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6 분노와 위안부 문제
오늘 동경은 오랜만에 흐린 날씨다. 그동안 맑고 따뜻한 날이 연속이었다. 겨울에는 맑고 따뜻한 날이 고맙다. 그러나, 너무 그런 날만 계속되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저께는 내가 크리스마스날에 무지에서 산 레깅스를 사겠다고 같이 백화점에 갔다. 작년에 알려줬을 때 사러 갔더니 점원도 잘 모르더라고… 보통은 새해가 되면 약간 세일하는 것이 있어서 나도 필요한 걸 사려고 갔다. 근데, 세일이 아니네. 친구는 레깅스를 하나 사고 나도 아는 분께 드릴 선물을 샀다. 실은, 새로 산 컴퓨터 화면이 거울처럼 반사해서 낮에 작업하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맑은 날씨에는 훨씬 더 반사한다는 걸 알았다. 컴퓨터 화면을 어둡게 했더니 영상이 이상하다. 2일에 산책하면서 봤더니 공원에 매화가 피어 가고 있었다. 몽글몽글 올라와 있다. 아직 가을 단풍과 억새가 남아 있는 데, 동백이 한창 피는 데, 매화라니…이상하다.
어제는 새해가 되어 처음 도서관이 열리는 날이라, 도서관에 갔다. 우선 아사히신문을 봤다. 1면에 한일관계 개선 어쩌고 한 내용이 실렸다. 병 주고 약 주고가 아니네, 병주고 더 밟는구나, 속이 확 뒤집힌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아사히신문에 기대하면 안 되겠다는 걸 느꼈다. 위안부 문제로 그렇게 집중 폭격을 받았으니 몸을 사리겠지,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아사히보다 마이니치라는 말도 있지만,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구나.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를 빌려왔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지금 논문을 쓰는 중이라, 논문을 쓰는게 시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빨리 끝내서 읽으려고 빌려왔다. 전에 빌리려고 했더니 누군가 빌려서 도서관에 없었다. 어제 잠깐 도서관에서 뒤쪽을 봤다. 참고문헌이 방대하다. 마지막에 후기를 읽었는데, 뭔가 기묘하다. 책에는 연필과 빨강 볼펜으로 중요한 곳에 표시했다. 카운터에 그걸 알렸다. 나는 도서관 책을 그렇게 쓰지 않기에 내가 한 것으로 오해받기가 싫다.
다행히도 한국에서는 연말연시에도 위안부문제에 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보면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일본이 공격하고 한국이 당하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지배 이전부터 일본이 침략적이었고 침략당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저항했다. 아무리 목숨걸고 저항해도 군대를 동원한 일본과 조선 정부의 나약함으로 정복당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진출(침략)이 합법화되었을 때, 조선(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해되었다. 침략이 합법화되었다는 것을 빌미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법인 것이, 결코 평화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합법적으로 그들의 야만과 폭력이 용인되고 만 것이다. 침략을 당한 지역 백성은 자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이중의 피해자가 되었다. 나는 그 역사를 조사하고 쓰면서 당시 조선 정부가 무능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래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조선정부가 무능했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당시 조선정부 관료들은 조선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었을까? 조선사람들의 아픔의 그들의 아픔이었을까?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나라와 백성들을 판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정부는 언제든지 일본에 한국을 넘겨줄 용의가 있는 걸로 보인다. 왜냐하면, 유사시/자국민 보호를 위해서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허용했다니까. 도대체 제 정신인가? 한국에는 경찰이 없고 군대가 없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도 자국민 보호가 이유였고,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일본이 자작극으로 침략할 구실을 만든 것이었다. 그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다시 그런 걸 용인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을 수가 없어도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은 침략국에 대해서 전후 배상을 전후배상이라는 명목으로 한 적이 없다. 북한에 대해서는 전후배상을 하지도 않았고 중국에서는 전후배상을 안 받았다. 다른 명목으로 돈을 빌려줬다. 다른 나라에도 실질적으로 전후 배상이면서 명목은 달랐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우위성 때문이었다. 침략당했던 나라는 가난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일본에서 주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일본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반성하지 않아도 됐다.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아시아 해방을 위한 성전/대동아전쟁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그들의 정신이다. 일본 국내 여론에서는 한국과 중국 외에는 과거에 일본이 침략했던 걸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일본에 침략당했던 나라의 민주화가 늦어져 공론화되지 못한 것이고, 여론이 정부에 장악되어 사람들의 피해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반일감정’이 표출되어도 일본에는 보도되지 않음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반일감정’을 가진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라고 믿고 있다. 즉, 말을 쉽게 하면 과거에 침략을 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던, 전쟁으로 상대국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준 일본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걸 문제시하는 중국이나 한국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나, 일본 사람들에게 분노하거나 혐오하지 말자. 명치시대 이후 일본의 역사라는 문맥에서 형성된 것이라, 그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한국과 중국은 일본에게 컴플랙스를 느끼며 반일 한다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우월감을 지탱시켜주는 장치다.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일본이 절대적 우위라는 서열 정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일방적인 것이지만… 그렇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구조하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보고 있다. 그것에 대해 선악을 구별할 힘을 잃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가 택한 길이기도 하다.
분노할 대상은 자신들이며, 자신들이 투표해서 뽑은 정치가이다. 적어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역사를 망각한다는 것은 굴욕의 미래라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살아갈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가장 약하고 힘든 사람들이 짓밟히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행복할까?
분노하는 한국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그러나, 잠시 잠깐 분노해서 끝내면 안 된다. 그리고 분노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차분히 지속적으로 확실히 밀고 나간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시라. 그래야,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들에게 압력을 줘야 한다. 백성들을 무섭게 알고 일을 제대로 하라고 말이다.
사진은 3일 친구네서 일본 떡국을 먹을 때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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