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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이야기

변신

2016/05/16 변신

 

요즘 동경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냥 집에서만 지내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일하는 입장이라 밖에 나가야 한다. 일단 밖에 나가기만 하면 자살사고로 늦는 전철이 계속되고 마트에서까지 불친절한 대응으로 기분이 상한다. 친절한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불쾌하게 하면 안 된다. 요새는 나쁜 일, 불쾌한 일이 없으면 좋은 날이 된다

금요일 마트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밤중에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자르고 자르다 보니 아주 짧아졌다. 머리가 잘려 나가면서 스트레스도 잘려 나가길 바랐다. 스트레스를 많이 자르느라, 머리가 아주 짧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스트레스를 더 받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삭발을 할 수도 없지만, 삭발을 했다가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성격은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느낄 때가 있다. 요사이 내가 짜고 있는 것들은 아주 가는 모헤어 실로 기장이 긴 것들이다. 어제도 한 장 마쳤지만, 짜기가 힘들고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 긴 시간을 걸려서 짜도 얼마 못 짜는 걸 보면 내가 짜는 스피드가 느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스트레스 해소로 속이 시원하게 빨리 편하게 짜는 것이 필요하다

10
년 이상 입었던 옷을 풀어서 다시 짰다. 2000년대 초반에 짠 것이라, 내 체형이 변해, 살이 쪄서 작아진 것이다. 그리고 스타일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변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변신을 했다. 내가 입으려고 편하게 떠서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작품으로 하려고… 뜨개질을 해서 입는 것은 참 경제적이다. 좋은 재료를 써서 뜨면 좋은 기분으로 오래 입고, 싫증이 나거나 체형이 변하면 풀어서 다시 뜰 수도 있다

내가 뜨개질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입고 싶은 재미있는 옷이 너무 비싸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이전에는 ‘명품’이라는 것만 옷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냥 그런 것만 사서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근데, 명품 니트를 보면 가격이 보통 10만 엔 선이었다.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좋은 재료를 사서 짜면 훨씬 재미있는 걸 짠다. 재료도 파는 명품보다 더 좋은 걸 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품’을 만드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 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내가 원하는 걸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 내가 입고 싶은 걸 스스로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그래서 나와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짜기 시작했다

이 옷을 짜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아주 빠르게 쓱싹쓱싹 짜여 갔다. 결코 내가 짜는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었다. 옷을 짜는 것이 마치 조각을 하는 것처럼, 재료가 생각대로 기분 좋게 잘 깎이면서 모양을 나타냈다. 옷을 짜는데 조각을 깎는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변신했다!

변신 전 사진부터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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