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30 개구리와 멜론
오늘 동경은 오랜만에 화창하게 맑은 날씨였다. 오전에는 화창하게 맑았다가 기온도 좀 높게 올랐는 데, 오후에는 흐려왔다. 저녁이 되니 기온이 낮아 춥게 느껴질 정도라서 창문을 닫았다.
오늘 아침은 몸이 노곤해서 그냥 늦게 일어났다. 어제 도서관에 가려다가 못 갔다. 도서관에 가려고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을 하고 차비를 마치니 오후 2시가 되었다. 햇살을 받아 뜨거워진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려니 용기가 안 났다. 가서 피곤을 풀고 일을 하려다 보면 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 도서관에 안 가고 집에서 소일했다. 그 대신 저녁에 산책을 나가서 오래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주스를 만들려는 데, 믹서가 갑자기 안 돌아간다. 너무 많이 넣어서 작동이 멈춘 줄 알고 내용물을 덜어내고 다시 돌려봤다. 그래도 옴짝달싹 하지 않는다. 고장이 난 건가, 산지 두 달도 안됐는 데… 허망하다. 아무리 그래도 실감이 안 난다. 사용설명서를 꺼내서 읽었다. 리세트 버튼을 눌러봐야겠다. 근데, 리세트 버튼을 못 찾겠다. 오늘 아침에 본체를 잘 봤더니 아래쪽에 리세트 버튼이 있다. 눌러서 다시 작동을 시키니 잘 돌아간다. 그러면 그렇지 지금까지 주스를 만들기 위해서 삶은 야채를 간 게 전부인 데, 고장이 날 리가 없다. 내용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안전장치가 작동했나 보다..
요즘 장마철이라, 날씨가 찌뿌둥하다.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니 옷이라도 재미있게 입어서 즐겁게 지내야지. 작년에도 비슷한 코디네이트로 개구리로 변신했다. 그런데, 작년 개구리는 바지를 입었던 것 같은 데, 올해 개구리는 스커트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역으로 가는 길에 내가 녹음 속에서 갑자기 나타났더니, 산책을 하던 강아지가 깜짝 놀라서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나도 강아지가 정지상태로 나를 쳐다보는 걸 보고 놀랬다. 아니, 강아지가 색채감각이 있는 건가, 그 옆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아줌마들도 세상이 이럴 수가, 아니 전신을 초록색으로 입어도 돼? 이런 얼굴로 수다도 멈추고 지나가는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지나치면서 나는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을 이유가 없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던 아줌마도 아주 멋쟁이로 차려입었다. 그런 아줌마가 나를 보면서 이럴 수가 했다면 어떤 의미라는 것인가.
학교에 도착해서 친구에게 그 말을 했더니, 깔깔대고 웃는다. 내 주위에는 항상 뭔가 일어난다. 수업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내 옷을 보고 교실이 붕 뜰 정도로 들뜬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에 강아지가 내 옷차림을 보고 놀랐다고 동네 아줌마들도 놀래는 눈치더라는 말을 하니, 학생들이 재미있다고 난리다. 수요일 오후에 참외가 비싸서 못 사고 그 대신 목요일에 멜론을 7개나 샀다고, 도대체 왜 그렇게 멜론을 많이 샀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선생님 멜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무의식적으로 멜론색이 옷에 반영된 게 아닐까요란다. 그런가? 그렇다면 새로운 설이다. 그래서 개구리와 멜론이다.
학생들이 내 옷차림에 관심이 많다. 어떤 학생은 몸이 아파서 결석을 하려다가, 선생님 옷이 궁금해서 학교에 나왔는 데, 학교에 오길 잘했다는 감상문이 있었다는 말을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실은 저도 그래요 라는 감상문이 많이 올라왔다. 학생들 감상문에 대부분이 내 옷차림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러니 내가 재미있게 옷을 입고 나갈 기분이 생긴다. 학생들 의욕에 결부된다면야, 재미있는 옷차림쯤은 얼마든지 한다. 학생들에게 동기부여하는 게 내 직업의 일부니까. 요즘 그 과목 학생들은 학교에 놀러 오는 것 같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와서 기대감을 갖고 앉아서 기다린다. 수업시간에는 열심히 몰입하고 나서 충실한 얼굴로 돌아간다. 잘 놀았다는 기쁜 얼굴로 돌아간다. 내가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성원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도 나를 응원한다. 저희는 선생님을 신뢰해요, 그러니 수업이 신나게 노는 시간이 되는 거다. 90분 수업이 금방 끝난다고, 신나게 노는 기분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자신들이 특별한 수업,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간다. 가끔은 개구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