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경생활

갯내음에 멀미했다

오늘 동경은 오전에 흐렸다가 오후에 맑아진다고 한다. 최고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가니 춥지 않은 날씨가 될 것 같다. 어제는 기온도 올라가고 따뜻한 날씨였는데 언니네가 오고 바빠서 밖에 나갈 틈이 없었다. 오늘은 낮에 산책을 나갈 생각이다. 어제 언니네가 바닷가에 가서 해 온 해산물과 음식재료, 음식 등을 가지고 와서 그 걸 정리하느라고 바빴다.

 

둘째 언니는 아침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오후에는 자기 가게를 한다. 수요일과 일요일은 가게를 쉰다고 한다. 일요일은 아침에 하는 일도 쉬는 날이라서 하루 쉬지만 수요일은 아침에 일을 하고 오후에 가게를 열지 않는다. 그래도 다른 할 일이 있는데 두 날은 시간 조정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 일찍 요코하마에서 미우라 바닷가에 가서 해산물을 하고 산나물도 캐다가 어제 가져온 것이다. 요새는 해산물을 해서 나에게 가져오려고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어제는 낮 1시가 넘어서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평일에는 차가 밀려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어제는 운이 좋게 차가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언니네를 기다리면서 오전에 청소를 했다. 요전에 복숭아꽃이 화사하고 좋았는데 뒷날부터 벌레가 나오고 꽃잎이 떨어져서 매일 하루 두 번 주변에 청소기를 돌렸다. 꽃잎이 떨어지는 건 괜찮은데 벌레가 끝도 없이 나오고 벌레가 싸는 똥으로 정말 질리고 말았다. 분명히 어제 꽃병을 비우고 복숭아꽃 가지를 작게 잘라서 비닐봉지에 담아 베란다에 내놨는데 오늘 아침에도 엉뚱한 곳에서 벌레가 나왔다. 동백꽃도 벌레가 잘 나오는데, 복숭아꽃은 꽃이 많아서 동백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벌레가 많아서 완전 노이로제가 될 지경이었다. 

 

어제 가볍게 책을 70-80권을 묶어서 현관에 내놨다. 책은 사이즈에 따라서 부피나 크기가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문고본은 한 손에 들면 딱 10권이 손에 잡힌다는 걸 어제 알았다. 어제 세트로 버린 책 중에는 아직 서점에서 팔고 있는 신간도 있다. 나는 한 작가의 책을 읽게 되면 그 작가의 책을 집중해서 읽는데 어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다 버렸다. 왠지 전혀 읽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다 버렸다. 이전에 야마모투 슈고로를 좋아해서 그의 책 전부를 모아서 몇 번 읽었지만 싫증이 나서 지인 딸에게 몇십 권을 한꺼번에 다 준 적도 있다. 정리할 때는 한꺼번에 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책을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가지 않아서 눈에 띄는 대로 읽지 않을 책이나 앞으로 볼 일이 없을 책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크게 책을 한 번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전체 양에서 5분 3을 정리했는데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버리고 했지만 몇 권인지 세지 않았다. 그 후에 호주에서 지내다가 다시 동경으로 와서 가급적 책을 사지 않기로 했다. 원래 내가 하는 분야는 자료가 적어서 항시 이용하는 큰 도서관이라고 해서 필요한 자료가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개인적으로 사야 했다. 하지만, 호주 생활 이후에는 그렇게 자료에 집착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호주에서 보니까, 도서관을 이용하지 자료를 개인 소정 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그 걸 본받기로 했다. 솔직히, 나처럼 직업적으로도 매우 성실하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읽고 싶은 책을 산다면 돈과 책을 보관할 장소를 감당할 수도 없다.

 

어제 책을 버리면서 대충 몇 권인지 봐서 알게 된 건 앞으로 책을 정리할 작업이 험난하다는 것이다. 어제저녁에도 우연히 눈이 간 문고본을 손에 잡았더니 딱 10권이 손에 잡힌다. 다른 상자에도 넣은 걸 생각하면 어제 정리한 책만 150권 정도가 된다. 문제는 150권이나 정리했는데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그래도 150권 정도 정리했으면 조금은 티가 나야 하는 게 아닌가? 어제 책을 몇 묶음이나 현관에 쌓아놓고 쓰레기장에 가져가지 않았으면 책을 정리했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럴 정도로 변화가 적어서 한숨이 나온다. 어제부터는 책을 아예 무더기로 정리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오후에 들어서 언니네가 왔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 둘째 언니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같이 왔다. 둘째 언니가 일요일 바닷가에 가서 해 온 해산물과 닭 한 마리를 죽을 쒔다고 한다. 큰 언니도 배낭에 내가 먹을 만한 걸 사서 넣고 왔다. 둘째 언니가 가져온 해산물을 보면 톳과 미역을 손질해서 데쳐서 왔다. 자연산 방풍나물도 많이 가져와서 나물로 먹고 말려서 차를 만들라고 한다. 자연산 명일엽도 해왔다. 양배추 밭에 가서 샀다고 양배추도 가져왔다. 해산물은 보말과 배말, 거북손, 게 등이다. 과일은 바나나와 키위, 한라봉이다. 호두와 캐슈너트과 마카다미안 넛도 한 봉지, 도라야 요칸도 한 상자 들어왔는데 나에게 5개 가져왔다. 요구르트도 6개나 있다. 머위장아찌에 표고버섯을 조린 것도 있다. 식재료는 약간 말린 도루묵이 좀 많고 반건조 도미도 3마리 더 말리라고 해서 지금도 말리는 중이다. 작고 부드러운 오징어도 4마리 냉동했다. 음식은 닭을 통째로 한 마리에 인삼과 무, 당근 등을 넣고 푹 고아 죽을 쒀서 냉동했다가 가져왔다. 내가 적당히 소분해서 다시 냉동 보관했다가 먹으라고 한다. 소분해서 넣을 비닐봉지도 그냥 봉지째 냄비에 넣어서 데울 수 있는 걸 사 왔다. 배말죽도 쒀서 가져왔는데 오늘 아침 먹었더니 전복죽과 같아서 아주 맛있었다. 전복 게웃에 해당하는 배말 똥을 짓이겨서 모래를 걸러서 넣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배말 똥을 버린 것이 너무 아깝다. 

