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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한국의 #MeToo!

2018/02/19 한국의 #MeToo!

 

오늘 동경은 맑게 개인 날씨로 낮에는 따뜻했다가 저녁이 되면서 다시 추워졌다. 오늘 아침은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서 집안 창문을 열어 놓고 다시 이불속에 들어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잠을 깼더니 낮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감자롤 봉지 깎아서 넣고 스프를 만들어서 넉넉히 먹었다.

 

 

요새 한국 뉴스 중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에 #MeToo 현상이 있다. 특히 요 며칠 동안에 연달아 폭로되고 있는 연출가 이윤택 씨가 주위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범한 '성폭력'에 대한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연달아 보도되는 새로운 기사를 보면서 이런 행태는 어디나, 나라를 불문하고 참 비슷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사회의 성차별 의식이 고스란히 #MeToo에 드러난다. 성차별을 전제로 한 불평등과 지배, 권력구조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에서는 세계적인 움직임이 된 #MeToo를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만큼 성차별 의식이 드러나지 않게 강해서 그런 행위를 한 여성에게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억압적으로 사회적 압력이 크다는 의미다. 결코 #MeToo 대상이 되는 일이 적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못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과거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든 일이다. 고발로 인해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도 다른 '2차 피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다. 본인에게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한국 보다 더 알려져 있다.

 

오늘 이윤택 씨에 대한 기사를 읽는 걸로 그쳤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이윤택 씨의 '성추행 사과 기자회견'을 봤다. 미안하지만, 전혀 '피해자'에 대해 '사과'하는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연극을 연출하던 감독으로 '거장'이라던 인물이 자신이 행한 '악행'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를 협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기자회견이었다. 법적책임을 지겠다는 말로 자신의 무고함을 내세우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했는지 모르겠단다. 뻔뻔스럽게도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당당한 태도였다. 그 것도 죄질이 비교적 가볍다고 여겨지는 '성폭력'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인정하면서 죄질이 무거운 '성폭행'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연극을 연출했다는데, 정말로 이 사건이 어떻게 되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인가?

 

'성희롱' '성추행'은 강제로 범했으면서 '성폭행'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은 이런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발뺌이다. 완전히 '교과서적'인 발언이다. 아마, 다음 단계는 젊은 여성이 자신을 '유혹'했다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꽃뱀'이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성희롱' '성추행'이 강제로 행해졌다면 '성폭행'도 강제였을 것이다. '성폭행'을 인정하면 죄질이 무거워진다는 것과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고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기고 '성폭행'을 부인한 것이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고발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성폭행'의 경우는 '피해자'가 수치심과 '2차 피해' 등을 이유로 고발에 나서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해자'들은 그 사실을 쉽게 부정한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상처'가 가볍거다거나 수치심이 적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 '피해자'인양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에 의한 심신의 '상처'는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상처를 입는다. 많은 경우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시간이 경과하면서 정신적인 병으로 변화해 간다. '상처'가 더 깊어 간다는 것이다.'가해자'에게는 일시적인 범행일지 몰라도 '피해자' 여성은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 가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MeToo를 하는 여성들은 그야말로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다.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어떤 '불이익'이 미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eToo 정말로 '인생을 건' '고발'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그리고, '성범죄'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사실조차 알릴 수 없다는 현실에 분노한다. '성범죄자'는 그런 걸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윤택 씨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자신의 일로 인해 "연극계가 매도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오래된 관습'이라는 연극계라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MeToo에 나선 연극계 여성들은 자신들이 속한 연극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수치심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런 용감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연극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자신들이 인생을 걸고 몸을 던져 고발에 나선 것이 아닐까? 그에 비해 이윤택 씨의 기자회견은 '피해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담았던 연극계를 변호하려는 것 같았다. 연극을 연출했던 사람이라면 '사과'가 아닌 '사죄'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대국민이 아닌, '피해자'를 향해 '사죄'하는 것이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연극계를 추악하게 만든 것도 당신이요!

 

어제 신문기사에는 문학계의 '성폭력' '거장'으로 드러난 고은 씨가 이사를 한다고 나왔다. 기사에서는 '수원시에 누가 되지 않게'이지,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서가 아니라고 밝혔다.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다. '거장'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과 동의어는 아닐텐데...... 이런 '파렴치한'에 의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을까? '성폭력' '영혼의 살인'이라고 불리운다. 그들의 행위는 수많은 '살인'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행인 것은 두 '파렴치한'의 작품에 감동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MeToo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블로그를 올린다. 많은 여성들이 힘과 용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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