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경생활

또, 항암치료를 못했다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19도로 오전에는 쌀쌀했다가 오후에 들어서야 날씨가 따뜻해졌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병원에 가느라고 집과 밖의 기온차를 잘 느끼지 못했다. 낮 가까이에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올 때 집안이 너무 따뜻해서 깜짝 놀랐다. 어제 기온이 높아서 집이 따뜻한 상태에 아침에 창문을 열지 않아서 열기가 그대로 있었던 모양이다. 병원에도 돌아오는 길에 산책을 해서 체온이 올라간 상태에서도 집안 열기에 놀랐다. 

 

오늘은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어젯밤부터 점심에 먹을 간식으로 고구마와 계란을 찌고 아침에 방울토마토를 씻고 따뜻한 물을 작은 보온병에 넣었다. 병원에 가는 것도 요령이 생겨가서 아침에 일찍 가는 것이 빨리 끝난다는 걸 알았다. 오늘은 8시에 도착하고 싶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8시 5분이 지났다. 대기 번호표가 있고 번호표가 붙은 자리에 앉으라는 안내가 있었다. 아직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출근하는 시간대였다. 5번 번호표를 가지고 5번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병원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 8시 25분 정도부터였다. 8시 30분이 되니까, 1번부터 5번까지 나와서 진찰권을 넣고 예약한 내용을 뽑았다. 내가 보기에는 다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했다. 다 혈액검사에 가서 거기서도 번호표를 뽑고 접수해서 피를 뽑았다. 채혈한 시간이 8시 35분,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9시 25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최소 10시였는데 시간이 빠르다. 

 

외과 외래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9시 넘어서야 환자를 호명하기 시작한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 같았다. 도중에 간호사가 와서 지난주와 비교해 체중에 변화가 있는지 묻는다. 체중을 쟀는데 별 변화가 없었다. 9시 30분경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혈액검사 결과 오늘도 골수 수치가 모자라서 항암치료를 못 받는다고 한다. 다음 주는 연휴라서 진료가 가능한 것은 금요일이라고 한다. 다음 주에 와도 다시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생길까 봐 2주 후로 예약을 잡았다. 항암치료는 링거로 하고 먹는 약은 부작용 때문에 먹는 약이 몇 종류 있었는데, 지난주에 하나 끊고 이번 주에는 세 종류를 다 끊기로 해서 약이 없었다. 암은 1월에 비해 커졌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것이 3월 중순인데 그때 CT를 찍지 않아서 치료 시작할 때와 지금 항암치료를 2번 받은 후 암의 크기를 비교해서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 항암치료를 더 받고 CT를 찍어서 암의 크기를 보고 항암치료 효과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주치의 진료가 끝난 다음에 진찰권을 받고 의료비를 정산해서 병원을 나온 게 10시 10분이었다. 약 처방이 없어서 약국에 가지 않아도 돼서 아주 빨리 끝난 것이다. 하지만, 항암치료받을 준비를 해서 갔는데 항암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도 꽤 스트레스가 된다. 그렇다고 골수 수치를 좋게 하기 위해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항암치료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암이 커질 우려가 있기에 딜레마가 된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 항암치료를 못 받았지만 아주 지쳤다. 병원을 나와 집을 향해 걷다가 집 가까이에 만병초가 핀 걸 아침에 봤다. 아침에는 병원에 가느라고 잘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자세히 보기로 했다. 다른 해에 비하면 만병초가 많이 피지는 않았는데 피기 시작해서 아주 예뻤다. 사진을 찍고 다른 꽃을 보러 주변을 걷고 싶었다.

 

