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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

저주가 생기는 순간

2016/05/13 저주가 생기는 순간

 

오늘 동경은 햇살이 강했지만, 상쾌하게 맑은 날이었다. 날씨라도 좋아서 참 다행이었다. 어제는 연휴가 끝나고 맞은 여성학과 노동사회학이 있는 날이었다. 노동사회학 시간에 처음으로 강의에 나오는 학생이 무더기로 생겼다. 그 학생들은 빈손으로 그냥 몸만 앉아있었다. 배부한 자료도 보지 않으면서, 수업을 엉망으로 만들어 갔다. 지난번에 헤드폰을 끼고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에게 주의를 했더니, 주의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헤드폰을 끼고 앉아있다. 주의를 하지 않았다. 좋았던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엉망인 분위기에서 강의를 하는 나도 울화통이 치민다. 강의를 잘 들으려는 학생들이 애꿎게 피해를 입는다. 다음 주에는 그런 학생을 교실에서 나가라고 할 작정이다. 이번 학기에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과목이 삽시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머리라도 시원하게 자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를 향했다. 이번 주는 피로가 누적되어 신발도 아주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노란색 튜닉과 진달래색 레깅스에 빨강 구두로 기분을 최대한 업시켜서 나갔다. 수업도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친한 미국 선생이랑 수다를 떨면서 역에 도착했다. 아주 기분좋게 주말을 맞을 작정이었다

전철을 타서 역에 도착해서 마트에 들렀다. 먼저 한군데를 들르고 두 번째 마트에 들렀다. 두 번째 마트는 요즘 점점 손님이 줄어 가는 곳이지만, 가격이 좀 비싸도 맛은 괜찮아서 과일은 여기서 산다. 호박과 나물을 사고 토마토가 싸서 한 봉지 넣었다. 세 개 들이 한 봉지에 299엔이었다. 계산을 했더니 399엔이 찍혔다. 다시 토마토가 놓였던 곳에 가서 가격을 확인했더니 299엔이다. 다른 사람이 계산이 끝나길 기다려서 토마토 가격이 잘못 찍혔다고 했다. 점원이 당황하면서, 가격을 확인하고 오겠다며 토마토를 가져갔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내가 잘못해서 벌을 서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점점 기분이 상해갔다. 점원이 돌아와서 299엔짜리에 진열되어 있었지만, 이 것은 399엔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다. 거기서 진열을 제대로 하라고 말하면 내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된다. 기분이 상해서 토마토를 먹었다가 목에 걸릴 것 같다. 토마토가 필요 없으니까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른 카운터로 가라고 한다. 거기는 점장이 있는 카운터로 점장이라는 사람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 나는 그를 피한다. 점장이 아주 무례하게 불쾌감을 자극하는 태도로 돈을 돌려주면서 이름을 쓰라고 한다. 지금까지 돈을 돌려받으면서 이름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자기네가 잘못한 걸 왜 내 이름을 대야 하는지, 웃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불쾌하고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잘못한 걸 가지고 손님에게 굴욕감을 준다. 그 순간에 “이런 가게는 망해야 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순간적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억울한 경우도 많이 당했지만, 나를 억울하게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망하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질 못했다. 몇십 년이나 단골로 자주 다니던 실집에서 실을 훔친 것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신주쿠 오카다야다. 너무나 터무니없고 황당해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했던 그 가게를 안 가기로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너무 밟히다 보니 순간적으로 상대방이 망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는 걸 경험했다. 사람에게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악의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냥, 마트에서 가격이 쓰인 물건을 골라 계산하고 사는데, 잘못할 수도 있다. 인간이니까. 그러나 자신들의 실수를 손님이 잘못한 것처럼 벌을 세우고 모욕을 주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동경에서 살다 보면 너무나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불쾌하다. 시스템이 손님 위주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 다시는 그 마트에 안 가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마트인데, 그 마트에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 마트에 점점 손님도 줄고 물건도 시원치 않더니 정말로 막가는 모양이다. 그 마트에 가는 사람에게 점장이 불쾌하게 만드는 데, 손님들이 좋아하겠어? 저주가 생기는 순간이라는 드문 경험을 했다

 

 

결국, 그 마트는 망했다. 멀쩡한 손님에게 갑질이나 하고 있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서 오래 다니던 가게가 망하는 걸 보면 망할 작정을 한 것 같은 짓을 한다. 이런 예를 수도 없이 봤다. 

 

사진은 화사한 모란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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