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1 소녀상을 잊지 마세요
오늘 동경은 맑지만 쌀쌀한 날씨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아침으로 남아있던 햄과 달걀프라이를 했다. 그 위에 아보카도와 피클, 키위를 얹었다. 아침을 먹고 야채가 있는지 농가에 갔다. 마당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는 데, 야채는 없었다. 일주일 이상을 쉬신다고 한다. 인사하고 달걀을 사러 갔다. 도중에 있는 야채 파는 곳도 문을 닫았다. 여기는 보름 이상 쉰다는 안내문이 걸렸다. 달걀집에 갔더니 마침 할머니가 계시다. 달걀을 사고 수다를 떨었다. 야채는 쉬어도 닭은 정월이고 그믐이고 달걀을 낳으니까… 그리고는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프린트하러 갔다. 쌀쌀한 날씨여도 좀 걸으면 땀이 난다. 어느 새 점심때가 지났다. 작은 고구마를 두 개 찌고 호박을 썰어서 나중에 단팥을 넣어 끓였다. 달달한 단팥 호박죽을 만들어서 피클과 같이 먹었다. 오전은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꺼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의 반응이 궁금해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우연히 오마이TV가 라이브 중계를 한다고 해서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봤다. 호주 친구는 서울에 가면 수요집회에 참가하고 참가하지 못할 때는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 숙소에서 수요집회를 바라본다고 했다. 나는 거기까지 열심인 것은 아니지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합의는 갑작스러운 데다, 일본의 일방적이며 강압적으로 종결을 지웠다. 그냥 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사실 오마이TV는 처음 봤다. 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발언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들도 참가했고, 참가자도 다양했다. 그리고 발언 내용도 같은 의미라도 자신의 언어로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어떻게 집회를 하는지도 궁금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번 합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해서 아주 열심히 집중해서 봤다. 중계가 끝나고 대학생들이 하는 것도 끝까지 봤다. 너무 열심히 봐서 머리가 아파올 정도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었다.
페북에 서울에서 열린 집회 중계를 봤다고 올렸다. 그리고, 그런 집회를 중계하는 미디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더니, 일본 친구를 비롯해 미국 친구,호주 친구, 멕시코에 있는 친구 엄마나 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좋아요로 답해준다. 오후에는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가서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면서 중계를 본 얘기를 했다. 나도 한국을 떠난 지 오래서 잘 몰랐는데, 한국사회가 확실히 변한 모양이라고 했다. 친구는 일본에는 희망이 없다고 일본에 비하면 한국이 훨씬 건강하단다. 이번 위안부 합의에선 한국 정부가 가장 나쁘다고 했더니, 한국시민들이 그런 움직임을 한다는 것이 희망이 아니냐고, 일본 매스컴은 매스컴의 기능을 잃었다면서 더 우울해한다. 내가 알기로는 친구 아들이 신문사에 근무한다.
한편으로 나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일시적으로 끝나면 안 된다. 이번 합의 타이밍이 일본이나, 한국의 현정권이 자신들 선거를 위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맞춘 것이다. 한국에서도 반발이 거세서 당황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한국 측 반발을 예상외로 본 모양이다. 어제 저녁에 인터넷으로 내가 중계로 본 집회에 관한 보도를 봤다. 한국에서는 한겨레에서 주최자 측에서 천명, 경찰에서 700명이라고 추산했다. 일본 산케이에서는 300명이라고 나왔다. 집회 참가자 숫자도 왜곡한다는 걸 알았다.
