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7 네팔 대지진
오늘 동경은 화창하게 맑아서 햇살이 강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던 묵은 빵으로 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아침으로 먹고 도서관을 향했다. 햇살이 너무 강해서 도대체 4월이라고 볼 수가 없다. 도서관에 가는 것은 도보로 40분 걸린다. 모자를 꺼내서 쓰고 도서관에 갈 때 제복처럼 입던 청바지는 세탁기에 집어넣고 카키색 쫄바지를 꺼내서 입었다.
오늘 도서관에서는 좋은 책이 많은 날이었다. 새 책에서 열 권쯤 골라서 찬찬히 대충 읽고 세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 가면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읽은 책 중에 한 권은 위안부문제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한 권은 아사히신문의 위안부문제에 관해 오보를 정정 보도한 후에 패싱을 다룬 것이었다. 처음에 읽은 것은 인도에서 자수와 수공예에 관한 필드웍을 쓴 책이었다.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다. 아사히신문에 관한 책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던 총체적인 ‘광란 사건’이라, 대충 내가 생각하는 내용이라 다행이었다. 마지막은 위안부 문제와 공창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아주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현실이 너무 암담해서 괴롭고 아팠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다기보다 문제의 심각함이 나를 덮치고 뒤흔들어서 피곤해진다.
네팔에 대지진이 났다는 걸 안 것은 그저께였다. 아주 짧은 뉴스로 자세한 것은 전혀 몰랐다. 네팔아이가 페북에 짧게 “누군가 거기에 있는 사람은 응답을 해달라”는 걸 읽어도 무슨 말인가 했다. 한국신문을 검색해서 읽으니 기사가 더 났다. 큰일이 난 것이다. 네팔아이가 얼마나 놀라고 불안해할지, 가슴이 아파할지…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위로의 말을 한다는 말인가. 외국에서 살다보면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자기나라에 재난이 닥치면 참 힘들다. 가족들의 안부도 확인하기가 어렵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내가 뭘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는 날씨가 좋아서 아침에 일어나자 바로 겨울옷을 손빨래했다. 코트 두 장을 비롯해서 여섯 장이나 손빨래해서 널었다. 그리고 청소를 하고 다른 빨래도 해서 널었다. 청소는 간단히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청소하는 날이라 억지로 걸레질까지 풀세트로 끝냈다. 역시 걸레질을 하고 난 다음은 기분이 좋다. 실은 네팔 대지진 뉴스에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뒤져서 읽으면서 아프게 울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그 들은 무사한 것일까. 내가 갔던 장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을 끼고 아슬아슬하게 난 도로, 평상시에도 산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는 데, 지진으로 얼마나 파괴되었을까. 도로가 폐쇄되면 구원 활동이나, 보급품도 전달이 늦어져 피해가 더 확대될 텐데… 하필이면 가난한 나라에 지진도 크게 났는지… 시골은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도보로 밖에 못 가는 곳도 많을 텐데. 실질적인 지진피해보다 뒷수습이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피해는 확산되어 간다. 뒷수습이 얼마나 조속하게 할 수 있는지가 지진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다. 피해는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정신적인 것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피해가 연동되기도 한다.
네팔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족들은 무사하다고, 직접 통화는 못했지만 전해 들었단다. 한국에서 사촌이 일하고 있어서 거기서 들은 모양이다. 자기네 고향에도 영향이 있을 텐데, 지방이라서 자세한 소식이 전혀 없다고. 그러나, 집들이 다 부서졌을 거란다. 전날에는 걱정되고 불안해서 잠도 못 잤다고 한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그런 거야. 근데, 넌 어떻게 할 거니?? 너네 가족이 무사하면 된 거야?? 아니면 네팔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면 빨리 생각해서 결정해.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건지.. 일어난 일은 어쩔 수가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중요해. 동영상을 보면서 슬퍼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 동영상이나 뉴스를 보니까, 눈물만 나고 점점 쳐지는 것 같아. 이럴 때는 밥 잘 먹고 기운을 차려서 어쨌든 움직여. 알았어요. 오늘 생각해서 내일 학교 가서 친구들이랑 말을 해 보려고요. 그래, 너 주위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잖아. 이번 일이 나서 주위사람들이 모두 저를 걱정해줬어요. 당연하지. 주위사람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 많은 나라에서 네팔을 도울 거야, 그렇지만 너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가 중요해. 지금까지도 네팔은 많은 원조를 받아왔지만, 여전히 가난했잖아. 네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장래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생각하고 행동해야지. 아주 중요한 시기야. 올해 장학금을 받았으니까, 장학금 받은 만큼 시간을 벌었으니까, 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 빨리 생각해서 결정해. 어디까지나 너의 결정이야. 가족이 무사하니까 괜찮다면 그 걸로 좋아. 사람은 힘들 때 성장한다고 하더라. 이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네팔아이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한국에는 네팔에서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하고 있을까. 네팔을 사랑하는 한국사람들도 많을 텐데, 한국정부에서도 조속히 네팔에 구조대를 파견해서 네팔 사람들을 구해주고 필요한 물품을 보급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날씨가 따뜻해져서…그리고 다행히 지방에서는 자급자족이라, 식량을 집에 비축해두니까, 어느 정도는 견디겠지. 카투만두는 도시라서 구조가 빨리 도착하겠지만, 자급자족 시스템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피해가 더 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도 네팔 대지진 뉴스를 좋아서 보면서 울고불고할 시간이 없다. 내가 운다고 네팔에 도움이 될 것도 아니다. 나도 정신차려서 씩씩하게 할 일을 해야 한다. 결국,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나갔고, 오랜만에 운동삼아서 산책을 했다.
요새, 모란꽃이 활짝 피었다. 대지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네팔 사람들에게 보내는 '화사한' 꽃이다. 힘드니까, 꽃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화사한 기분이 되었으면 한다. 그저 마음을 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