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8 네팔 아이의 갈등
오늘 동경은 하루종일 비가 오면서 추운 날씨다. 최고기온이 4도라는 데, 추위가 유리창 문사이로 스멀스멀 안개처럼 밀려 들어온다. 어제처럼 얌전하고 차분한 추위가 아닌 잡아먹을 것 같이 악랄하게 공격적인 추위로 바뀌었다. 어제 왔던 네팔아이가 오후가 되서 돌아갔다. 그 아이로 인해서 한바탕 수선을 떨었다.
어제는 네팔아이가 온다고 해서 거기에 맞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5시라니까, 역에서 만나서 담요를 사고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저녁을 해먹으면 된다. 그 전에 쌀을 씻어서 불리고 가야지 맛있는 밥이 되겠지. 그 시간에 맞춰서 하루가 진행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5시에 만나서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려면 그 전에 나가서 마트를 둘러보고 살 만한 것이 뭔지 정해야 한다. 그래서 4시반쯤에 나갔다. 그 아이에게는 휴대폰으로 문자를 하라고 알려놓고 비가 와서 여분의 우산까지 챙겨들고 나갔다. 마트를 둘러보니 살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 만에 나간 것이라, 작은 감을 열 개 사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가 있어서 다섯봉지를 샀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도 샀다. 디저트로 먹을 요거트와 그 아이가 가져갈 것도 샀다. 튀긴 두부세트도 사고 좀 사다보니 작은 쇼핑백 두 개가 가득 찼다. 5시에 만나서 담요를 사고 백화점에 들러서 빨리 집에 갈 요량으로 있었다. 5시에 만날 약속이 6시로 연기되었다. 다시 한 번 마트와 화장품가게를 돌았지만, 비가 오고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고 볼 것도, 살 것도 없었다. 서점에서 책을 보면서 기다리려고 서점에 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전을 위해 문을 닫았단다. 뭔가 조짐이 심상치않다. 사건이 꼬이는 것 같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기다릴 곳이 없다. 마트가 있는 곳에 도너츠가게도 있지만, 난방 바람이 눈에 들어와 아주 피곤하다. 그 시간이 6시 20분 전이었다. 대충 가까이에 온 줄 알았다. 문자를 보냈더니 아직 동경역에 있단다. 아직 한참 걸린다는 것이다. 그냥 기다리다가는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담요를 사러 가기로 했다.
가득찬 쇼핑백을 두 개 들고, 우산을 쓰고 좀 먼 곳까지 걸어갔다. 내가 왜 담요를 안샀냐면 무겁고 부피가 있어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날, 먼저 쇼핑을 해서 무거워진 가방에, 비가 와서 우산까지 들어야 하는 날에 담요를 사러 가다니, 아무래도 내가 좀, 아니 많이 이상하다. 담요를 사서 드니, 도저히 우산을 쓸 수가 없다. 비를 맞으면서 아주 불쌍한 몰골이 되어 백화점 식품매장에 갔다. 거기에는 수입식품을 싸게 파는 곳이 있다. 운이 좋으면 괜찮은 물건을 건진다. 그런데, 그 가게에도 썰물에 물건들이 왕창 휩쓸려 나갔는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물건들이 없다. 사실 물건이 있어서 사도 들 수가 없는 처지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나는 이미 화가 잔뜩 나있다.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아이에게, 미련스러운 행동을 하는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 백화점에서 다시 역까지 걸어갔다. 담요를 사고 백화점을 돌아도 시간은 남아돈다. 역에 왔더니, 우리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다는 문자가 왔다. 특급을 탔느냐고 했더니 특급을 탔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멀어도 내가 집에서 나온 시간에 출발을 했어도 벌써 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역 개찰구 앞에 서서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하필이면 왜 러쉬아워에 맞춰서 이동을 하는지, 시간도 걸리고 요금도 비싼 루트를 쓰는지, 나와 약속을 개똥으로 아는지.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싫어한다. 지금까지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별별 생각을 다했다.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혼자서 집에 가려니 짐이 무거워서 그 것도 안된다. 꼼짝없이 기다렸다. 그 아이가 나타난 것은 7시 5분 전이었다. 그 것도 미안하다는 얼굴도 아니다.
내가 말을 했다. 오늘 내가 화가 나서 너와 싸울 것 같으니까, 저녁밥을 먹으면 집에 가주라. 아니란다, 싸우긴 왜 싸우냐고. 나도 싸우는 거, 싫어해, 피곤하고. 그리고 내가 너와 싸워 가면서 유지하고 싶은 관계도 아니야. 뭘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눈치다. 오랜만에 만났는 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범인같이 험상궂은 인상이 되어 나타났다. 지금 상태가 엉망진창이라는 걸 몰골로 표현해 준다. 추운 날에 옷도 춥게 입었으니, 더 화가 난다.
