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9 ‘최악’의 위안부 합의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오전에 우체국에 가서 연하장을 샀다. 연하장을 사러 가는 길에 친구네 집에 피클과 과자를 배달했다. 친구가 차를 마시러 오라고 해서 언제가 좋겠냐고 물었더니 언제라도 좋다며 우체국에 같이 간단다. 지금 냄비에 뭘 조리고 있으니까, 먼저 가고 있으라고 나중에 따라간단다. 우체국에 갔다가 날씨가 좋아서 내친걸음에 가까운 농가까지 산책을 갔다. 농가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 있어서 수다를 떨었다. 할머니가 걷지 못해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마당 한 모퉁이를 시멘트로 단장을 했다. 묘지 바로 옆이지만… 일본에서는 자기 집 마당에 조상의 묘를 쓰는 일이 많다. 조상이 돌아가면 신이 되어 자손을 지켜본다고 한다. 그 집에서는 쇼고인 무를 하나 샀다. 조금 더 걸어서 야채를 보러 갔다. 내친 걸음이라 달걀도 사러 갔더니, 달걀이 다 팔려서 없다고 나중에 오란다. 어차피 달걀은 좀 있으니까 살 필요가 없었다. 마당에 바켓쓰에 수선화와 동백꽃이 두 송이 있어서 얻어왔다. 나중에 할머니를 만나면 말하려고 그냥 얻어왔다.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은 가져가라고 둔 거니까. 돌아오는 길에 유자를 한 봉지 샀다. 공원을 걷고 오면서 친구네 우체통에 유자를 세 개 넣고 왔다. 친구와는 아침에 찾아갔을 때 본 걸로 끝이었다. 나중에 우체국에 왔는지도 모르겠고… 집에 와서 휴대폰을 봐도 문자도 없었다.
어제 위안부문제에 관한 신문 보도를 보고 참담했다. 한국 측에서 갑자기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합의를 한 후에야 한국에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한국 정부에서 국민을 향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본다. 반대로 일본에서 일찌감치 여러 기사가 나온 것은 일본 정부에서 정보를 흘린 것이다. 일본에서 매스컴과 정부가 합작으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어젯밤에 인터넷으로 읽은 일본 측 보도는 한마디로 ‘축제 무드’였다. 물론, 일본에서도 합의에 소극적인 찬성을 표명한 정치가도 한 명정도 있었지만, 미미하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에 크게 선심을 써서 그런 합의를 본 것으로 나온다. 원래는 그런 돈을 내거나, 새삼스럽게 사과를 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한국에서 억지를 부리니까 어쩔 수 없이 일본이 수용했다고 한다. 즉, 한국에서는 일본의 처사를 감사히 여기라는 것이다. 아베 씨의 정치적 수완이 놀랍기 짝이 없다. 그런데 '대성공'은 과연 일본에 득만 있는 것일까. 위안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안부가 있는 주변국이 지켜보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과 이겼는지 몰라도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끝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 일 뿐이다.
한국의 현정권에서 지지할 점이 있었다면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것이었다.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는 것,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좋은 효과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대로 일본에 ‘면죄부’를 선물했다. 위안부 문제를 지켜본 사람으로서는 일본 정부보다 더 나쁜 것은 한국 정부였다. 아베 정권이 위안부를 다시 명예형에 처했다면 한국 정부는 그 옆에서 확인사살을 해줬다. 위안부 할머니만이 아니라, 그동안 시민운동을 해왔던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그 것도 아주 싸구려로 넘겨줬다. 한국정부의 태도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알량한 돈을 받으려고 자신들의 수치와 모욕을 드러내면서 싸워온 사람들로 만들고 말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유린당한 몸과 마음만이 아니라, 그동안 싸워온 영혼까지 한국 정부는 팔아 치웠다. 할머니들과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자존심을 한국 정부가 짓밟아 주었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를 상징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위안부였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만이 아닌 국제적인 것이며, 전쟁범죄에 관한 규명되어야 할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거기에 한국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엉터리로 합의를 하고 다시는 거론하지 못하게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합의를 했다는 것은 다른 과거사까지 세트로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아주 종합선물셋트다. 그러니 일본이 축제 분위기지. 그런데 이 종합 선물세트는 먹고 나면 만족감이 아니라, 허무감을 줄 것이다. 일본이 더 고립되고 외로워질 것이다.
과거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문맥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맥과 상관이 없는 과거는 과거라고 불리지 조차 않는다. 위안부 문제는 현재의 문맥에서도 살아 있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행태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근래, 일본에서는 한국 여성들이 해외에서 매춘을 해서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이 GDP 몇%에 달한다는 내용이 자주 보도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그런 일을 하는 한국 여성에 관해서 여러 방면으로 자세히 소개되었다. 한국 여성들이 해외에서 성매매해서 본국에 송금한 금액이 GDP의 몇% 나 된다는 통계는 없을 것이다. 근래의 이런 보도는 한국 여성이 원래 해외에서 성매매나 하는 ‘민족(핏줄)’이라는 것이다. 즉, 위안부나, 그 후손들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80년대 일본 주간지에 보면 성매매하는 한국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성매매를 하거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을 한국 여성 일반이 그렇다는 듯이 일반화해왔다. 이 문맥은 위안부에서 기생관광으로, 다음은 일본 내로 불러들인 성매매하는 여성으로 지금까지 유지시켜오고 있다. 위안부의 계보라고 할까? 변태적인 사고다. 성매매하는 여성은 남성 주간지에서 ‘현대판 위안부’라 불린다.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들을 위한 위안부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싸우는 산업전사를 위한 위안부인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과거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성매매하는 외국 여성들이 한국 여성처럼 특별히 멸시당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일본 남성들이 바라보고 싶은 한국 여성상으로 위안부가 있다면 너무 과격한 표현일까? 어쨌든 현재 일본 사회에 위안부의 문맥은 살아있고 위안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미안하지만, 이번 합의는 이런 ‘현대판 위안부’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에게 까지 ‘면죄부’를 준 셈이 된다. 일본 남성주의의 화신 같은 아베 씨에게 한국 여성의 자존심까지 송두리째 바쳤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한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겠지...
‘세월호’가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인 것처럼, 위안부 문제는 단지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의 물리적인 침몰을 막을 수 없었지만, 진상규명 과정에서 유가족과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물리적인 침몰에서 끝나지 않고 유가족과 국민들까지 정신적으로 영혼까지 ‘침몰’시키고 있다. 2015년 막판에 와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생매장하는 것으로 위안부 할머니와 그 걸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가슴까지 후벼내고 있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모두의 아이였던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 또한 모두의 어머니나 할머니이기 때문에 아프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국 정부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잔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 제기가 한국 정부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멋대로 합의했다고 해서 문제가 종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위안부 소녀상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할머니들의 아픔과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사진은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는, 27일에 고쿠분지에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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