일본에서 2011년 8월 후지TV 혐한 데모로 시작해서, 특히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고 나서 급격히 혐한이 늘었다. 그 해는 각종 잡지에서도 한국을 특집으로 할 정도였는 데, 갑자기 정반대로 급격히 커브를 틀어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는 매스컴에서 연일 한국과 중국을 비방하는 기사에, 혐한 데모, 헤이트 스피치는 일본에서 유례를 볼 수가 없을 정도의 횟수, 거의 매일 일어났다. 일본 역사상 혐한 데모처럼 뜨거운 운동이 없었다. 나도 한국말로 전화하다가 욕을 먹거나, 근무하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동료가 헤이트 스피치로 난동을 부린 사태도 있었다. 사회분위기도 어마 무시하게 변했다. 그런 걸 지지한 것은 아베 정권의 핵심이었다. 그러면서도 헤이트 스피치를 심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난처럼 하는 것이다. 폭력을 오락처럼 해서 하는 쪽은 장난이지만, 피해자는 더 상처를 깊게 입는 구조다. 아주 교묘하게 위장해서 전파했다.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줬지만,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었다. 고도의 이지메처럼 복잡하고 교묘했지만, 파장력과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매스컴의 뒷받침(한국에서 반일행동을 한다는 끊임없는 보도)에 무엇보다도 정권의 핵심과 일심동체처럼 마음이 통하는 데 무서울 것이 없다. 사회분위기 자체가 헤이트 스피치를 용인하고 지지했다. 보다 못한 일부 사람들이 카운터로 나서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카운터가 나서기 시작한 시점은 너무 늦었다. 약한 사람들은 다 나자빠진 다음이었다. 그렇지만, 매스컴에서 카운터가 있다는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 사회의 건전함을 자랑할 때, 기가 막혔다. 매스컴이 혐한이나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서 비판하기나 했나? 자작극이다, 북 치고 장구 치면서… 항상 그렇지만, 내가 경험했더니 정말로 무서운 사회였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광풍은 지나갔다. 기가 막히게도 안보법이 통과되니까, 조용해지더라는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관동대지진 때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구실이 있으면, 없는 구실을 만들어서 조선인을 죽일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재일동포는 공포에 떨면서 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뭘 하는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차별하는 것은 극소수의 과격한 사람들이 하는 걸로 여겼다.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묵인하며 동의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모를 뿐이었다. 그러나 근래 일본 사람들이 드러내지 않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지만, 조선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말이다. 조선인에는 재일동포는 물론, 한국사람도 포함된다. 내가 500명 이상 듣는 수업에서 조사한 결과도 있다. 그 결과에 나도 놀랐지만, 학생들도 놀라고 말았다.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숫자가 나오고 만 것이었다. 숫자를 밝히니까, 학생들이 한순간 숨이 멎더니 웃더라. 명문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나, 과격한 차별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근본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여기서,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겠다. 힌트로 거의가 한국과 중국을 싫어한다, 아주 미미한 숫자가 한국과 중국을 싫어하지 않는다로 나왔다. 일본에서 싫다는 말은 끝이라는 말이다. 어떤 관계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싫은 것이 아니라, 싫어서 이런저런 이유가 붙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의 뼈에 사무치는 '혐한'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 싫다고 혐오한다는 데… 내가 보기에 한국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싫다는 숫자만큼 일본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가?
아베 정권은 자신들 손아귀에 한국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이 시작될 무렵부터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그걸 물지 않았다. 그러니까, 박근혜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미인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더니 나중에는 마귀할멈처럼 말했다. 자신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더니 갑자기 올해 5월인가 반짝 매스컴이 동시에 칭찬했다. 일한 수교 기념일이었나? 그리고 지난 11월 초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는 역시 박근혜는 자기편이라는 걸 확인했나? 이번 위안부 합의가 되고 말았다. 아베 씨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오만했다. 당연한 것이다. 손바닥 안에 넣고 쥐락펴락하다가 밟던지, 버리던지… 그런데, 이번에 잘못 건드리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은 일본편이어도 한국 국민이 다르다는 걸 잊고 있었다. 한국 국민은 일본 국민처럼 정부가 하는 걸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지 않는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가슴이 시리게 아픈 존재를 이 시점에 와서 다시 짓밟았으니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 정말로 한국사람들에게 ‘반일’ 감정을 심어주고 말았다.
한일관계 개선으로 한국에 큰 이익이 생기는 것처럼 부추긴다. 실은 반대일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정권에서는 매스컴을 동원해서 분위기 띄우고 선거를 위해서 자신들의 치적을 강조하겠지.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것처럼… 그러나, 근래 일본 사회 분위기를 보면 정부에서 관계 개선을 한다고 좋아질 여지가 안 보인다. 아예, 한국은 일본에 기대하지 말고 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
위안부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할머니들이 나이가 드셔서 돌아가시는 걸 지켜드릴 수는 없다. 그러나, 소녀상이 그 자리에 있게 지킬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아베 정권이 자신들 눈 앞에서 치우고 싶은 것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들을 대신한 소녀상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한때 저렇게 떠들다가 말겠지 한다. 소녀상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다.
아직 남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제 본 멋있는 구름사진... 사진이 옆으로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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