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3 토마토 천사
오늘 동경 날씨는 맑은 개인 날이었다.
어제도 날씨가 좋아서 작정을 했던 카펫을 걷어내어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발로 밟아 빨았다. 물을 머금어 무거운 카펫을 몇 번이나, 욕조에서 끌어올리며 물을 빼고 다시 욕조에 물을 받아 헹구기를 거듭하면서 기진맥진했다. 세탁기로 탈수를 해서 베란다에 널었다. 어제 말린 게 충분치 않아서 오늘도 말려서 벽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카펫을 걷어낸 참에 청소를 했다. 이제는 청소하기도 수월해졌다. 방이 여름용으로 바뀌었다.
오늘은 수업 준비를 하는 날이다. 목요일에 있는 여성학을 준비해서 강의 내용을 입력한다. 점심을 먹고서 오후에 일을 한다. 점심 먹을 준비를 하는 데, 친구에게서 상담전화가 왔다. 친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가정에 큰 문제가 생겼다.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안 건 지난 주다. 설마 더 이상 진행이 안 되겠지 했는 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내가 보기에 남편이 확 돌아버린 것 같다. 남편으로 인해 프로젝트도 왕창 고장이 나버렸다. 이 걸로 두 번째다. 친구에게 마음을 정하라고 했다. 연구자로서 살아갈 건지, 아니면, 연구자로서는 어찌되든 남편과 살아갈 것인지를… 휴대폰으로 몇 시간을 전화했더니, 팔도 아프고 좀 피곤하다. 아직 일을 시작도 안했는 데… 늦은 점심을 먹고 일을 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오고 나머지를 마저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친구네 케이스가 이번 주에 강의하는 성폭력과 젠더에 너무도 잘 맞아떨어진다. 속상하다.
요즘은 토마토 철이라 맛있다. 야채나 과일은 제철일 때, 왕창 먹어줘야 한다. 그래서 토마토를 잘 사다 먹는다. 그런데 지난번에 마트가 문을 닫기 한 시간쯤 전에 우연히 세 개가 한 봉지에 들어있는 걸 샀다. 내가 생각했던 가격 299엔에서 100엔이 싼, 199엔이란다. 나는 우연히 싸게 산 줄 알았다. 영수증을 확인했는 데, 왠지 가격이 더 싸져 있었다. 가격이야, 파는 사람이 매기는 거니까, 싸게 사면 좋은 거다.
지난 금요일에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항상 들르는 가게에서 나물을 한 단 샀더니, 덤으로 한 단을 더 가져가란다. 문 닫을 시간이라, 남아도 골치가 아프다면서… 이 가게 사람도 가끔 나에게 뭔가를 준다. 그래서 기분좋게 받아온다. 항상 내가 가는 가게니까, 나는 단골손님으로 물건도 잘 산다. 가격이 싼 마트에 들렀더니, 별로 살게 없었다. 계란과 뭔가를 샀다. 다음에 가격이 좀 비싸도 야채가 신선한 마트에 갔다. 여기서는 금요일에 야채나 과일을 싸게 판다. 그래서 가격이 싼 마트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 보통 때는 좀 비싸다. 금요일에는 주말에 먹을 식료품이 필요한 터라, 좀 많이 사야한다.
토마토가 한 개에 99엔으로 크고 맛있게 생겼다. 주말과 다음에 쇼핑을 가는 화요일까지 한 끼에 토마토를 한 개씩 먹을 요량으로 12개를 샀다. 거기에다 루콜라라는 샐러드용 야채에 부추 석 단과 오이를 다섯 개 샀다. 그런데, 계산대에 왔더니, 지난번에 토마토를 싸게 해 준 사람이 옆으로 살짝 들어간다. 그리고 내 물건을 계산한다. 99엔짜리 토마토가 12개에 다른 야채가 있으니 적어도 1200엔 이상이 나온다. 그런데 합계가 850엔이란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청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확인했다. 토마토가 전부 합쳐서 1188엔에서 디스카운트가 되어 600엔으로 계산되었다. 개수가 틀린 것도 아니고, 토마토가 갑자기 싸게 되는 시간인가?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걸 싸게 샀으니 운이 좋았던 거다. 그런데, 지난번과 이번에도 같은 사람이 옆으로 들어와서 내 걸 계산하는 걸 봤다. 그 사람은 충분히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다. 나도 일이 끝나서 돌아오는 길이라, 좀 피곤하지만 아주 정신을 놓을 정도는 아니다. 뭘까?
나는 가끔 특별한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는다. 그런 나를 옆에서 보던 사람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묻는다. 내가 알 길이 없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는 거다. 그 전에는 야채상에 갔더니 내가 좋아하는 포도가 있어서, 야채상 아저씨에게 이 포도를 좋아하는 데, 잘 안 나온다고 나왔을 때 많이 사둬야겠다고 했더니, 가게에 있는 걸 다 그냥 준단다. 그것도 다섯 박스나, 너무 많아서 못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집까지 배달을 해줬다. 그때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토마토를 싸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다. 이 사람은 토마토 천사가 아닐까. 아마도 내가 토마토를 좋아하는 걸 아는 토마토 나라에서 마트로 파견근무를 나온 게 아닐까, 그래서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줌마에게 작은 이벤트로 토마토를 살짝궁 싸게 해주는 게 아닐까.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천사를 만난다. 올해도 벌써 몇 명이 된다. 천사도 분야가 있는 데, 토마토 천사는 처음이다. 토마토가 맛있는 계절에 토마토 천사의 왕림… 세상에 이런 기적이… 있다.
오블지기님들이 텃밭을 하신단다. 올리브님, 미의 여신님, chippy님네 정원에서도 뭔가 나고 있다. 프라우고님은 어머니네 텃밭에서 상추를 캐시고, 너도 님은 초밥왕이 되셨다는 데, 부럽다. 나도 자극을 받아서 꽃을 재배했다. 오늘은 분홍색을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