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3 상자 속에서
오늘 동경 날씨는 아침부터 가을비가 촉촉하게 조용히 가랑비가 내린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경치는 단풍이 들어서 예쁘다. 비록 작년보다 창밖 나뭇가지가 많이 잘려 나가 앙상해졌지만. 그리고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서 나뭇가지 사이로 다른 집이 보인다. 여름에는 나뭇잎이 무성해서 거의 안 보였는데… 자신이 상자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남의 상자는 보기가 싫다. 남의 상자를 보면, 자신이 상자에서 살고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하니까. 결국, 나의 일상은 작은 상자에서 먹고 자고, 움직이는 상자를 타고 일터에 가서, 더 큰 상자에서 일을 하는 거니까. 잘나 봤자 상자 속 인생이다. 홈레스는 길가에서 박스를 깔고, 박스에 둘러싸여 산다. 지진 피해자는 더 큰 상자 같은 건물, 피난소에서 박스를 쌓아서 침대를 만들어 잔다. 박스 상자 침대가 튼튼하고 좋단다. 거기에 박스로 경계를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표시했다. 인생 별거 없다. 날 때부터 상자 속에서 태어나, 결국 죽어서도 상자에 들어가니까. 큰 상자, 작은 상자, 넓은 상자, 좁은 상자, 튼튼한 상자, 약한 상자, 시멘트 상자, 종이 상자, 상자, 상자, 상자… 거기에 붙은 각종 표딱지로 구분을 한다. 나 잘 살아, 너 못 사네. 뭐야, 상자를 둘러싼 싸움이구나.
다행인 것은 내 상자 주위에 자연이 많이 남아있고, 나무도 많이 있다는 거다. 내 껀 아니지만, 주위에 있는 거라, 더불어 산다. 시멘트 상자에서도, 계절을 느끼면서 산다.
요새 동경 날씨 기온이 낮다. 오늘도 최고 기온이 10도다. 이 건 완전 겨울 날씨다. 그런데,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뛰어서 나무들이 단풍 들새도, 나뭇잎이 떨어질 새도 없었다. 그래서 기온과 바깥경치가 따로 논다. 옷도 가을 옷을 입어야 좋을지, 겨울 옷을 입어야 할지 헷갈린다. 알게 모르게 사계절이 몸에 깊게 깊게 각인이 되어 습관과 타성으로 나를 지배한다. 나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호주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서 계절 감각이 이상해졌지만 말이다.
기온이 낮아도, 아직은 가을 하늘이다. 그래도 창밖 경치가 가을이어서, 겨울보다 덜 춥게 느끼고, 덜 을씨년스럽다. 오늘은 연휴다. 학교에 따라서는 오늘도 수업을 한다. 수업 횟수를 채워야 하니까… 내일은 세미나에 초대를 받아서 외출한다.
지금 약간 감기 기운이 있다. 오늘 집에서 일을 해서 서류를 발송해야 한다. 그리고 좀 쉬어야지, 감기를 빨리 고쳐야지… 근데, 왜 하필 쉬는 날 날씨가 흐리냐고… 오늘도 점심은 찐 고구마를 먹어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오랜만에 털실을 주문했다. 블루 계통이다. 어젯밤에 주문을 하려다, 망설였다. 그런데 일본은 바다색을 표현할 만한 블루 계통색이 약하다. 아무래도 바다색을 표현하려면 필요한 색이라, 주문을 했다. 어떤 바다를 표현할 수 있을까, 꿈이라도 꾸어야지… 요새 뜨개질은 안 해서 금단증상이 보인다. 금단증상은 멍해지는 거다. 유령처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혓바늘이 돋았다. 지난주, 몰카에 스토커가 겹쳐서 속이 뒤집혔다. 인간이 덜되어 나이를 먹어서 이런 게 일상적이어도 익숙하질 못한다. 그렇게 대처를 못하는 자신도 싫다. 아니나 다를까 후유증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온몸이 삭신이 쑤신다. 뼈마디가 아프다. 이 건 노화현상이야, 아니 그런데 노화가 이렇게 갑자기 하룻밤을 자고 나면 오는 거야, 노인이 된다는 건 대단하다.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구나. 화요일은 바쁜 날이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했을 때, 피곤함을 느꼈다. 웬만하면, 수업을 하면서 몸을 풀고 피로를 회복하는 특이체질이라, 수업에 집중을 한다. 미팅을 한다 해서 바쁘게 보냈다. 저녁이 되니 몸과 마음이 달뜬다. 혹시 이 건 노화가 아니라, 조울증 초기증세일까? 갖은 상상을 한다. 밤에는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집에서도 추운 날씨인데, 춥지도 않게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기침을 해서 알았다. 노화현상이나, 조울증이 아니라, 감기라는 것을.
수요일에는 수업을 마치고 식량과 집에서 입을 따뜻한 원피스를 사러 갔다. 일본집은 난방이 부실해서 집안이 아주 춥다. 원피스를 상의로 입는 게 따뜻하고 편하다. 색감도 따뜻하고 밝은 핑크 페이즈리 무늬가 들어간 프랑스제 원피스를 쌌다. 물론, 가게에서 입어봤다. 집에서 마구 입기에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집에 와서 상표를 떼어내고 울세제로 손세탁을 해서 말렸다. 그리고 입어봤더니 가슴이 많이 파이고 몸에 착달라붙어서 섹시한 마담 분위기다. 여기에 롱부츠를 신고 멋을 내면, 아주 골치 아픈 아줌마가 탄생한다. 밖에서 입으면 큰일 난다. 주위에 변태가 몰려올 거다. 아니 이게 뭐야, 가게에서 입어볼 때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잖아. 나는 옷을 약간 잘못 입으면, 부티나는 마담 분위기가 된단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이 건 아니거든요… 집에서 입을 거라도, 변태에 질린 사람이라, 이 원피스를 평온하게 입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모처럼 기분전환이었는데… 실패다. 바겐헌터도 가끔 실패를 한다.
오늘은 빨리 일을 마치고 이불속에서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면서 보내야지, 비록 희망사항이지만 말이다.
우울하시다는 뮤즈님을 위해서 제 예쁜 나비브로치를 찍어서 올립니다. 요새 책상위에서 뒹굴면서 나를 위로해 준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