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7 왕따와 의리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린날씨였는 데, 잔뜩 흐린채 날이 저물었다.
요새 장마에 들었다는 데, 비가 안온다. 비가 안 오면 밖에 나다니는 데는 편하지만 계속 비가 안 오면 물이 부족해진다. 장마철이면 장마철 답게 비도 와줘야 한다. 날씨라서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 거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적당하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비가 오면 오는 데로, 비가 안 오면 안 오는 데로 걱정이다.
지난 주 바쁘게 지낸 후유증인지 이번 주는 한가하지만 뭔가 맥이 풀린 것 같은 느낌이다. 어제는 500명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내용이 세계적인 불평등으로 젠더, 인종, 계급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젠더에 관한 내용을 하면서 일본의 여성문제, 특히 내 친구를 떠올리면서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화를 내면서 강의를 했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주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일 뿐 자세히 보면 각종 폭력으로 둘러 싸여 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려는 사고로 인해 피해자가 더욱 피해자로 고립되어가는 가혹한 사회이다. 이지메(왕따)는 일본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그 게 폭력이라는 인식이 없다.
일본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왕따(이지메) 당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 그룹 내에 왕따를 할 대상(희생양)이 있어야 결속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부에 적이 필요하다고… 자신들에게 가까운 사람중에 왕따 희생자를 내야 한다니 슬픈 인간관계다. 그러면서도 자신 만은 왕따 대상이 아닌 언제까지나 왕따를 시키는 편에 있고 싶어 한다. 아니다, 언젠가 자신이 왕따가 되는 게 아닐까 그 게 가장 두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룹 내에 공기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어가면서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두려운 사람들이 된다. 가까우면서 가장 조심스럽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면 안 된다. 그룹 내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보이면 안 된다. 자신의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보다 그룹 내의 흐름에 따라 상황이 흘러가고 정해진다.
내가 학생 때부터 들은 주변 사람들의 고민은 그룹 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룹 내에서 왕따 당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왕따의 정도에 따라 신체적인 폭력, 심리적인 폭력이 되리라. 적어도 왕따는 사회적인 폭력이다.
석사과정 때 나를 빼놓고 여자들이 뭉쳐 있었다. 중심인물은 나를 빼놓음으로 나를 따돌리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아둔해서 전혀 몰랐고 알아도 그 그룹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사람들과 장단을 맞추면서 사귈 시간이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나를 왕따 시켰는 데, 나에게는 안 통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룹 내에 문제가 생기면 항상 나에게 와서 호소를 한다. 가만히 보면 겉으로는 가깝지만, 정말로 속내를 말할 정도로 가까운 것도 아니다. 그중 한 명이 이혼을 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이혼을 할 때 두 명의 보증인? 이 필요해서 그룹 내에 말을 했더니 이혼을 한다고 창피하다고 차별을 당했단다. 사회학을 한다는 나름 진보적인 여자들인 데도 불구하고 그것도 겉모습일 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기가 막혔다. 친구가 이혼을 한다는 큰 일을 당했는 데, 가장 가까이서 말을 듣고 알던 사람들이 이해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왕따를 했던 것이다.
왕따를 당한 사람은 나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주 흔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혼을 한 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우여곡절도 나는 다 듣고 있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우리 지도교수의 소개로 유명대학 교수와 재혼을 했다. 그랬더니, 몇 년이나 연락도 안 하고 왕따 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인사를 갔단다. 그러면서 유명대학 교수에게 친구를 소개해 달랬다나…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왕따를 당했던 사람도 다시 그 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다. 나하고 가끔 마주치면 정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반가워한다. 자신의 힘든 시절에 힘든 심정을 알아줬다는 것이다.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옛날에는 나름 의리가 있었는 데, 지금은 의리를 찾으러 어디론가 가야 할 정도로 세상이, 인간들도 바뀌었다.
요새 꽃을 뜬 것 중 가장 큰 것이다. 흑백으로 했다가 빨간색을 보탰다. 뭔가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근데, 스토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