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4 새순
오늘도 동경 날씨는 적당히 흐리면서 추운 겨울 날씨였다.
창밖에서는 외벽공사를 하느라고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머리 위에서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난리가 난리가 아니다. 어제까지는 앞쪽에만 철장이 쳐지고 그물이 쳐져 있었는데, 오늘 보니 뒤쪽에도 철장이 쳐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일이면 집이 앞뒤로 완전히 철장에 둘러싸여 그물이 쳐질 신세다. 나는 영락없이 포획된 청색 코끼리이다. 이번 주는 학교가 입학시험 때문에 도서관도 문을 여는 시간이 짧아서 도망 갈데가 없다. 어떻게 이번 주를 지내고 다음주는 도서관으로 도망을 가야지.
지금 이 상황은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다. 천천히 인간을 가두는 것처럼, 철장을 세우고 그물을 친다. 서서히 우선 앞쪽을 하고 뒤쪽을 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본다면 말이다. 나처럼 햇빛을 좋아하고, 시도 때도 없이 환기하는 시야가 가려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재미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 소음까지 곁들이면 완전히 ‘고문’이 된다. 처음에는 답답해서 화를 내고 저항하다가, 다음은 우울하게 적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롭지 못한 낮생활에서 야행성으로 행동하는 시간을 바꾸리라. 물론, 나 청색 코끼리는 ‘탈주’ 한다. 어디까지나 여기는 동물원이 아니기에… 자유롭게 ‘탈주’ 해서 도서관이라는 놀이터로 하이킹도 간다.
오늘도 집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자유로워지는 것은 공사하는 사람들이 퇴근한 5시 이후가 된다. 내 집이라도 5시가 넘어야 비로소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5시가 되어야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 뜻하지 않게 야행성이 되어간다. 그러나 겨울날 오후 5시면 거의 하루가 끝난 시간이다. 정말로 밤이 되는 것이다.
아침에는 그냥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난다. 아침을 먹고 느릿느릿 뭔가 할 것을 진행한다. 아무래도 밤에 자는 시간이 늦어지면 아침에 일어나도 상쾌하지 않다. 오늘 오전은 새로 뜨개질 할 것을 정했다. 어제는 남색으로 뭔가를 만들 예정으로 남색과 파란색실을 모아서 이것저것 생각을 했다. 가끔 꿈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보이는터라, 꿈에 뭔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어젯밤 꿈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안보였다. 그래서 남색실과 파란색실을 남색깡통에 집어놨다. 오늘은 전혀 다른 보라색 모헤어실로 뜨개질을 시작했다. 보라색을 밑단으로 폭넓게 잡고 위에는 약간 보라색이 도는 펄색으로 할지 아니면 베지색으로 할지 망설이고 있다. 우선은 보라색으로 밑단을 짜기 시작했다. 이 게 오늘 시작한 일이다.
오전에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잘지내느냐고, 토요일에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즉, 친구가 점심을 초대했다. 토요일 한시에 친구네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발렌타이 데이다. 친구가 그래서 점심 초대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친구 생일이 이즈음인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질 못했다. 친구 생일도 곁들여서 점심을 같이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이 시기에 일본에서 지낸 일이 없다. 기본적으로 여름방학과 봄방학에는 일본에 없다. 호주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동경에 있으니 영 이상하다. 아주 낯설다고 할까,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다.
내일은 아주 추울 모양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최고기온이 5도이다. 눈도 내린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아주 추운 날씨이다. 아마 오늘 밤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되겠지.
그러나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봄이 오는 법이다. 지금 눈앞 추위에, 코앞 외벽공사에 가려져 하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지만, 봄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새순을 찍었다. 새순도 나무마다 다른 법, 새순들이 조각처럼 개성을 주장한다. 자연이 꼭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