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03 또 이즈미를 만났다.
오늘은 신주쿠에서 대학원 후배 이즈미를 만났다.
11시에 한국광장이라는 슈퍼에서 만나서 11시 반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으로 냉면을 먹으러 시골집이라는 데에 갔더니, 오늘은 점심때 영업을 하지 않았다. 시골집은 이즈미가 석사 때 필드웍을 하면서 일을 했던 가게 중 하나이다. 필드웍은 현장에서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방식을 택해서 그 친구는 필드웍 때 2년 간 하루 세, 네 시간 밖에 잠을 안 잤다고 한다. 잠을 그렇게 밖에 자지 않아도 뛸 수 있을 만큼 필드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석사를 마치고 일을 하면서도 가끔 필드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논문을 쓰지 않으면서도 필드의 변화를 체크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평생 자기 필드를 지켜보며 살아갈 것이다. 필드웍을 한 것 중 논문에 쓰는 건 아주 일부분이다. 필드웍은 자신의 인생이 되어가는 건지 자신의 인생의 필드웍이 돼가는 건지 구분이 잘 안되게 된다. 그야말로 더불어 살아간다고 할까,,,
결국 점심은 항상 가는 순대집으로 갔다.
원래 순대집은 월요일 점심은 쉬는 데 오늘은 골덴위크라서 문을 열었단다. 이 집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어 나는 신오쿠보에 가면 순대집에 만 간다. 순대집에서 닭도리탕과 순대를 시켜서 오늘도 배가 너무 불러서 위가 늘어나서 아프다면서, 둘이 숨쉬는 것조차 괴로워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나서 신오쿠보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광지 수준으로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 옷차림을 보니 동경 사람들이 아니다. 가끔은 아주 세련된 동경 언니도 있다. 지진이 일어난 후 아직까지도 동경이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 이즈미도 자기가 술값을 아껴서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와서 기부를 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 나름 계절을 즐길 권한이 있다. 그러나 자숙 무드로 인해서 일본 사람들이 미치는 벚꽃놀이도 못하고 뭔가 즐거운 일을 즐기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로 코르덴 위크 중 열리는 많은 행사들이 안 열린다.
답답하다, 숨 막힌다. 일본사람들이 신오쿠보에 와서 조금 활개를 펴고, 답답함을 해소하는것 같다. 한국가게나 한국사람들은 덜 숨통 막히게 하니까...
그 다음은 신주쿠교엔이라는 공원에 가서 좀 걷고 벤치에 앉아서 말도 했다. 아직 꽃이 남아있는 야에자쿠라 밑 베치에 앉아서 주스를 마시고 초코파이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공원이 문닫을 시간이라고 해서 쫓기는 듯 나왔다.
다시 한국광장에 가서(구두쇠/검약가) 이즈미가 쇼핑을 했다. 김치도 5킬로짜리와 다른 것들을 사서 8천5백 엔 어치나 사서 택배로 부쳤다. 세 살짜리 아들이 총각김치를 좋아한단다.
요즘 한국아이들도 그렇게 안 먹어, 걔는 커도 김치없이 못 사는 사람이 되겠다.
그건 일종의 세뇌교육이 아닐까, 그 아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선배는 김치 안사요?
응, 집에서 안 먹어..
저는 요, 갑자기 김치가 막 먹고 싶어서 못 견딜 때가 있어요. 선배는 안 그래요??
너는 중독증상이 심한 거 같아, 한국사람도 안 그럴 걸... 난 밖에서 기회가 있을 때 먹는 걸로 만족해
마지막으로 맥도널드에 가서 소프트크림과 커피를 마시고 헤어진 게 밤 여덟 시다.
개찰구 앞에서 헤어지면서
선배 나도 자기 시간을 만들면서 그동안 일을 하면서 경험해온 걸 논문으로 써가려고요. 석사 때보다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하지, 너 열심히 살아오고, 열심히 해 왔어. 논문은 인간이 쓰는 거야, 기계가 쓰는 게 아냐, 어떤 사람이 어떤 평가를 할지는 몰라, 그러나 나는 네가 좋은 논문을 쓸 거라고 믿어. 나도 지금 쓰는 논문이 십 년 전에 쓰는 논문보다 좋은 논문을 쓸 거야. 나도 열심히 살아왔어 그 게 논문에 나오지 않는다면 왜 그래야 하는데, 우리는 논문을 머리로만 쓰는 게 아니고 몸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쓰는 거잖아.
연구를 하는 사람 중에는 아주 가끔 이렇게 바보스럽게 우직한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