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6 변태들의 천국
오늘 동경은 흐리고 약간 비가 내리는 차분한 날씨다. 태풍이 지난 후, 날씨가 미친 듯이 한여름이 되고 말았다. 날씨야, 미친 듯이 변하지만 인간이 미친 듯이 적응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파김치가 된 학생들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냉방을 쓸 수 있는 교실은 다행이지만, 냉방을 못쓰는 교실에서 햇볕이 들어 온실처럼 더워진 곳에서 수업을 하라는 것은 고역이다. 학교에서 관리하는 사람들은 냉방이 들어오는 시원하고 넓은 곳에서 일을 하기에 학생들이 많이 앉는 교실 사정을 잘 모른다. 학생들 앞에 서는 입장에서는 학교의 무신경한 처사에 화가 난다. 비싼 등록금을 받으면 최저한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을 듣게 해줘야 한다. 요새, 더위는 단지 기온이 30도라는 것이 아니다. 습도가 높아서 장마철처럼 끈적거리는 더위라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나서 열을 받으면 더 더워지기에 애써 참는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탕이라도 가져가서 아주 사소한 위안을 주는 정도다.
나는 일을 하는 시기,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3일에서 4일 강의를 나가는 데, 평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변태를 만나거나, 몰카를 당한다. 아마, 실제로 나를 아는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 일본 사람들에게도 믿기가 어려운 사실이다. 멀쩡한 아줌마에게 그렇게 관심을 갖겠느냐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실상은 다르다. 어쩌면, 내가 머리가 이상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일상을 관찰하면서 데이터를 뽑는 사람이다. 괜히, 그냥 기분상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 갱신도 가끔 필요하다. 그건 핑계고, 변태를 만난다거나 몰카를 당한다는 것은 기분이 아주 더럽다. 주거나 받는 시선에는 참으로 다양한 메시지가 있다. 시선을 주고받는 사람도 당연히 그런 것을 느끼며 알고 있다. 나는 어쩌다가 시선을 받는 종류의 사람인 모양이다. 많은 나라에 갔었고, 많은 곳을 다니면서 많은 시선을 받으면서 살았다. 그러나, 변태같은 시선이나, 몰카는 일본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시선을 받는 이유가 외면에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조금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이나, 좀 이상하게 입는 옷차림이 시선을 끈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거듭했다. 결과를 보면, 시선을 끄는 것은 외면적인 것이 아닌 모양이다.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이 된 것은 요 몇년이며, 옷을 이상하게 입는 것도 근래에 들어서다. 그동안 무난하게 보이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긴 내 인생에서 보면 외면적으로 눈에 띄게 이상해진 것은 짧은 기간이다. 젊었을 때는 젊었으니까, 나이와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학기가 시작되어 변태가 무서워서, 무난히 아주 무난하게 특색이 없이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무난하게 길거리를 다니는 아줌마 패션을 했더니, 요새 아줌마패션도 다양해졌다는 걸 알았다. 한달동안 무난하게 옷을 입어도 변태를 만나는 횟수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목요일 아침, 집에서 가까운 모노레일을 탔더니 요새 소풍 가는 계절이라, 옆차량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단체로 탔다. 눈 앞에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 귀엽고 재미있어서 그걸 보고 있었다. 나는 차량의 경계에 가까운 곳에 서있었다. 그런데, 변태의 시선을 느꼈다. 보니까, 옆차량, 아이들이 있는 끝에 선 멀쩡하게 보이는 아저씨다. 내가 착각할 수도 있어서, 확인했다. 그 시선이 오는 곳에 시선이 맞을 지점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아니네, 내가 있는 차량에 서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내가 그에게 시선을 보냈을 리는 없다. 아이들은 작으니까, 내려다보고 있었는 데… 화가 나고, 힘이 빠진다. 아침부터, 주로 아침에 변태를 만나지만, 기분이 더럽다. 더구나, 아이들이 있는 데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나쁜 놈이다. 그렇게 무난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데…
어제 아침에는 무난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옷차림을 하는 데, 어떻게 노력해야 되는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노력한다고 변태를 안 만나는 것도 아니다. 이럴 바에는 무난하게 보일 노력을 할 필요가 있나? 그냥, 옷을 입고 싶은 대로 입기로 했다. 무난하게 노력하다 보니까, 학교에 갈 재미가 줄어든다. 그래서, 주말에 입는 캐쥬얼한 차림으로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갔더니, 올해 새로 온 ‘금요일의 변태’ 선생이 있다. 이름도 모른다. 나에게 급관심을 보이고 인사를 했지만, 난 인사도 안했다. 무언으로 다가오지 말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싸가지에게 인사를 하면 안 된다고 정했으니까, 내가 항상 앉는 자리 바로 앞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하고 나를 쳐다본다. 거친 숨결이 내 얼굴에 닺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성질 같아서는 두들겨 패거나, 다른 나라면 욕이라도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어떻게 뒤통수칠지 모르니까, 무섭다. 지난 주는 살짝 비켜 앉았다. 어제는 확실히, 나만이 아니라, 주위에 앉던 사람들이 다 도망갔다. 글쎄, 여섯명이 앉는 자리를 혼자서 독점해서 앉아 멀리 떨어져서 앉은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대화에 끼어든다. 모두가 그 무례함에 무시하고 말았다.
수업에 쓸 자료를 카피하러 갔더니, 여기에도 전에 나를 만졌던 이상한 놈이 있었다. 옆에 놓인 카피기를 쓰면서 왜 내가 쓰는 카피기까지 갑자기 쏠려오냐고… 미친놈이다. 전에도 예쁜 색 옷을 입었을 때, 복도에서 스치면서 내 허벅지를 만져서 직원에게 말했더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직원에게 나의 착각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정도로 미치진 않았다.
다른 학교에서 나를 몇 년에 걸쳐 적당히 거리를 두고 훔쳐보다가, 드디어 나에게 접근해 와서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나와 20년을 알고 지내는 사이라, 나를 잘 알고 있다. 직원도 조심스럽게 현장을 관찰해서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리며, 불필요하게 나에게 접근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그사람은 잘렸다. 그 일로 인해서 잘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직원이 가장 먼저 보고한 것이, 올해부터는 ‘이상한 사람’이 없으니까, 안심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동경에서는 보통 일상을 보내는 데, 아주 조금 개성을 나타냈다가 변태를 만나거나 몰카 당하는 ‘지뢰’가 곳곳에 있다. 설사, 그곳이 대학교이며, 완전 아줌마일지라도… ‘지뢰’를 밟으면 폭발해서 부상을 입으니까, 적당히 피해가면서 아슬아슬하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입는 옷이 변태를 자극하는 스타일이었나? 참고로 어제 입었던 옷을 찍어서 올린다. 스카프를 걸치고 있어서 민소매는 보이지 않는다. 주말이어서 캐주얼하게 입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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