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9 냄새의 기억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가랑비가 그치고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가랑비가 그쳤지만 나뭇잎과 나뭇가지, 전깃줄에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아주 습기가 많다. 나는 밤새 창문을 열고 커텐을 닫고 잤는 데, 아침에 비가 와서 커텐을 열고 창문을 꽁꽁 닫았다. 창문을 열면 더 시원하지만, 습기가 많아서 싫다.
올해는 갑자기 폭염이 계속된 날씨 탓인지, 예년에 비해 모기가 많다. 그래서 모기향을 달고 산다. 요전날 낮잠을 자려다가 훅하고 이불에서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옛날 시골 할아버지 방에서 나는 냄새였다. 곰방대로 골초 담배를 피우는 담배냄새에 절은 냄새였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기억을 더듬어봤다. 내가 어디서 이 냄새를 맡았을까?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친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 친할아버지에 관한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외할아버지는 깔끔하기가 짝이 없는 양반으로 항상 하얀 버선을 신었는 데,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갈아 신었단다. 그래서 담뱃재를 날리는 불결함이 싫다고 담배는 피우지도 않았단다. 내 주위 남자 어른들은 깔끔하고 말쑥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저분했던 것도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같이 살았던 이모네, 이모부도 멋쟁이로 집에서 항상 와이셔츠에 넥타이, 바지를 입고 거기에 베스트나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머리칼이 흐트러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이모에게, 이모부 머리칼이 흐트러진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자기는 결혼한 이후 한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단다.
아주 어렸을 때 나를 귀엽다고 안고 다니던 삼촌이나, 다른 이모부도 다 깔끔했다. 그런 집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명절 때가 되면 친가 친척이 있는 동네에 갔지만,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런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낼 일이 없는 터다. 이 냄새의 기억은 실제로 있었던 상황이 아니라, 책에서 본 이미지에 부착된 것인가 보다.
습기가 많고 더운 여름에 집에서 입기에 쾌적한 옷이 드물다. 올여름에 입으려고 산 옷도 그다지 쾌적하지 않다. 여름에 집에서 잘 입던 짧은 원피스를 꺼내봤더니, 세상에 너무 달아서 등에 겨드랑이에 구멍이 나있다. 겨드랑이는 꿰메고 자시고 할 정도가 아니다. 등에도 구멍이 몇 개 인가. 아, 내가 어렸을 때, 나이드신 분들이 아주 낡은 나달 나달 한 해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검소하게 지내느라고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어느 새, 나달 나달 해진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이런 옷이 주는 쾌적함이 있는 것이었구나… 웃음이 난다. 아마, 내 옷을 누가 보는 일이 있다면, 정말로 못 봐줄 일이다. 그래서 옷을 만들었다.
학생 때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나가노에 갔던 적이 있다. 내가 묵었던 집은 민박집을 하는 곳이었다. 분지에 있어서 아주 습하고 더운 곳이었다. 나는 여자라서 거기 엄마와 같이 행동을 했다. 집안 일도 같이 하고 절간에 있는 산소에도 가고, 거기 엄마는 쉴 새 없이 집안 일과 지역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 제주도 사람, 여자들이 일하는 것을 봤다. 서쪽이라, 동쪽보다 일이 수월하다지만,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동쪽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로 일을 하는 걸 봤다. 그래도 잠시 쉴 짬이 있었다. 그러나 나가노, 신슈에서 홈스테이 했던 집 엄마는 전혀 쉴새가 없이 일을 한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에,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 엄마가 말을 했다. 여기는 땅이 척박하고, 옛날부터 가난해서 살기가 힘든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부지런한 공으로 살았다고, 남자들 또한 죽어라 공부해서 도회지에 좋은 대학으로 가야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단다. 여자들이 부지런하게 일을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엄마가 젊었을 때 입었던 유카타를 줬다. 그 집에는 딸이 없었다. 거기서 유카타를 입고 여름축제에 놀러 간 적도 있었다.
젊었을 때는 이런 옷이 어울리지 않았다. 설사 어울렸다고 해도 입을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입던 걸 받은 거라, 버리지도 못한다. 남에게 주기도 어렵다. 유카타를 뜯어내어 천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 걸 내놔서 원피스를 두 장 만들었다. 그냥 집에서 입으려고, 손바느질로 기웠다. 그런데 만들어서 입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좋다. 우선, 멋있고, 쾌적하다. 무늬가 눈에 시원하게 비친다. 물이 흐르고, 물결이 빛을 받아 찰랑이는 것처럼, 물고기의 비늘처럼, 여름 햇살 아래 이 색감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천도 면이지만, 올록볼록해서 몸에 들러붙지 않아 통기성이 좋다. 습기가 많은 일본 여름을 지내기에 좋은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것이라, 오래된 옷 냄새가 난다. 옷이 땀에 젖으면, 숨어있던 냄새가 증폭이 되어 나타난다. 곰팡이 냄새가 난다. 뭔가 얼룩도 있다. 원래가 아주 고급스러운 소재는 아니었다. 오래된 것이니 그 만한 냄새도 날 것이다. 어디서 생긴 곰팡이 일까, 신슈일까, 동경일까, 가고시마일까, 시드니일까, 모르겠다. 그 엄마가 뭘 할 때, 얼룩은 생긴 것일까. 누군가의 물건을 물려받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물건에 얽힌 기억도 물려받는 것인가 보다.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그 엄마의 얼굴, 그러나 그 흔적은 강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유카타를 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나의 냄새와 흔적도 겹쳐진다.
할아버지 냄새에 충격을 받은 나는 할아버지가 되기 싫었나 보다. 그저께, 다른 향기가 나는 모기향을 사러 갔다. 장미향이 나는 걸 샀다. 장미향이 훨씬 덜 자극적이다. 내가 아직은 아줌만데, 할머니는 몰라도 할아버지가 될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