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아침에 맑았다가 오후 늦게 흐리고 비가 살짝 뿌리는 날씨였다. 동경은 지난 금요일부터 장마철에 돌입했다. 이번 장마는 기온이 낮고 비가 올 때는 강하게 온다. 월요일이 가장 춥고 비도 많이 왔다. 최고기온이 17도로 전날보다 10도가량이나 낮았다. 도서관에 갈 때 집에서 바깥을 보니 비가 그리 세지 않게 내리는 것으로 보여서 크지 않은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 우산이 크면 비를 덜 맞지만 무거워서 보통 사이즈를 택했다. 막상 밖에 나오니 집안에서 보는 것과 달리 비가 꽤 온다. 우산을 바꾸러 다시 집에 가는 것이 귀찮아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는 양쪽 팔과 하반신, 발이 젖었다. 도서관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있어야 할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더 크게 와서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큰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강물이 불어서 본 적이 없는 수위로 올라왔고 물살이 거친 파도처럼 내려가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재료가 별로 없었다. 즈키니와 햇양파를 썰고 마른 새우를 넣어서 부침개를 부쳐서 먹었다. 마른 새우가 들어가서 맛있었다.
지난 금요일 장마철에 들어섰다. 일본 절기 중에 장마철을 사람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장마철이 되면 평소에도 활기가 없는 학생들이 한층 더 우울해진다. 체력이 약해서 아파 결석하는 학생도 는다. 지난 금요일이 그랬다. 30%가 결석했다. 금요일은 주중에 마지막 강의가 있는 날이라서 옷을 편하게 입는다. 학생들이 내가 밝은 옷을 입어주길 바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핑크색 계통으로 입고 나갔다.
그래도 지난 번에 입었던 '당근 귀신'보다 훨씬 덜 자극적이고 얌전한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전철을 탔더니, 앞에 앉는 아저씨들 시선이 따갑다. 책을 꺼내서 내 얼굴을 가렸다. 내 시야가 차단이 되면 상대방이 나를 쳐다보는 걸 보지 않아도 된다. 그랬더니 글쎄 아래서 올려다보려고 앞에 앉았던 아저씨가 거의 좌석에 비스듬히 누워서 내 얼굴을 보려고 난리를 친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기가 막혔다.
다음에 전철을 갈아타서 노약자석 코너에 앉았다. 이번에도 앞에 앉은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려고 난리가 났다. 다시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랬더니 앞에 앉은 아저씨 목이 기린이라도 된 것처럼 길게 위로 치켜 올라와 위에서 나를 보려고 한다. 인간의 목도 저렇게 늘어나는 줄 몰랐다. 아이고,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책으로 앞을 방어하다 보니 옆이 뚫렸다. 45도 각도 앞에 앉은 아저씨도 나를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경에 살면서 조금 튀는 옷을 입은 날에는 이런 난리가 난다. 내가 옷을 벗었다면 몰라도 옷을 입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부당하다. 너무 자유가 부족하다.
학교에 도착했더니, 비가 좀 많이 오고 있었다. 내가 주위를 환하게 비추면서 지나는데 모르는 직원이 나를 보고 인사한다. 비가 많이 오네요 했더니, 직원이 아주 우울했는데 선생님 옷을 보고 기분이 행복해졌다고 고맙다고 한다. 밝은 색 옷으로 행복해진다면 밝은 색 옷을 입으면 될 텐데,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도 다 한 마디씩 한다. 주위를 밝게 한다면서 기분이 밝아진다고 한다. 나는 학생들을 위해서 아저씨들의 시선을 무릅쓰고 밝은 색 옷을 입고 나갔더니 직원이나 동료들이 더 좋아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기분이 달라지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 밝고 화사한 옷을 입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남성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눈에 띄는 옷을 입기는 힘들다. 눈에 띈다는 것도 노출이 심해서가 아닌, 단지 색상이 밝고 화사하다는 것뿐인데도 그렇다.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아침에 학교에 오는 사이 전철에서 생긴 일과 직원이 했던 말, 동료들의 반응도 다 소개한다. 학생들은 재미있어 죽겠다고 난리가 난다. 학생들은 선생이 자신들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밝고 화사한 옷을 입고 왔다는 것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학생들이 좋아해 주니, 이상한 아저씨들의 시선을 받는 위험부담을 하면서도 밝게 옷을 입고 나간다. 나도 알고 있다. 이상한 아저씨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결코 내가 예뻐서가 아니라, 진기한 동물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아래로 위로 보려고 난리를 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지금까지 썼던 블로그를 같은 날에 쓴 걸 올리고 있다. 작년 오늘은 첫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날이다. 블로그를 보면서 그날의 설렘을 상기했다. 오늘 이희호 여사님이 돌아가셨다고 북한에서 조문한다고 김여정 씨가 판문점에 왔다. 나는 북한에서 조문단이 오는 걸 기대했다. 조문단이 와서 조문을 하면서 정체한 흐름을 다시 정비하는 최선의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이희호 여사님의 유언을 남기신 것처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나가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슬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기 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려 한국으로 오는 것은 어떨까? '평화'를 위해, '희망'을 잃지 말고 나가야 한다.
일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다시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한일 정상회담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베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안 하면서 먼저 설친 것은 잊고 한국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기사가 나온다. 아베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안 한다고 했으니까, 안 해도 된다. 일본에서 이런 기사가 난 것은 한국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게 해달라고 일본에 '구걸'하길 바라는 것인가? 그야말로 '굴욕'을 주고 있다. 아베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안 한다고 했으니까, 안 하면 된다. 일본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안 한다고는 했지만, 아베 정권으로서는 한국에 대해 통 큰 아량을 베풀어 상대도 하기 싫지만 한일 정상회담을 해줬다는 식으로 일본 국내에 점수를 딸 필요가 있기에 이렇게 나오는 모양이다. 평창올림픽 때도 아베 총리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갔다.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간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안 가겠다고 난리를 쳐서 스스로가 점수를 많이 깎아 먹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 하는 것이겠지, 당연히. 그런 걸 한국을 위하는 것처럼 설레발을 치는 걸 보면서, 참 재미있다. 북한과 대화를 할 여지가 없을 것 같으니까, 한국이라도? 대화를 한다는 제스처가 필요한가?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과 인연이 깊고 한일관계에 공적이 크다. 이희호 여사님이 돌아가셨는데, 예전이라면 일본 정부에서 조문을 갔을 것이다. 조문을 가서 얽힌 것도 푸는 '외교'를 아베정권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일본은 한국과 북한의 평화적인 교류를 사활을 걸고 방해할 것이다. 오늘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미국에서는 오지도 말라고 했는데 갔다고 비웃고 있다. 일본이 비웃던 말던 가야 할 길을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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