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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이야기

귀엽다고 해줘

2013/05/18 귀엽다고 해줘

 

오늘 동경은 빨래하기에 좋은 맑고 청명한 날씨였다.

 

오후에는 바람도 약간 불었다저녁 늦어서 빗방울이 비칠까 말까 하다가 말았다지난주부터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일교차가 심해서 본격적으로 더워진 건 아니지만아직 겨울옷을 정리해서 집어넣고 여름옷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이불도 아직 겨울이불이다방도 아직 여름용으로 바꾸질 못했다연휴 때 하는 데올해는 날씨가 하도 들쑥날쑥이라바꾸질 못했던 것이다나는 아침부터 이불 홑청을 빨고담요도 빨고손세탁도 했다손빨래 외에 세탁기를 두 번이나 돌렸다쓰던 이불도 말려서 집어넣어야 한다먼저 좁은 베란다를 청소한다그리고 이불과 베개를 말린다우선 얇은 이불호청을 빨아서 말린다손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침실을 여름용으로 바꾼다쓰던 매트리스를 말려서 아래로 집어넣고 밑에 있던 스프링 매트리스를 위로 갈아 넣는다매트리스 방향도 바꾸고매트리스를 움직였으니 구석구석을 청소기로 돌렸다

 

겨울에는 딱딱한 우레탄 매트리스를 위에 놔서 쓰고 여름에는 딱딱한 스프링 매트리스를 위로 올려서 쓴다그리고 가끔 쓰는 방향도 바꿔줘야 한다매트리스 위에 여름용으로 산뜻한 녹색 물망초 꽃무늬가 있는 퀼트 커버를 씌웠다이 걸로 3단 매트리스가 다른 색이라는 게 감춰진다그 위에 얇은 하늘색 무늬의 퀼트 커버를 깔았다오늘 빨아 널은 면담 요를 안에 덥고 위에는 퀼트 여름이불을 덮을 거다이 게 추울 건지 아니면 쾌적할지는 아직 모르겠다겨울에는 침대에 깔아서 쓰던 면담 요를 빨았다부엌에서 쓰던 작은 매트들도 같이 빨았다면담요나 매트 등은 바람이 불어서 빨래가 잘 마르는 날에 빨아서 말려야 한다

 

빨래를 하면서 아침을 먹었다뭘 먹었는지 기억이 없지만토마토를 먹고 커피를 마신 건 확실하다계속 움직이다가 점심도 일찌감치 소시지를 삶아서 먹었다소시지가 마트에서 제조한 생소시지여서 삶아서 마지막은 프라이팬에서 구워냈다그런데향신료후추를 너무 많이 넣어서 혀가 얼얼하다소시지가 느끼해서 오이를 잘라 같이 먹었다오후에도 계속 베란다를 들락날락거리면서 빨래를 말리고 베개와 이불을 걷어들였다두터운 면담요와 매트까지 말려서 오늘 해야 할 일을 거진 마쳤다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저녁에 클래식 콘서트가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데 같이 가잔다나는 아침부터 앉을 새도 없이 계속 일을 해서 벌써 피곤해 있었다보통 주말이라면 토요일은 그냥 푹 쉬는 데오늘은 집안 일을 좀 했더니 피곤해서 챙겨서 나가기가 싫다오늘은 이불빨래를 해서 피곤하다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문자를 보냈다

 

집안을 여름용으로 바꾸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오늘은 여기까지만하기로 했다장마가 오기 전에 여름용으로 바꾸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내일도 겨울옷을 말려서 먼지를 털고 집어넣어야지방사이 문도 뜯어서 집어넣어 방이 넓고 바람도 잘 통하게 배치를 바꿔야 한다. 겨울옷도 정리해서 방충제를 넣어서 보관을 해야지, 여름옷을 꺼내야지, 신발도 겨울 건 바람을 쏘이고 먼지를 털어서 보관하고 여름 신발을 내놔야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오후에는 앉아서 드라마를 보면서 하얀색으로 꽃을 떴다현재꽃을 재배하는 중이다요전에 뜬 빨간색 하나는 미국 친구에게 분양했다어제 미국 친구는 검정 바지에 위는 흰색 T셔츠에 흰색 쟈켓을 입었다빨강색을 좋아하고 다른 옷에도 빨간색이 잘 어울릴 거라, 그 걸로 했다지난주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위로 삼아 선물한 거다아주 기뻐했다.

어제 내가 입었던 옷이다. 빨강 카네이션은 이 옷 때문에 만들었다. 뭔가 포인트가 필요해서 다. 그리고 이 옷은 미국 친구에게 귀엽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코디네이트 한 것이다. 줄무늬 스커트에 검은색에 다리 뒤쪽에 핑크색 별무늬가 새겨진 레깅스에 발목까지 오는 부츠 같은 샌들을 신었다. 지난번에 검은색 셔츠에 줄무늬 스커트를 입고 갔더니 미국 친구가 귀엽다고 했다. 이 옷도 미국 친구가 재미있어할 거라, 입은 거다. 상의는 에프론이다. 뒤쪽이 열려있다. 앞에 브로치를 달면 셔츠로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샀더니, 아주 실용적이다. 등 뒤가 터진 것도 좋다. 감이 적당히 두터워 땀이 나서 젖어도 몸에 착 달라붙지 않아 좋겠다. 소매도 걷어올려 입을 수도 있고 무늬가 있는 옷을 잘 안 입어도 편하게 입을 수 있겠다. 나에게는 부엌일을 하는 거나,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마 그 게 에프론을 셔츠로 입고 강의를 하겠다는 발상이다.

 

내가 새로 뜬 검은색 꽃을 보이면서 지난번에 뜬 빨간색을 미국 친구에게 입양을 시켰다고 했더니 사무실 여직원 둘이 자기네에게도 입양을 시켜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나는 얼른 화장실로 도망갔다

미국친구는 예상대로 귀엽다고 했다. 나도 귀엽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입고 왔다고 해서 웃었다. 다른 동료도 같이 웃었다. 한번 웃을 수 있으면 된 거다. 요즘 우울한 일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친구는 어떻게 에프론을 이렇게 입을 생각을 했느냐고, 빨간색 꽃을 만들 생각을 했느냐고 재미있어한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돈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옆에 친구가 자랑처럼 들린다고 한다. 자랑은 아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을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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