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위안부'의 해를 보내며
오늘 동경은 하루 종일 흐리고 기온도 낮은 추운 날씨였다. 2017년의 마지막 날이다. 일본에서는 새해로 바뀌는 밤 12시 가까이에 새해를 맞는다고 '도시코시 소바'를 먹는다. 보통은 NHK의 홍백 노래 대항을 보면서 올해 한 해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날이기도 하다. 며칠 전부터 연말 대청소를 해서 집안을 정리하고 묵은 것을 새로 갈기도 한다. 나는 특별한 연말 대청소를 한 것은 없다.
어제는 네팔 아이가 오전에 놀러 와서 저녁까지 먹고 돌아갔다. 나는 이번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좋은 식재료를 사다가 좋은 음식을 만들어 줬다. 생각해보니 이 아이와도 앞으로 만날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신경을 썼다. 그 아이는 그런 내 생각을 전혀 모른다. 이번에 목표는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말을 안 듣고, 악다구리 해도 듣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집으로 온다는 짧은 문자, 아주 간단한 일본어에 3 군데나 틀렸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데,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어제도 추운 날씨에 옷을 터무니없이 얇게 입고 와서 추워서 덜덜 떤다. 위에 여름에 입는 나일론 짧은 티셔츠에 헐렁한 청재킷을 입었다. "선생님, 제 인생은 왜 이럴까요?" "너 인생까지는 모르겠고 계절과 날씨에 맞춰서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다니라"라고 했다. 이번에 와서도 황당한 말을 늘어놓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긴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있는 곳에서 일도 배우지 못했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만 있다. 내가 말린다고 들을 아이도 아니라,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다. 기대를 1도 하지 않으면 화를 낼 일이 없다. 어제는 좋은 음식을 많이 해주고, 과자와 식품, 다른 생활용품도 챙겼다 주니까,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앞으로 몇 시간이 지나면 2017년이 지나고 2018년이 시작된다. 새해가 되기 전에 쓰고 싶었던 것을 쓰기로 하자. 2017년의 마지막 이슈로 '위안부 문제'가 있다. 거진 연말이 다 돼서 일본과 한국의 '갈등'이 재확인된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아마도 일본 사람들이 연말을 산뜻하게 끝내고 상쾌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기에도 약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좋은 이슈가 없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실상 좋은 것이 없다. 아베 정권의 가장 강력한 지지는 북한의 핵개발 이슈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일본 사람들이 북한에, 같은 민족인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를 갈고 있는 지경이다. 일본 매스컴에서 보면 '위안부 문제'까지 합체가 되어 마치 남북한이 합심해서 일본을 괴롭히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이 '가해자'인데, 일본에서는 북한과 한국의 터무니없는 가해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자'가 된 연출인 것이다.
27일에 위안부 합의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는 걸 포함해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에 대해 일본의 반응은 외무상이 "위안부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한일관계는 관리 불능이 된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관리 불능'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졌다. 근래 한일관계는 아주 나쁘다, 솔직히 한일관계가 원래부터 좋은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쁘게 나쁘게만 흐르다 보니 지난날이 다 좋았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일본사회에 잠재적으로 있던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 '한류'가 정점을 찍고 있던 분위기에서 극적으로 냉각해 '혐오'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후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혐오'가 대부분의 일본인이 가지는 보편적인 성향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 대한 '혐오'를 더한 사건은 2015년 12월 28일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였다.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특별히 강경한 아베 정권이 한국에 특별히 배려해서 이루어진 '성공적인' 것이었다. 한국 정부를 제외하면 한국 쪽에서는 '기습적으로 당한 강제적인 합의'로 한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2015년의 '위안부 합의'로 인해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국민적인 문제가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국민적인 문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만든 것은 일본 정부라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항상 일본 정부와 정치가라는 것을 일본에서는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에 '가해자'였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의 가해를 하고 있는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언제까지나, 절대적으로 우월한 '가해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근래 일본에서 보면 중국과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혐오감'의 표출이 일본의 '애국심'이 될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오락으로 자리를 잡았다. 외무상이 새삼스럽게 "한일관계는 관리 불능"이라고 하지 않아도 '혐오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관리 불능'이라는 말이 일본 국민에게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아낌없이 표출하라는 걸로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날 일본의 주요 매스컴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기사가 거진 비슷한 톤으로 총공격을 가했다. 과연 대단한 아베 정권이구나 싶었다.
일본에서 보면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아직도 '대일본제국'인양 행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지배하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가해자'로서 중국과 한국은 침략을 당해서 지배를 당한 '피해자'이다. 참고로 일본이라는 '가해자'는 중국이나 한국, 그 밖의 나라에 대해서도 '침략'을 했다는 '반성이나 속죄가 없다'. '가해자'의 논리로 '피해자'는 당할 만하니까,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패러다임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바뀌었다. 타국에 대한 '침략'은 나쁜 것이고, 어떠한 '식민지 지배'도 좋은 것은 없다. '가해자'는 '반성과 속죄가 없으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로 인해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가해자'로서 '반성이나 속죄가 없이' 관계를 유지해 왔다. 가끔 일본에서 '반일 감정'을 유발할 행동을 해서 한국과 중국에서 반발하면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식이었다. 일본의 '가해자'로서 '반성과 속죄'는 한국과 중국이나, 침략했던 다른 나라를 위하기보다 자신들을 위해서 철저히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의 현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태도를 확실히 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비롯해서 미국 대통령이 방문을 했을 때도 위안부 할머니를 초대했던 것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 12월 대통령이 중국 방문이 남경 대학살 기념일이었던 것과 마지막 일정으로 중경의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즉, 일본과의 역사문제에서 중국과의 공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2017년을 보내고 2018년을 맞이하는 제야의 종 타종에도 위안부 할머니가 나오신다고 한다. 일본이 어떻든 현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관된 태도를 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어쩌면 2017년이 '위안부 문제'의 새로운 국면으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를 전면에 내세운 해인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정부와도 다른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마지노선은 '위안부 문제'이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역사문제이지만, 미래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한편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 누구보다도 강경한 아베 정권이다. 한일관계는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을 정도로 나쁘지만, 앞으로도 파란이 예상된다.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가장 빨리 해야 할 것은 일본 정부에서 받은 돈, 10억 엔을 돌려주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돈을 받아먹고 딴소리한다고 하고 있다. 10억 엔에 이자를 부쳐서 돌려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절대 금전적인 것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그야말로 '위안부 문제'가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애초에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화해 치유 재단'이 이름과는 정반대의 활동을 했으니 없어져야 한다고 했더니, 오늘 뉴스에 '이사진 전원 사퇴'라고 나왔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일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아무리 한일관계로만 치부하지만, 한일관계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안 된다. 한일관계는 '위안부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일본 쪽에서 보면 좋아질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에 국한 된 문제라면 국제적으로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전쟁범죄의 문제이며,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이기에 그야말로 '세계적인' 운동이 되어 있다는 걸 일본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결코 한국 정부에 의한 주도가 아니다. 세계의 '시민'들, 특히 여성들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적지 않은 일본 여성들의 활약도 있다. 한국만이 아닌 '위안부'가 있었던 나라에서 자신들의 역사에 무심했다는 것에 대한 성찰로서 '위안부 문제'가 주는 영향이 크다. '위안부 문제'에서도 한국과 중국과의 역사문제와 같이 일본에서 부정하면 할수록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키워주고 있는 것이 일본 정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그 걸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 정부가 '관리 불능'한 세계적인 인권운동이라는 것을 하루빨리 인정해서, 일본 정부에서도 한일관계가 아닌 차원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사진은 요전 날 동경타워에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 천정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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