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1 귀싸대기 맞은 날
오늘 동경은 맑고 햇살이 강한 더운 날씨였다. 아침에 나갈 때는 최고기온이 28도로 알고 나갔는데, 30도였다. 오늘은 학교에 갔더니 책상 위에 선물이 놓여 있었다. 맛있는 과자에 고맙다는 카드까지 들어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미국 친구에게 무생채를 좀 줬다고 답례로 받은 것이다. 이 친구는 작은 것이라도 받으면 꼭 답례를 한다. 일본 사람들이 잘한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도 나는 양념된장을 한 병 가져다줬다. 요리를 아주 잘하는 친구인데 내가 만든 것은 맛있다고 해준다.
4교시에는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토마토를 사다 줬다. 지난번에 햇감자를 줬다고 답례로 가져온 것이다. 햇감자가 비싸지 않으니까, 답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학생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한다.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4교시가 끝나고 역에 가는 버스를 탔더니,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와 미국 친구가 같이 탔다. 셋이서 수다를 떨면서 역까지 왔다. 나는 먼저 급행전철을 타러 뛰었다. 신주쿠에서 약속이 있었다. 7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6시쯤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그 이후가 문제다.
시간이 있어서 오카다야에 갔다. 오카다야는 수공예 재료 등 다양한 것을 파는 곳이다. 내가 필요한 코바늘을 두 개 샀다. 대학에서 담당할 새로운 과목을 구상하고 있다. 수공예와 문화, 작품제작에서 전시까지 종합적으로 어우르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이 작품을 제작한다. 학생들이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학교에서 단체로 주문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학생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싸면 도움이 되니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그런 일은 전혀 없단다. 기본적으로 학생은 회원 입회비 500엔이 면제되며, 회원은 5%가 할인이 된다.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안내도 자세히 해주지 않는다. 말하는 싸가지가 마치 내 귀싸대기라도 후려치는 듯한 매몰찬 말투다. 나보다 한참 젊은 아가씨 같은데, 그렇다. 참 세상 살다 보면 기분을 더럽게 하는 것도 가지가지다.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 가는 곳마다 실 가게에 간다. 괜찮은 실가게를 찾아서 다닌다. 실가게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이 가는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인종을 막론하고 뜨개질을 하는 비슷한 종류의 인간들이 만나는 장소라서 손님을 막대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같은 동네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 가게는 오랫동안 다녔지만, 점점 나빠진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조금 나아졌나 싶더니 오늘 행여나 했더니 역시나 당하고 말았다. 그런 걸 문의하는 내가 강도라도 된다는 말인가? 거기서 새로 코바늘을 산 걸 후회했다. 코바늘을 볼 때마다 새록새록 귀싸대기를 맞은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떠오를 것 같다.
쇼핑으로 기분을 전환하려고 빅크로에 갔다. 약속장소도 거기니까. 만나는 아이에게 옷이라도 사줄 생각으로 보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전화가 없다. 오늘은 화가 나서 살만 한 옷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카다야에서 점원이 하던 행태가 너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난다.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그런 태도를 취한 걸 알겠으니 더 기가 막힌다. ‘혐한’이라는 것은 뉴스에 나오거나, ‘헤이트 스피치’ 데모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한국사람에게 말로 귀싸대기를 치는 식으로 표출된다. 한국사람은 동경에서 물건을 사거나 문의하는 것도 구걸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매너는 없다. 구제불능이다. 배가 고파서 밖에 나와 미국 친구에게 받은 과자를 먹었다. 아예, 가게에서 바깥에 나와 길가에 앉아서 학생에게 받은 토마토도 다 먹었다. 그 때 만나기로 했던 아이가 나타났다. 약속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었다. 다른 약속이 있다고 금방 가야 한다네. 그래도 조금 말을 하고 헤어져서 왔다.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했더니, 오늘 경험한 것은 일본의 다른 것들과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하드’가 강하다. 반면에 '소프트'는 절망적이다. 여기에 일본 경제와 사회가 망하는 포인트가 있다. 오카다야도 아주 잘 알려진 곳으로 상품을 잘 갖춘 가게다. ‘하드’로서 성능은 아주 우수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뜨개질을 하거나 수공예를 하는 사람들과 같이 공동체를 키워가는 정신, 즉 ‘소프트’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면 뭐하냐고, 사는 사람이 기분 좋게 사서 쓸 수 있게 해야지... ‘하드’가 아무리 좋아도 ‘소프트’가 불량해서 공동체에 속한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 공동체가 망한다. 지금 동경에는 그런 정상적인 사고가 정지될 만큼 외국인 혐오에 빠져서 미친 듯이 행동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아니다, 외국인 혐오로 미친 듯이 대하는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가 있다. 아주 선명하게 나눠진다. 나는 친절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게 대해주는 가게에 가고 싶다.
사진은 산뜻하게 수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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