요새 금난초와 은난초가 피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곳은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원과 뒤에 있는 큰 공원에 가는 길목에 있다. 조금 더 반경을 넓히면 큰길을 건너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어차피 산책도 해야 하고 뒤숭숭한 속도 달랠 겸 금난초를 보러 가기로 했다. 큰길을 건너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갔더니 항상 금난초가 피는 곳에 없었다. 다른 장소에 핀 금난초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집 가까운 역으로 길을 건너기 전에 금난초가 많이 핀 걸 발견했다. 이건 처음 보는 곳이다. 길을 건너서 역 바로 옆에 있는 명일엽의 성장상태를 확인했다. 많이 있는 곳에는 아주 울창하게 숲을 이뤘다. 다른 쪽에도 나름 늘었다. 작년에 명일엽을 봤던 곳에도 가만히 봤더니 있었다.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에 갔다. 올라 가면서 작년에 내가 심은 명일엽과 명이나물이 살았는지 보러 갔다. 명이나물을 심은 곳은 다른 식물도 다 잘린 상태다. 명이나물도 살았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명일엽은 있어서 박수를 치고 말았다. 다른 곳에도 심었는데 살아 있을까? 금난초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뒤쪽에 많이 있다. 공원에 갔더니 오토바이가 한 대 있고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어서 평소에 사람이 전혀 없는데 사람이 있었다. 금난초를 보고 사진을 찍는 사이에 뒤숭숭했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단지 뒤쪽에 있는 것도 보러 가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나와 1시간 이상을 걸어 다녔더니 피곤하다. 이미, 병원에서 피곤함을 느꼈다. 산책하고 꽃을 봐서 마음이 달래진 상태였지만 피곤했다. 집에 가서 쉬고 오후에 단지 뒤쪽과 좀 걸어가는 곳에 핀 금난초와 은난초도 보러 가기로 했다. 산더미처럼 있던 죽순도 다 먹었으니 죽순을 캐러 가도 좋을 것 같다.

 

집에 와서 따끈하게 유자차를 타서 마시고 찐 고구마를 조금 먹었다.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서 깼더니 오후 2시가 되었다. 어젯밤에 몇 번이나 깨서 잠을 푹 자지 못했다. 아침에도 긴장해서 너무 일찍 일어났다. 병원에 가기도 전에 좀 피곤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잠에서 깨니 몸이 개운하다. 어영부영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들어서 햇볕이 나면서 날씨가 따뜻해진다. 금란초를 보러 가거나 죽순을 캐러 갈 힘까지는 나지 않는다. 늦은 점심으로 찐 고구마와 삶은 계란, 죽순을 넣은 도미찜과 같이 먹었다. 나중에 친구가 교토 여행 선물로 준 과자와 유기농 호지차와 곁들여 먹었다. 

 

저녁을 일찌감치 해서 먹을 생각으로 저녁거리를 꺼냈다. 요새 마트에 가지 않아서 재료가 부족하지만 냉장고에 있는 걸로 먹기로 했다. 날씨가 따뜻하지 않아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겠다. 내일도 날씨가 추울 것 같다. 근데 속이 답답해서 시원하고 자극적인 걸 먹고 싶다. 오징어를 데쳐서 오징어회를 만들어서 소면을 삶아 곁들여 먹기로 했다. 횟감용 냉동 오징어 한 마리가 있다. 냉장고를 뒤져서 달래와 무, 오이, 당근을 찾아냈다. 야채를 넉넉하게 넣어서 무쳐놓고 마지막에 오징어를 데쳐서 넣었다. 거기에 산초잎을 좀 많이 넣었더니 오징어회가 완성되었다. 소면을 삶아 팍팍 씻어서 오징어회를 넉넉히 얹어서 먹었다. 오늘은 자극적으로 먹는다고 식초와 후추, 고춧가루도 많이 넣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매운 걸 먹는다는 기분을 좀 알 것 같다. 그렇게 맵지 않지만 자극적이어서 좋았다. 뒤숭숭한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할까, 어쨌든 먹고 나니 개운한 기분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거다. 아직, 항암치료 초기라서 어느 정도 주기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지금 사는 곳에서 가장 좋은 점은 병원이 가깝다. 산책 겸해서 도보로 다닐 정도다. 필요하면 일주일에 한 번, 매일 가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다. 하지만, 한국, 제주도에 가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안정적으로 항암치료를 계속할 수 있는 걸 알아야 하겠다. 우선, 다음 병원에 가면 주치의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현재 상태로는 주치의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골수 수치 회복이 늦다고 항암제도 현재 쓰는 것보다 줄여서 80% 투여하겠다고 한다. 그런 걸 조정하면서 봐야 항암치료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부터 일본은 '황금연휴'에 들어간다. 나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나도 '황금연휴'에 '파친코'를 다 볼 생각이다. 

 

2년 전에 찍은 금난초 사진.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두를 빚었다  (2) 2022.05.04
죽순을 캐러 갔다  (2) 2022.04.30
항암치료를 못했다  (2) 2022.04.22
죽순과 택배를 받았다  (4) 2022.04.18
시간이 뒤죽박죽된 날  (2)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