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1 위태롭다
오늘 동경은 화창하게 맑은 날씨다. 기온이 낮지 않고 바람도 있어서 빨래 말리기에 최적인 날씨다. 아침에 일어나서 두꺼운 커튼을 열어서 햇빛을 집안으로 들인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물을 끓이며 요가매트를 펴서 요가를 조금 한다. 다시 요가를 시작해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한다. 창문을 활짝 열고 빨래를 돌리면서 아침을 준비하고 청소할 준비를 한다. 각종 매트를 밖에서 먼지를 털고 널어놓는다. 아침으로 미역국을 끓여서 먹으려고… 어제 서울에서 사주신 한살림 돌미역을 뜯었더니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미역 냄새가 났다. 바닷가에서 말린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멸치국물에 끓였더니 그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있어서 감격했다. 옛날에 먹었던 미역이라는 것이 맛있는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미역냄새를 맡으면서 구멍 난 내 기억이 조금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 맡았던 바닷가냄새, 바닷바람에 마른미역 냄새에는 바닷속의 기억과 바닷가 돌맹이 냄새가 배어 있고, 바닷바람도 담겨있다. 내 기억이 어디서 어떻게 구멍이 났는지, 구멍이 메꿔질 일은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은 닭을 삶았던 국물에 멸치를 넣어 국물을 내서 미역을 넣고 끓였다. 오래 끓여도 미역이 풀어지지 않고 더 맛있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사다 먹는 미역과는 전혀 다르다. 이번에는 한살림의 돌미역에 꽂힌 것 같다.
빨래를 돌리고 목욕탕 청소를 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에 아침을 먹는다. 빨래를 널어놓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다. 겨울에는 유난히 먼지가 많은 것 같다. 정전기 때문에 그런지, 창문을 열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렇다.
빨래를 뒤집어가며 말리면서 걸레질까지 마치고 밖에 널었던 매트를 다시 털고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여기까지 반소매를 입고 했었다. 날씨가 맑아서 기온이 낮지 않을 때 집안에서 몸을 움직이면 춥지 않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으면 춥다.
지난주 수요일에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첫 주에 푸른색 니트원피스를 입었다. 학생들에게 새해가 밝았으니, ‘꿈과 모험 이야기’라면서 ‘바다로 간 야크 1과 2’를 들려줬다. 평소 강의보다 100배는 집중해서 듣는다. 학생들이 너무 깊게 빠져들어서 당황할 정도였다. 푸른색 원피스는 내가 할 이야기에 맞춘 색상이기도 하다. 평소 강의를 조금 집중해서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얄밉다… 학생들은 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에 재미있기도 하다. 짧아진 머리를 ‘변태 방지용’ 헤어스타일이라고 했더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하는 어정쩡한 얼굴을 한다. 사실, 그렇긴 하다.
금요일에는 친한 사람들이 있는 날이다. 미국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깡통을 가져다줬다. 그 속에는 긴자 파라의 쵸코렛도 두 상자 들어 있었다. 오늘 간식으로 먹었다. 한국에 같이 갔던 친구도 가나자와에서 보내온 명절에 먹는 과자라면서 홍백의 매화꽃을 본 딴 모나카를 줬다. 점심시간에는 수다에 정신이 없다. 각자가 명절을 어떻게 보냈냐는 걸 들으면서 식사에 수다와 다음 수업 준비를 한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S선생이 하얗게 질려서 허둥지둥 들어왔다. 그는 오후부터 수업이 있다. 신년인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허둥댄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도 수업이 금방 시작되니까, 그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나는 좀 가깝게 말을 하는 편이라, 왜 저럴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는다.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마음은 수업을 향해 있었다. 3교시가 끝나서 들어왔더니,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이 새해가 되어 첫 강의를 나온 날이었단다. 그런데, 학교에 가까운 역과 그 전역 사이에서 투신자살 사고가 나서 전철이 늦어졌다고, 학생들이 자취하는 지역이기도 해서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는 내용의 말을 제대로 마치질 못한다. 나는 “에휴, 새해 일을 하는 첫날부터…” 달리 할 말이 없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즐겨서 공유하기 싫은 화제라서 남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중대한 비밀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대학을 졸업해서 IT회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대학원으로 돌아와서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IT회사는 우울증이 많기로 소문이 난 업계다. 부인은 만화를 그렸었는 데,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만두고 지금은 보육원에서 일을 한다고 했던가… 평소에는 도시락을 자기가 만들어서 가져온다. 집에서도 자기가 요리를 한단다. 전에 수세미를 줬더니 아주 기뻐했다. 정의감이 있고 섬세한 타입이다.
4교시가 끝나서 나는 좀 일찍 마쳐서 학기말 리포트를 챙겨 들고 나섰다. 내가 나올 때, 그는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먼저 간다는 인사를 하고 만원이 된 역에 가는 버스를 탔다. 급행전철을 타고 집에 가까운 역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향했다. 시간은 6시 가까웠다. 계단을 내려와서 개찰구를 향할 때, 허둥대는 긴급방송을 한다. 낮에 투신자살이 있었던 곳에서 투신자살이 있어서 열차가 멈췄다는 방송이었다. 같은 전철을 타고 도착했으면서도 낮에 있었던 사고를 방송하는 줄 알았다. 이상해서 전광판 표시를 봤더니 오후 5시 27분에 다시 같은 곳에서 투신자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벽돌이 떨어져 머리에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서둘러 시간을 계산했다. S선생이 전철을 탔거나 사고현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고, 큰일 났다.
S선생이 다시 충격을 받겠구나. 아까도 하얗게 질려서 인사도 못하고 허둥지둥하던 모습, 비밀을 말하듯 사고가 있었다는 말도 끝까지 못 했는 데… 충격으로 상처를 입겠구나. 부서질 것 같이 위태롭게 보였는 데, 결정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나도 금요일에 돌아와서 뭘 했는지 기억이 없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술이라도 마셨을 것이다. 동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위태롭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사고현장을 스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구조적인 폭력하에 사람들이 ‘자폭’하듯 죽어가고,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상처’를 입는다.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상처’를 각기 껴안고 고립되어 위태롭게 허덕이고 있다. 그런 일상을 살면서 ‘우울증’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S선생이 ‘우울증’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울한 기분을 털어내는 데는, 청소와 빨래가 좋다. 이왕이면 이불도 널어서 말리고 집안 먼지와 같이 우울한 기분도 탈탈 털어내는 것이다. 거기에 맛있는 걸 먹는다. 허기진 마음을 채울 맛있는 걸 먹으면 조금 회복이 된다.
동백꽃 두 송이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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