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2 불쾌한 날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리면서 기온이 높은 습기가 많은 날씨였다. 불쾌지수가 높은 장마철 날씨였다는 것이다. 아침에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서 일 교시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건강진단을 받으러 갔다. 건강진단을 받으러 가는 시간만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건강진단은 1시에 끝나서 시간을 맞추느라고 헐레벌떡 같다. 건강진단이 거의 끝날 무렵에 가서 빨리 끝났다. 건강진단을 받느라고 어젯밤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됐다. 아침에 90분 강의를 하고 건강진단을 받고 나니 좀 피곤했다. 보통 때 끼니를 거를 수도 있는데, 강제로 끼니를 굶어야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친했던 후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 가까이 된다. 지난주에 아버지 유작 작품전을 한다고 오프닝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엽서를 받았다. 엽서를 받은 것이 오프닝 하는 시간이어서 갈 수가 없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강의가 있어서 주말에 시간이 없었다. 오늘 건강진단을 마치고 가기로 했다. 날씨가 비바람이 불어서 불안했지만, 가기로 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면 주말이 없어지니까, 시간을 절약하고 싶은 것이다.
학교에서 긴자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빠른 열차를 타도 편도 1시간 반이나 걸렸다. 긴자 욘초메 미쓰코시 앞에 나갔다가 인도에서 자전거에 치였다. 자전거를 못 타는 뚱뚱한 중국인 여성이 비틀거리면서 뒤에서 치고 지나갔다. 정말로 기분이 확 상했다. 긴자 욘초메 미쓰코시 앞은 아주 번잡한 곳이다. 거기를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니… 불안한 예감이 적중했다. 엽서에 그려진 약도가 너무 대충이라, 찾기가 어렵다. 미쓰코시에 돌아가서 주소를 대고 물었더니, 아주 간략하게 가르쳐준다. 길치인 나에게는 감이 안 잡히게 가르쳐준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찾아갈 수 있게 가르쳐 줘야지. 일본에서 하는 일성 머리가 이렇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일가견이 있다.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길을 가르쳐줘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 난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리 먼 곳은 아니라, 어쨌든 걸어가 봤다. 찾지 못하겠다. 파출소에 갔더니 사람이 없다. 몇 번이나 불러도 안 나온다. 그냥 나오려다 보니 순경은 파출소 밖에 서서 보고 있었다. 화가 난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으니까, 길을 물었다. 이번에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한다. 영어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오케이? 뭐야, 진짜 짜증이 났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다. 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서 갤러리에 들어가서 봤다. 오래전에 그린 것인데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주 실험적인 작품들이었다. 작은 갤러리에도 남자만 둘이 있어서 나름 긴장하고 보고 나왔다. 날씨는 불쾌지수가 높은 고온다습한 날이었다. 이런 날 도심을 다니는 것은 고역이다.
긴자에서 전철을 타서 신주쿠 산초메로 왔다. 기왕에 나온 김에 쇼핑을 좀 하려고 신주쿠에 들렀다. 유니클로에서 요즘 입을 바지를 검정과 감색으로 두 장 사고, 요새 스타일의 흰 셔츠에 7부 소매 감색 마 쟈켓을 샀다. 쇼핑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리고 오카다야에 들렀다. 오랜만에 여름실을 천천히 보고 DMC 수실을 세 개 샀다. 지난번에 갔을 때 불쾌한 경험이 있어서 발걸음이 뜸했었다. 오늘은 점원에게 물었더니 잘 알려준다, 여름 실을 세일하는데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나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실이 비싸서가 아니라, 살 기분이 나지 않는다. 사고 싶은 실이 있었지만, 회원에 한해 반액으로 한다고 쓰여 있어서 살 기분이 나지 않았다.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일 년에 500엔이 든다. 이전에 회원에 가입한 적이 있었지만, 아주 귀찮은 방식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회원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회원이 되면 5%를 싸게 해 준다. 그래도 회원 가입하는 방식이 너무 번잡스럽고 귀찮다. 일본에서는 시스템이 인간의 인내력을 테스트하게 만든다. 분명히 서비스 개념인데,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곁들여진다.
신주쿠역에 와서 항상 이용하는 게이오센을 타려고 개찰구를 들어갔다. 개찰구를 두 번 통과해야 하는데, 두 번째 개찰구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방금 자살사고가 발생했다고, 언제 복구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주, 불쾌한 하루의 결정판이었다. 옆에 있는 오다큐센으로 가서 붐비는 전철에 시간도 걸리고 요금도 비싸게 내면서 피곤에 절어서 돌아왔다. 불쾌하고 피곤한 하루의 완성이다. 요새 동경에서 보면 어쩌다가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은 아주 나쁘고 불쾌하다. 애매모호하게 어중간한 것이 특징인 나라에서 (어)중간이 없어진 모양이다. 나도 이렇게 저렇게 치이다 보니 사람이 죽는 자살사고라는 말을 들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익숙해 버린 것이다. 이런 세상에 살면 사람들이 정상으로 지내기가 힘들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늦었지만, 스트레스 해소하느라고 손빨래를 해서 널고 마 재킷에 포인트로 큰 단추를 달았다. 기분이 조금 차분해졌다.
사진은 벌써 피고 졌지만, 화려하게 모란꽃이다. 기분만이라도 화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