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5 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가 만연한 사회
오늘 동경은 선선하고 맑은 날씨였다. 어제저녁에 백화점에서 산 망고 퓌레가 맛있어서 오늘 아침 백화점이 문을 열 시간에 사러 갔다. 10시에 문을 여는 줄 알았더니, 10:30이라 기다리다가 사왔다. 날씨가 좋아서 백화점에 가기 전에 이불을 말리고 손빨래를 해서 널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이불은 들여놓고 빨래만 널고 갔다. 아침에 일찌감치 움직여서 집에 돌아와도 12시가 안되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은 비가 오고 앞으로 당분간은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네. 침대에 까는 패드를 빨아서 널고 내일 할 예정이었던 청소도 앞당겨서 했다. 좀 바쁜 하루를 보낸 것이다. 오후가 되어 친구가 수국을 보러 산책을 가자는 문자를 봤다. 아침에 보낸 걸 몰랐던 것이다. 저녁에 산책을 나가면서 어젯밤에 만든 양념된장을 한 병 가지고 갔다. 우체통에 넣으려고 했더니 병이 커서 들어가지 않았다. 친구네 집까지 올라가서 양념된장을 건네고 친구와 같이 산책에 나섰다. 산책을 마치고 우리 집에 들러 친구는 어젯밤에 만든 망고 제리를 맛보고, 티셔츠를 받아갔다. 나는 다시 친구네 가서 비파를 받아왔다.
지난 주 금요일 일이었다. 근래는 밖에 나가면 불쾌한 일을 당하는지라, 아주 조심스럽다. 그러나, 불쾌한 일은 어떤 계기로 일어날지 모른다. 그 날도 출근길 전철이 25분이나, 늦었다. 학교에 가까운 역에 도착해서 출발 직전인 버스에 올랐다. 카드를 찍었더니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버스에서도 충전이 가능하다. 맨 앞에 서서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버스에 탈 사람이 몇 명 있어서 정차시간이 길어질 때, 운전수에게 충전을 해달라고 했다. 운전수가 충전 준비를 하기 전에 교통카드를 대서 요금이 빠져나갔다. 이 건 내가 실수한 것이다. 운전수는 요금이 빠져나갔으니까, 거기서 내리라고 한다. 종점인 학교까지 간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사정도 말했다. 종점에 도착한 후, 맨 앞에 서있는 나에게 나중에 정산하겠다고 학생들이 다 내리는 걸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운전수가 오는 동안에 정산할 준비를 머릿속에서 생각하라고 사정을 말했다. 학생들이 다 내리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도 운전수는 미적미적하면서 정산을 하지 않는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 화가 나서 운전수에게 수업에 가야 하니까, 요금을 더 받아도 좋으니까 빨리 정산을 하라고 했다. 그래도 운전수는 유들유들하게 내가 알바가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운전수는 대학이 종점이고, 내가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라는 것도 분명히 안다. 그제야, 내가 알았다. 운전수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러고 있다는 걸……
지금까지 내가 당하는 패턴이 다 같다. 우선, 나를 혼자만 남게, 다른 보는 눈이 없게 만든다. ‘가해자’는 나를 고립시키고 테러를 행한다. 버스에 운전수와 둘만 남겨져서 행패를 당한다는 걸 느꼈을 때, 공포스럽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눈으로 본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항상, 이렇게 교묘하게 그 들은 아주 ‘지능적’으로 ‘악랄하게’ 폭행을 가한다. 그 날 내가 당한 일로 무섭고 화가 났다. 다른 나라에서 같은 일을 당했다면, 어김없이 '경찰'에 갔을 것이다. 그 정도의 공포를 안겨줬으니까. 그러나, 일본에서는 ‘경찰’이 가장 ‘외국인’을 이지메 하며,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해서 공격한다. 그래서, ‘경찰’에 가면 문제 해결은커녕 ‘경찰’에게 더 당해서 초주검이 됨으로 '경찰'에 가면 안된다. 내 경험상 그렇다. 시민을 지킨다는 ‘경찰’이 ‘외국인’에게는 가장 위험하다. 일본에서 외국인 차별은 '경찰'이 가장 솔선해서 선두에 있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 낮잠을 잘 때 버스에서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나 가위에 눌렸다. 일요일 친구가 산책을 할 때, 운전수가 다른 손님을 다 내리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단지 나를 기다리게 했다고 공포를 느끼거나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닌 일로 가위에 눌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이렇게 주위에서 가까운 사람조차 테러를 당한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어서 당한 것처럼 말을 한다. 항상, 그렇다. ‘피해자’를 더 고립시키며, 잠재적으로 ‘가해자’를 옹호한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교묘하게 지능적으로 악랄하다. 언뜻 보면 ‘피해자’가 당할만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사회가 구조적으로 약자가 테러당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이번 주 화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철은 여유롭게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내 옆에 아주 밀착해서 앉길래 불쾌감을 표시하며 얼른 일어서서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남자가 내게 다가올 때부터 긴장한다. 의도적으로 내 몸에 스치는 걸 안다. 어쩌다 우연이 아닌 것이다. 목요일에도 내 눈 앞에 서 있는 젊은이와 전철에 걸린 잡지 광고를 읽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단지 시선이 부딪친 것이라, 무심했다. 그랬더니 내 옆자리에 앉는데, 완전 몸을 부비적대며 앉았다. 아찔했다. 지금까지 내 통계상 내 학생 벌이나 되는 젊은이가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놀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기가 막히다. 나 너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흰머리가 안보이니? 기습에 너무 놀래서 불쾌감을 나타내고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상대가 아저씨든 젊은이든 상관없이 기분이 더럽다. 왜 이런 일을 유독 동경에서만 당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미소지니(여성혐오)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 여성은, 나 같은 아줌마도 언제든지 어떤 수모를 당하고 공포를 맛볼지 모른다. 거기에 외국인이니, 매일 그런 공포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여성 혐오를 용인하는 사회는 거기에 사는 외국인 여성에게 '지옥'이다. 요새는 정말로 일상이 무섭기 짝이 없다.
사진은 피기 시작한 수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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