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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이야기

차분히 추운 날

2015/02/17 차분히 추운 날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촉촉히 비가 내리는 차분히 조용하게 추운 날이다. 최고기온이 5도라는 데, 실내는 아직 그다지 추위를 못 느낀다. 따뜻함에도 여러가지 느낌이 있듯이 추위에도 느낌이 다양하다. 오늘 추위는 아주 동경적인 느낌의 추위다. 조용히 차분하게 추운 것 같지 않으면서 춥게 만드는 부드럽게 교묘한 추위인 것이다

어제까지 따뜻한 날이 며칠 계속되었다. 어제는 최고기온이 15도나 되는 아주 따뜻한 날이었다. 월요일, 새로운 책이 오는 날이라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관심있는 책을 열 권쯤 가져다가 훝어보고 그 자리에서 한 권은 다 읽었다. 두 권째 읽다가 시간이 모자라서 책을 빌려왔다. 오늘 아침까지 그 책을 다 읽었다

나에게 책을 읽는 것은 일과 취미생활을 겸한 것이다. 밥을 먹는 것과 숨을 쉬는 것과도 같은 일이라서, 다양한 종류의 책이 필요하다. 필요에 따라서 딱딱하고 어렵지만 억지로라도 읽어야 할 것이 있고, 대부분 이런 경우 읽고나서 필요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필요한 과정이다. 피곤할 때는 휴식을 주는 책을 읽는다. 마치 배가 고프지만 뭘 먹고 싶은지가 다르듯이 때에 따라 필요한 책이 다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은 목욕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다.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책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좋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일어나자 마자 이불속에 파묻힌체 손만 내밀어서 책을 집어들고 비몽사몽에 읽는 것이다. 그 책은 전날 밤에 목욕을 하면서 읽다가 자기 직전까지 읽던 책이다. 즉 재미있는 책인 것이다

가끔은 밤에 읽던 책이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어 아침까지 읽는 경우가 있다. 책이 재미있어도 피곤함이 남기에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너무 늦게까지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한다.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피곤함이 남으니까, 적당히 먹어야 한다

일요일에 마이놀리티론의 시라바스를 입력했다. 내용은 그동안 많이 준비하고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평범하다면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 봄학기에 동아시아 사회론이라는 과목이 있고, 가을학기에 마이놀리티 사회학이라는 과목이라서 봄학기에 지역연구처럼 한가지 테마를 가지고 동아시아를 개관하고 가을학기에는 마이놀리티를 통해서 동아시아 지역을 보기로 했다. 가을학기에는 일본과 중국에 중점을 두고 과목내용을 짰다.

일요일에 시라바스를 입력하고 났더니 갑자기 헛헛함이 몰려왔다. 시라바스를 입력할 때 손가락사이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고민하면서 움켜쥐고 있었던 뭔가가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갔다. 내가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서 문장이 되었지만, 그 문장이 단지 과목에 관한 안내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학생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씨앗이 될지는 전혀 모른다. 시라바스를 입력하고 났더니 학기말이 된 느낌이다. 학기말이 되면 헛헛한 기분이 된다. 내가 학기 중에 했던 일이 뭔지, 모를 일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씨앗을 뿌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보는 데, 싹이 나는 씨앗이 얼마나 될지. 씨앗을 제대로 뿌리기라도 한건지 모른다

내가 평소에 하는 일이 결과에 형태가 보이지 않아서 청소나 빨래, 뜨개질을 좋아한다. 결과가 확실히 눈에 보이니까, 알기가 쉽다

오늘은 오후 늦게 오랜만에 네팔아이가 놀러온다. 역에서 만나서 같이 담요를 사러 갔다가 쇼핑해서 저녁을 해 줄 생각이다. 집이 추울 것이라, 따뜻한 담요를 사주려고 기다렸는 데, 그동안 오질 않았다. 나도 그 아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결국 학기가 끝나고 추위도 고비를 넘긴 시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앞으로도 한참 추울 것이라, 지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낼 걸 사주는 것이 좋다. 나도 일주일 만에 역에 나가고 쇼핑을 나간다.

실은, 그 아이 집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부동산이 속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집을 빌리고 말았고 또 이사를 하려면 그 아이에게 부담이 갈 것이라, 사실을 말도 못하고 나는 화가 나는 것이다. 현재 있는 환경에서 최대한 춥지 않게 지내야 하는 걸 가르치려고 하는 데, 남자 아이라서 그런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치관이 다르다. 나는 잠을 자고 쉬는 장소로서 집이 아주 중요하다. 집에서 잘 쉬고 먹는 것으로 바깥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오랜만에 놀러 온다니까, 따뜻한 담요를 사주고 옷도 챙겨주고, 맛있는 밥을 해서 먹이는 걸로 하자

내가 헛헛함을 느낄 때 생각하는 것이, 우선 밥을 먹자다. 네팔아이에게도 밥을 먹이자. 이 아이가 어느새 내가 해주는 밥과 한국반찬을 엄청 좋아한다. 우선은 배불리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여서 그 아이가 타국생활에서 느끼는 헛헛함을 달래주자

오늘 사진은 밭고랑처럼 보이는 옷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밭을 만들고 거름을 주고 씨앗을 뿌리는 농사와 비슷하다. 때에 따라서 밭이 잘 보이지 않고 거름이 잘 맞는지, 씨앗이 제대로 뿌려졌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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