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경생활

지는 벚꽃

2016/04/09 지는 벚꽃 1

 

오늘 동경은 맑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좀 했다. 가방 둘과 운동화를 빨았다. 가방을 오랜만에 빨았더니 까마귀가 울고 갈 정도로 땟물이 나왔다. 운동화를 끈을 안 풀고 빨았더니, 밑창이 어중간하게 씻어졌다. 다음에는 끈을 풀고 확실히 빨아야지. 가방을 널어놓고 널었던 담요는 걷어들여 수납을 했다. 서둘러 가까운 농가에 야채를 사러 갔더니, 요새 먹는 봄동이라는 나물은 없고 쑥갓이 있어서 그것만 샀다. 봄동은 아침에 있었는데, 팔리고 만 것이다. 가는 길에 공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자전거에 아이를 앞과 뒤로 태워서 가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돌이 지났는데 웃는 입 모양이 반달처럼 벌어진다. 아랫니가 4 개 났다. 뒤에 탄 형이 나를 아는 척한다. 개구리가 단체로 겨울잠을 자고 나오는 연못에서 개구리가 많이 나오냐고 물었더니 올해는 적은 것 같단다. 형이 내일 유치원 입학이라며 바쁘게 갔다. 나도 공원을 지나서 농가에 갔다가 우체국 옆에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들렀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기부하거나 만든 물건이 놓여있어서 싸게 판 돈을 유니세프에 기부한다. 가끔 거기서 필요한 물건을 건지는 수가 있다. 오늘도 외국에 갈 때 아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은 기모노와 유카타용 천 등을 샀다. 파는 사람은 내가 싸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한다. 나도 밖에서 사는 정도의 가격이면 기부하는 셈치고 그냥 산다. 그런 곳에서 일본의 옛날 물건들이 나온다. 지금은 다 중국제가 되어서 그런 물건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집에 들러서 산 물건과 야채를 놓고 다시 산책을 나섰다. 벚꽃을 보러 나가는데, 큰 길을 건넜다. 거기도 공원인데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요새, 계절이 계절이라,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별로 목격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바로 눈앞이라 자세히 봤더니 사람이 나무 틈새로 굽어서 뭔가 하고 있다. 인사를 하고 뭐하냐고 물었더니, 고사리를 꺾는 단다. 깜짝이야, 이렇게 가까운 곳에 고사리가 있다니, 나도 거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봤다. 고사리가 통통해서 아주 맛있게 생겼다. 맛있겠다고 했더니, 가져가라고. 아니에요, 보기만 해도 계절을 느껴서 좋으니까, 괜찮아요. 거절했다. 그런 와중에 친구가 눈앞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친구를 불러 세워 고사리를 보여주고 같이 길을 떠났다. 친구는 은행으로, 나는 벚꽃이 핀 강가로 갔다.

강가에는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지고 있었다. 이틀 전에 친구랑 걸을 때는 친구와 보조를 맞추면서 친구의 이상한 방향 감각에 따라 걸었다. 오늘은 혼자 걸으니 맘대로 걸어도 된다. 벚꽃은 질 때가 좋다. 바람이 불어서 눈처럼 꽃잎이 바람을 타고 날리는 것이 좋다. 오늘은 마침 그런 날이었다. 강가에 바람이 불어서 꽃잎이 흐날렸다. 바람이 강도도 안성맞춤으로 좋았다. 바람이 너무 드세서 꽃잎을 강제로 마구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꽃잎도 아주 적당히 흩날렸다.. 가끔은 바람이 강해서 땅에 모여있던 꽃잎들이 날려서 다른 모양을 만들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무대 같은 강가를 걸었다

강가에 벚꽃은 한참을 걸었지만,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친구와 같이 걸었을 때보다 몇 배나 먼 곳까지 갔지만, 적당히 갔다가 되돌아왔다. 강가를 걷는 사람들 걸음걸이가 독특하다. 나처럼 멋없이 카메라를 들고 씩씩하게 걷는 사람은 없다. 꽃에 취한 듯, 봄에 취한 듯, 현실을 걷는 듯, 꿈결에서 환상 속에서 걷는 듯한 발이 땅에 닿는 듯 마는 듯하다. 꽃에 홀리는 것인지, 사람들이 꿈을 꾸는 것 같다. 나처럼 볼 일을 보듯이 맹숭맹숭하게 꽃을 보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다. 정말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황홀한 표정으로 들떠서 자신들의 세계에서 만끽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냥 보면 좀 이상하게 보인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적나라하게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 벚꽃을 즐기는 태도인 것이다. 평소에는 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도, 휠체어를 탄 사람도 꽃구경을 하러 나왔다. 일본사람들에게 벚꽃이 무엇인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홀리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홀리는 것 같다

나는 벚꽃에 홀리지는 않지만, 꽃이 지면서 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릴 때는 정말로 환상적이다. 오늘은 그런 길을 걸었다. 나중에 들판처럼 넓은 공원에 갔더니, 바람도 없고 꽃도 지지 않았다. 역시 강가에서 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것이 훨씬 좋았다. 강둑에도 강물에도 꽃잎이 떠있다. 꽃잎이 강물에 흘러가고 멈추며 강둑과 강물을 돋보이게 한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린 날 벚꽃 2  (0) 2020.04.11
흐린 날 벚꽃 1  (0) 2020.04.11
봄비에 젖은 벚꽃  (0) 2020.04.11
벚꽃구경 2  (0) 2020.04.11
벚꽃구경 1  (0) 20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