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4 망고와 달팽이와 패랭이꽃
요새 동경 날씨가 이상하다.
아침에는 맑다가 오후가 되면 갑자기 흐려지고 급기야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가 내린 다음에는 급격히 온도가 내려가고 맑아진다. 소나기도 아주 좁은 범위에 비가 내린다.
지난 토요일에도 읽을 책이 있어서 학교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안이 ‘절전’으로 28도, 즉 난방상태라 집중은커녕 땀 흘리며 잠자기에 좋은 아주 짜증 나는 상태였다. 그래도 나는 몇 시간을 졸음기와 싸우다가 피곤해서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올것 같아 집으로 오는 걸 망설였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 비가 오면 우산도 없거니와 책도 젖는다. 아니나 다를까 소낙비가 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쪽은 맑은 상태이다. 비가 그칠 때까지 밖에서 책을 읽다 보니 춥다. 도서관이 추울까 봐 가져 갔던 얇은 울 카디건을 입어도 춥다. 도서관 안은 난방이요, 밖은 춥다. 짧은 시간이어도 신선한 공기가 있어 집중해서 책을 좀 읽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연구회가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인데 아무래도 끝까지 못 읽을 것 같다. 읽는 데까지 읽을 수 밖에 없다.
지난 주에 규슈에 있는 옛날 학생이 유기농 토마토를 큰 상자로 한 상자 보내왔다. 자기가 만든 하우스재배인데 첫 번째 수확이라 아직 단맛이 덜하지만, 유기농이니 안심하고 먹으라고 한다. 역시, 나무에서 완숙한 토마토라서 달고 향기롭다. 매일 토마토에 파묻힐 정도로 먹었다. 제철 때 이렇게 먹어두면 다음해에 토마토 철이 올 때까지 괜찮을 거다. 먹다 남은 토마토입니다.
이 망고는 지난 주 금요일에 마트에서 사 온 겁니다. 평소보다 반액정도 쌌거든요. 아직 일본에서는 망고가 비싼 편이라, 좋아하지만 해외에서 만 먹는 과일로 정했는데 샀습니다. 저는 망고를 아주 좋아합니다. 망고가 비싸지 않은 곳에 가면 큰 상자로 사다가 끌고 다니면서 먹습니다. 망고를 좋아해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일기예보에서 망고 가격이 내리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답니다. 문제는, 시드니에서 연구한 결과라서, 일반화할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거지요. 근데, 이 싸구려 망고가 익을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이렇게 파란색을 산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빨갛거나 노랑색이 있는 걸 샀었는데, 그냥 두면 점차 익어올 줄 알고 샀는데, 글쎄 어떻게 될지 도무지 망고 생각을 알 길이 없네요.
지난 주 금요일 수업시간에 진달래꽃에 관해 말을 했지요. 그런데 학생들 반응이 시큰등 합니다. 일본에서는 보통 집집마다 현관에 꽃꽂이를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아주 민감하게 반영해서 많은 상징적 의미가 꽃꽂이에 담겨있는 게 특징이지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도 그런 것에 너무도 무감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에 주목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도 진달래꽃에 관한 말을 하면서, 실은 철쭉꽃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진달래라고 하면서도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는 철쭉이였던 거지요.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제가 헷갈릴 만큼 비슷하더군요. 일본말로는 둘 다 つつじ입니다.
철쭉꽃이 피어 있어 철쭉색으로 뜨개질을 시작했지요.
이 색은 멕시코친구에게 옷을 짜서 줬더니, 친구가 ‘멕시칸핑크’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알았냐고, 저는 그냥 친구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을 했습니다. 이 실은 가늘어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래서 같은 색으로 짠 것을 소개합니다. 작년에 시드니에서 친구 결혼식 때 드레스에 어울리는 목걸이가 없어서 목걸이로 짰던 스카프입니다. 오늘은 달팽이처럼, 고동처럼, 제주도에서 옛날에 먹었던 굴멩이처럼 폼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생명력이 안느껴집니다. 변종 철쭉 색 달팽이로 겨우 목숨이 붙어있는 것 같아요. 투명한 반짝이도 살짝 들어있는데 실험실에서 인공으로 배양해서 만들어낸 티가 역력합니다. 작은 실험실 A도 같이 소개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산 패랭이꽃입니다. 지역에서 생산한 야채를 파는 곳에 요새는 꽃도 놓여있는데, 꽃을 못샀답니다. 야채를 사다 보면 무거워서요. 그 날은 가게 사람과 말을 하다가 패랭이꽃이 꽂혀있어 예쁘다고 했더니 몇 송이를 뽑아서 줍니다. 가게에서 나오다 보니 패랭이꽃이 끝물이라 화분 하나에 50엔 하더군요. 기가 막히게 쌉니다. 그래서 두 개를 사 왔지요. 이 패랭이꽃도 좀 지쳐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꽃이 피여 있고 앞으로도 더 필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꽃을 사서 꽂고 물을 갈고 ‘관리’하는 게 귀찮답니다. 허긴 과일을 먹는 건 좋아하지만 껍질을 벗기는 게 귀찮다는 말을 잘 듣습니다. 꽃을 안 사고 관심이 없는 게 꼭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 꽃을 사서 즐기고 관리 할 ‘정신적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비싸지 않은 꽃도, 길가에 있는 꽃도, 그리고 즐기는 방법도 많거든요.
제가 학생들에게 ‘우려’를 하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에 ‘무관심’하면서, 학교 교육을 통해서 뭘 배울까 하는 점이지요.
제 실험실에서 태어난 변종 철쭉 색 달팽이처럼, '지식’도 야성의 생명력과는 무관한, 자신들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게 아닌 단순한 ‘장난감’이 되어가는 걸까요?
이 사진을 올리는데 2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잘 안 올라갑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