 

언니네가 오기 전에는 한 시간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벚꽃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언니와 형부가 오면 그런 말을 편히 할 정도로 친하지 않아서 말도 못 한다. 가고 난 다음에 같이 벚꽃을 보러 갔으면 좋았을 걸 후회한다. 언니네가 와도 내놓을 것이 없어서 국화차를 냈다. 집에서도 조심하느라고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언니네가 와서 시끌벅적하다 보니 긴장해서 나도 모르게 급 피곤 해진다. 나는 보기에 전혀 낯가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근데, 낯가림이 매우 심하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한다는 걸 가족이나 주위에서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병원에 장기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둘째 언니가 와서는 그렇게 통곡을 할 정도로 다음날까지 울다가 갔다. 나는 언니가 그렇게 우는 게 싫어서 몇 번이나 주의했지만 그렇게 울었다. 어제는 큰 언니가 몇 번이나 울컥하면서 울려고 하다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참 이상하게 봤다. 아픈 사람은 난데 왜 언니네가 울고불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이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울지 않았지만 너무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돌아가기 전에 같이 여행을 가자고 가고 싶은 곳만 말하면 자기가 다 준비한다고 했다. 다른 필요한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나는 언니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큰 언니가 오는 줄 알았으면 옷도 좀 준비했다가 줬을 텐데 말이다. 여행 가방을 큰언니와 둘째 언니에게 하나씩 나누고 형부에게도 작은 가방을 줬다. 우연히 2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여행가방을 한꺼번에 몇 개나 사는 이상한 일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 샀다는 기념을 나눈 것이다. 언니네를 보내고 나서 보니 점심시간에 와서 배가 고팠을 거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 언니가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었는데....

 

배가 고픈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나도 정신이 없어서 점심을 건너뛰었다. 언니네가 가고 난 다음에 가져다준 해산물과 음식, 식재료를 정리해서 냉동하고 냉장고에 넣고 말리느라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부피가 작고 간단한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은 게를 씻어서 냉동했다. 오징어는 2마리 데쳐서 그냥 서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배말도 하나하나 씻고 데쳐서 똥을 떼고 10개씩 소분해서 냉동했더니 50개 정도였다. 다음은 거북손이 꽤 많았는데 데쳐서 다 속을 빼냈다. 일요일에 잡은 것이라, 갯내음도 꼭 신선하지 않다. 빨리 손질해서 정리하지 않으면 상한다. 사실, 나는 거북손을 먹은 적이 없다. 어떻게 먹는지도 잘 몰라서 검색했다. 많은 거북손을 장시간 손질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고 나는 비릿한 갯내음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손질했지만 거북손을 까고 보니 내용물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둘째 언니와 형부가 미우라 바다까지 가서 해다 준 성의를 생각하면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거북손은 오이에 양파와 무, 당근 등을 넣고 회무침을 만들어서 저녁에 먹었다. 나중에 언니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국을 끓일 때 국물이 나라고 같이 넣는다고 그 걸 다 손질했다니 언니가 웃는다. 이미 손질도 끝냈고 냉동고에 들어갈 틈새도 없다. 방풍나물도 큰 걸로 골라서 씻어서 베란다에 내놓고 물기를 뺀다. 어제 나온 쓰레기만 해도 한 달 이상치가 나와서 버렸다. 배말이나 보말, 거북손도 버리는 부분이 많다. 

 

어제저녁으로 큰 언니가 준 영양밥에 거북손 회무침을 곁들이고 도루묵도 3마리 굽고 달래장에 먹었다. 그전에 배말과 오징어를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보말을 삶아서 먹기도 하고 까서 냉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갯내음에 멀미해서 도저히 보말을 다 깔 수 없을 것 같다. 큰 보말만 골라서 삶아서 먹고 나머지는 냉동하고 말았다. 

 

오늘도 베란다에서는 방풍나물이 물기를 빼고 도미와 도루묵을 말리고 있어서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난다. 톳도 아침에 무치고 난 다음 남은 걸 말리기 시작했다. 방풍나물은 차로 만들려면 썰어서 덖어야 한다는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냄비에는 된장국을 끓이려고 냉동 보말과 멸치를 물에 담갔다. 갯내음도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신선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의 상태에 따라 익숙한 갯내음에 그리운 기억으로 행복하기도 하고 너무 많으면 갯내음에 치여서 멀미하기도 한다. 어제 거북손을 손질할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했더니 거북손 육수가 여기저기로 튄 모양이다. 어제 자판과 책상, 모니터도 닦았지만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거북손 육수가 말라서 또 다른 갯내음을 풍기고 있어서 당분간 갯내음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집이 먹을 걸로 가득 찼다. 냉동고도 가득 차서 한동안 냉동고를 파먹기만 해도 살 것 같아서 아주 든든하다. 오늘 낮에는 산책을 꼭 나가야지. 

 

작년에 찍은 벚꽃사진이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순과 택배를 받았다  (4) 2022.04.18
시간이 뒤죽박죽된 날  (2) 2022.04.08
현실과 현실도피  (4) 2022.04.05
항암치료와 벚꽃구경  (2) 2022.04.03
신체장애자 수첩 받으러 갔다  (2)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