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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벚꽃은 피고 지고

2012/04/22 벚꽃은 피고 지고

 

오늘도 동경은 추운 날씨입니다.
저녁시간에 접어들면서 소리 없이 비가 오기 시작했네요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봄비입니다저는 어제도, 오늘도 집 밖에도 나가지 않고 얌전히 집에서 쉬면서 수업 준비를 했답니다그동안 체력이 없어서 학교에 갔다오면 뭔가를 먹고 목욕하고 일찍 자는 착한 어린이 같은 생활을 했는데어제는 오랜만에 밤 한시까지 책을 읽고 늦게 잤지요매일 아침에 하던 요가도 다시 시작했는 데힘에 겨워서 제대로 못하고 낑낑대고 있습니다정상적인 생활에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지난주 일요일에 날씨가 따뜻하고 몸도 바깥을 걸을 만해서학교 도서관에 책도 반납을 할 겸산책을 다녀왔지요몸 상태는 아직 산책 할 정도가 아니었나 봅니다걷다가 공원에서 몇번 토했거든요먹은 것도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바깥공기도 맛보고 벚꽃 꽃잎이 떨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벚꽃은 꽃잎이 질 때가 좋은 것 같아요눈 처럼꽃눈보라처럼 펑펑 흩날리며 지기고 하고요벚꽃이 한꺼번에 활짝 피었다가 한꺼번에 펑펑 흩날리며 지는 건 정말 장관입니다바람이 적을 때는 한장씩 나풀나풀 날기도 한답니다나풀나풀 날아가는 꽃잎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보면 자신도 꽃잎처럼 흐느적거리며 날아가는 느낌이 듭니다그리고 떨어져서 얼마되지 않은 꽃잎이 예쁘지요그래서 땅에 떨어진 벚꽃잎을 찍었습니다

일본에서 ‘꽃’이라는 단어는 벚꽃을 가리킵니다. 그 전에는 ‘매화’가 ''꽃’이었는데 차츰 벚꽃이 ‘꽃’의 대표가 되어갑니다또한 ‘국화’가 ‘꽃’을 상징하는 꽃이었다고도 합니다매화나 국화가 ‘꽃’을 상징했다는 것은 중국의 영향도 있지만아무래도 천황의 상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벚꽃은 꽃이 일제히 피고 질 때도 한꺼번에 미련 없이 지는 것을 ‘무사도’와 관련시켜 ‘벚꽃’을 특별한 꽃으로 각종 이론무장합니다슬픈 것은 ‘무사도’에서 ‘군국주의’를 미화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특히 소메이요시노라는 종류는 명치 이후 전승기념으로 많이 심어져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과 조선에도 많이 심어집니다그 중에서도 학교나 신사관공서 등에 심어서 어릴 때부터 정서적인 면에 영향을 끼치도록 합니다. 군가에도 벚꽃이 들어가고군복과 같은 남학생복에도 벚꽃문양이 새겨집니다벚꽃의 특징을 ‘군국주의’를 위해 철저히 이데올로기 화한 겁니다슬픈 일이지요.

또 한편으로 일본사람들은 벚꽃을 단순히 아름답다고 보지 않습니다벚꽃을 요기가 서려있는 꽃이라고도 봅니다예를 들면 사람이 죽어서 벚꽃나무 밑에 묻어서 그 벚꽃이 특히 아름답다는 얘기는 흔히 일컬어집니다즉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로 요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본 겨울은 한국 겨울보다 기온이 높지만온돌이나 난방이 발달하지 않아서 집이 추운 관계로 실은 더 추운 겨울을 지냅니다겨울 동안 웅크리고 지냈던 사람들이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기운을 되찾아 갑니다제가 동경 시다마치에 살 때 본 적이 있습니다벚꽃이 핀 아래를 멀쩡한 사람들이 이유 없이 실실 웃으면서 걷습니다마치 벚꽃에 홀린 것처럼 걸어다닙니다거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일종의 ‘광기’였습니다어쩌면 계절은 사람들이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가게 하나 봅니다.

요 계절이 되면 전철 맨 앞에 타려는 남자들이 많아집니다그 남자들은 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단지 전철 맨 앞에 타는 것에 집착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새순이 나오고 비가 오는 계절에 ‘전통적’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그 특징이 짙어진다고즉 자살이 많아지는 계절이라고 여겼습니다대학에서는 ‘오월병’이라고도 합니다그러나 지금은 사시사철 자살을 하고, ‘오월병’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유행 중입니다

 

벚꽃은 한 때 피고 지는 데사람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피고 지어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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