우선, 집에 왔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어 줄 예정이었는 데, 닭고기가 하나같이 다 뼈를 발라낸 것만 판다. 뼈가 있어야 맛이 우러난다. 그래서 닭고기를 안 샀다. 무거운 짐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두 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보니, 화가 나서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달아난지 오래다.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는지 뼈저리게 알았으니까. 우선은 말을 해 뒀다. 나는 참다가 정말로 화가 나면 두 번 다시 안보는 사람이니까, 그런 줄 알라고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
집에 도착하니, 집이 포근하고 따뜻하다고 설래발을 친다. 발에 양말을 안 신었다. 추운 날 양말도 안신었다고 했더니, 양말이 냄새가 나서 벗었단다. 양말을 벗어도 발냄새가 심하게 나니까, 발을 씻어. 발을 씻어도 다른 냄새가 난다. 너 오늘 샤워 안했니? 오늘 씻었어요. 그러면 이 게 뭔 냄새야, 이상한 아저씨 냄새나. 옷에서 나는 냄새 같아요. 세탁기가 고장나서 요새 옷을 못 빨아요. 너는 그렇게 깔끔을 떨고, 있는 멋은 다부린다면서 이상한 아저씨 냄새를 풍기면 안되지. 어쨌든 청결이 가장 중요해. 여자애들 도망가, 알았어.
간단히 반찬을 하고 밥을 해서 먹였다. 밥을 아주 좋아한다. 밥을 넉넉히 6인분 했는 데, 다 먹어 치웠다. 밥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이다. 조용히 오늘은 그냥 집에 가라고, 자고 가면 나중에 이불도 말려야 하고 빨래하는 것이 귀찮다고 했다. 손님이 온다면 그 날에 맞춰서 이불도 말리고 베게 커버도 갈고 귀찮은 것이라고, 그리고 약속을 했으면 거기에 맞춰서 할 것을 준비해 놓는다고 했다. 할 말이 많단다.
얼굴을 보아하니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라고, 현재 상태를 알려준다고 했다. 깜짝 놀란다.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보면 알지. 술도 마시지 않았는 데, 횡설수설한다. 자기가 간 대학이 형편없다고, 주변 학생들도 멍청하다나… 지금까지 대학에 다녔지만, 공부했다고도 못하고 장래를 생각하니 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단다. 그러면 너는 거기서 뭘 했느냐고, 자신이 똑똑하다면 말로 하지 말고 결과로 증명하라고 했다. 너, 그 대학에 들어 갔을 때, 일등으로 졸업한다고 했거든. 그 걸 지켜. 다른 학생들이 멍청하다니 쉽겠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똑 같은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더라. 나는 이런 대학에 다닐 사람이 아니야, 더 좋은 대학에 다닐 사람이란 말야, 그러면서 4년을 지내고, 6년 걸려서 졸업하더라고. 나는 같은 기간에 석사를 마쳤지.
갑자기, 장래가 불안해진 모양이다. 어쨌든 자신의 노력 밖에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어. 그러니까, 자신을 믿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그렇지만,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되는 사회에서 노력을 할 것인지, 아닌지가 아주 중요하지. 하루빨리 일본에서 나가. 피부색과 인종이 어떻든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서 노력해서 인정받고 살아가라고. 너의 앞날을 보장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오직 너의 손에 달린 거야.
이번에는 말을 열심히 들으면서 생각한다. 그리고는 차차 얼굴이 맑아진다. 내가 하는 말에서 자신이 찾던 답이 나왔단다. 문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혼란스러움이 정리가 된 모양이다. 그리고는 좋은 기분이 되어서 돌아갔다. 페북에 몇 달 동안 혼란스러웠는 데, 가야 할 길이 보였다는 글이 올라왔다.
녹색 양말을 찾아서 줬다. 물론, 남자용 새양말이다. 양말색이 촌스러워서 여자들이 웃지 않을까요? 웃겨, 산뜻하게 멋있는 색이야. 너 냄새나는 발과 옷이 더 여자들 도망가게 하는 거야.
그런데, 내가 산 담요는 같은 담요를 겨울이 오기 전에 사줬단다. 기가 막히다. 내가 완전 맛이 간 모양이다. 괜히 수선을 떨었다.
오늘 사진은 봄이 온다는 걸 알려주는 매화를 쓰기로 했다. 사진이라도 산뜻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