아주 멋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마초적인 성향이 남자들에게는 멋있는 것인지 몰라도 자신이 관심 있는 여성에게는 무섭게 비칠 수도 있다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아니다, 여자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걸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여자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근육을 키워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마트한 여성이 근육에 관심을 가질지는 모를 일이다.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으로 근육을 키우거나,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여자는 눈이 삐었다고 싸잡아 욕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욕구불만이 '여혐'으로 전환되지 않으려면우선 여자를 존중하고 여자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죽어도 그럴 리가 없다고 안 듣겠지만 말이다. 과연, 스마트한 여성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남성을 좋아할까? '여혐'은 여성들의 실태와는 달리 남성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여성들에게는 더 무섭고 대응하기가 힘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